제목 | [통권 58호] 1997년 독일 방송계, 미디어 집중 두드러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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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99.12.18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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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Plus TV가 독일 텔레비전방송사로서는 처음으로 도산했다. 그 이후 Puls TV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1997년 독일 미디어 정책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 방송사는 Thomas Kirch에게 넘어감으로써 방송에 대한 소유가 점점 더 소수의 손으로 들어가는 현상을 대변해 주었다. Thomas Kirch가 인수한 방송사는 그 외에도 Pro7, TV Munchen이 있고 1997년에는 베를린의 민영라디오 Hundert,6를 완전 인수하였다. Kirch, Bertelsmann, Telekom간의 디지털 연합은 1997년에 이루어진 유일한 미디어간의 결속은 결코 아니지만 가장 주목받은 것임은 분명하다. 이 삼자간의 연맹은 프로그램과 기술을 포괄한다. 비록 그간 몇 가지 안전장치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ARD, ZDF, 그리고 민영사업자들이 새로운 텔레비전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업 기업들에 의존해야 한다. 이 세 기업간의 디지털 연합은 - 이와 더불어 Premiere와 DF1간의 합병 역시 - 미래에 대한 의미로 볼 때 단연 올해의 가장 중요한 미디어 정치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그 외에도 집중 현상은 도처에서 나타났다. CLT와 Ufa는 1997년 초에 합병을 하여 현재 유럽 최대 규모의 텔레비전 기업을 이루고 있다. Leo Kirch는 독일에서 Sat1의 초과 지주가 되기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 Pro7은 1997년 7월 7일 주식을 상장하면서 전개한 광고의 홍수로도 Thomas Kirch가 Pro7을 지배하고 있고 일반에게는 결정권이 없는 주식만이 돌아가는 사실을 가릴 수는 없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연초부터 효력을 발생하여 30%라는 시청자 점유율 한계선으로 텔레비전 기업에 이전보다 훨씬 넓은 활동영역을 부여해 주고 있는 개정 방송국가협정을 통해 가능해졌다. 진행을 제지할 수 있는 일부 규정들은 고무로 만들어진 느낌이다. 그 많은 신청자 중에 하필이면 RTL 내지는 Sat1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회사에서 '독립적인 제3자' 창문 프로그램으로 방송하게 되었다. 새로 구성된 KEK(집중조사위원회)는 이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표현했을 뿐 그 외에는 설립 첫 한 해 동안 별 활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방송사의 집중 현상은 라디오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비록 헷센州에서는 유일한 상업방송이긴 하지만 FFH는 제2의 초단파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라인란트-팔츠州에서는 RPR1과 RPR2를 지배하고 있는 출판사들이 제3의 방송사에도 진출하려 했으나 제지당했다. 바이에른州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州에서는 지금까지는 DAB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던 Antenne Bayern과 Radio NRW의 록라디오나 청소년라디오가
곧 초단파를 통해서도 청취할 수 있게 된다 해도 놀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청소년 라디오와 전문채널을 통한 공영방송의 확장 물론 채널의 확장은 상업방송사만의 전공은 아니다. 1997년에 공영방송의 청소년 라디오 채널들이 활기를 띠었다. SWF와 SDR이 아직 초단파를 통해서는 아니지만 Das Ding의 방송을 시작했고 HR은 XXL의 방송 개시를 발표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HR은 라디오방송 채널의 다양화를 추진하고 있다. HR은 공식적으로 HR-3-Plus 프로그램인 XXL 외에 1월 초에 다른 세 채널의 Plus 판을 시작했는데 부분적으로는 초단파로까지 내보내고 있다. ARD와 ZDF는 1997년에 텔레비전의 디지털 서비스를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공영방송사의 첫 전문채널인 Kinderkanal(어린이 채널)과 사건 및 기록 채널인 Phoenix를 출범시켰다. 또한 州방송사로서는 처음으로 BR이 1월 초에 텔레비전 전문채널인 교육채널의 방송을 개시했다. 이 모든 것들은 ARD의 회장인 Udo Reiter가 취임하면서 주장했던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MDR의 사장이기도 한 Udo Reiter는 소규모 州방송사들의 존립에 회의를 품었고 베를린의 경우 하나의 공동 방송사를 제안했으나 그의 주장은 논란을 일으켰다. 4월 이후에는 거의 누구도 ARD의 미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ARD는 아주 현실적으로 변했다. NDR는 클래식 라디오와 문화 라디오를 SFB와 ORB를 통해서도 보급할 수 있고 대규모의 방송사들이 제1방송의 시리즈와 같은 공동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점점 더 맡아 ARD 내부의 재정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대목은 올해 국가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독일 남서부 지역에 SDR/SWF의 후속 방송사인 SWR가 설립되어 ARD 방송사 내 두 번째 큰 방송사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ARD는 전년의 시청자를 거의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고 제3 방송은 점유율에 있어 현저한 향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반면에 3대 민영방송사들은 1996년에 비해 고전한 해였다. 공영방송사들은 유료 채널을 통한 축구 중계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이득을 보았다. 그들은 '착취하는 TV'와 반대되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1997년부터 유효한 유럽연합의 개정 텔레비전 지침으로 야기된 무료 텔레비전에 대한 중계권 보장을 둘러싼 정치적이고 대중적인 논쟁은 결국 연방 州들이 무료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하는 경기에 대해 법적으로 리스트를 확정하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민영의 유료 채널들에 대한 공영텔레비전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1997년에는 양자간의 결속이 강화되었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ZDF Enterprises와 Kirch 그룹은 DF1의 범죄영화 채널에 [derrick] 내지는 [der alte]를 공급하기 위해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Kirch와 MDR의 자회사인 drefa간에도 제휴를 위한 타진이 진행중이다. BR은 민영 텔레비전의 지역 창문 프로그램에 동참할 예정이고 SR은 준비중인 청소년 라디오 채널을 위해 'Saarbr cker Zeitung(자르브뤼크 신문)'과 손을 잡을 계획이다. [epd medien '97.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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