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52호] BBC, 시사해설 프로그램 운영 두고 경영진과 제작진 대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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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99.12.18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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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셋째 주를 즈음하여 BBC 보도실에서는 소위 '시사해설가 파워의 폭발(An Explosion of Presenter Power)'이라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것은 대표적인 BBC 시사문제 해설가이자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Jeremy Paxman, John Humphrys, James Naughtie, Anna Ford 등이 BBC의 프로그램 제작비용 절감 정책을 철수하도록 요구하고 나선 사건을 일컫는 것이다. BBC 경영진들은 앞에서 이들이 진행하는 각각의 프로그램의 편집, 제작인 수를 감축하고 대신 이 프로그램들을 총감독의 지휘하에 중앙집중화함으로써 전반적인 BBC 제작비용을 절감토록 하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 정책에 대해 각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얼굴이자 프로그램의 사활, 나아가서는 BBC의 보도부문 시청률 유지, 확보에 핵심요소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시사해설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을 놓고 경영진과 제작진이 세우는 입장간의 대립은 자못 팽팽하게 보인다. 우선 경영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사 프로그램의 예산 절감 정책은 뉴미디어 시대를 전망하는 장기적 방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수의 인력을 사용하기보다는 간단하나 우수한 성능을 갖춘 첨단장비를 활용함으로써 제작 과정의 효율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그 대의적인 명분이다. 한편 실무자들의 주장을 들어 보면, 시의적인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본격적인 주제로 삼는 프로그램인 만큼, 각 프로그램마다 혹은 진행자마다 고유로 가지고 있는 공적, 사적인 개성들을 지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확보되어야 할 내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사 프로그램들의 제작 과정을 중앙화한다면 획일화하는 부작용만을 낳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주일 만에 BBC의 총책임자인 John Birt는 첫 공식 인터뷰를 가졌다. 여기서도 그의 태도는, 역시 작년에 BBC의 국제사업부 World Service의 조직을 방송부와 프로그램 제작부로 재단하는 독단적인 정책을 강행함으로써 실무진은 물론이고 경영이사진들까지 분노케 하는 위력을 보였던, 그래서 BBC의 창립자인 John Reith 이래로 가장 강력한 지휘관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그의 스타일에 걸맞는 것이었다. 세력 싸움의 요소도 있어 그의 발언 내용을 간명하게 요약한다면, 이 정도의 분란은 장대한 변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전략을 구하기보다는 보완을 꾀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긴 동안을 프로그램 제작 부문에 몸담고 있었던 John Birt는 실무진들의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의 원칙상 첫째, 제작에 필요한 자원이 뉴스룸으로부터 작업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시류라 할 때, 대규모의 중계차보다는 최경량의 디지털 설비 몇 개만으로 동일한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제작인들의 의식상의 '변혁(revolu- tionise)'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의 원칙은 중복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 터졌다 하면 담당자는 일련의 각 BBC 프로그램 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는 일간의 떠도는 평을 언급하며 그는 가능한 한 불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중복적으로 제작하는 경우를 최소화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John Birt와 시사해설가들의 대립은, 제작정책에 관한 대의적인 가치관상의 갈등에 연유했다기보다는, 조직내 실세를 둘러싼 알력의 일면일 수도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시청료에 재정적 바탕을 두고 다소 자유스러운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던 것이 전통적인 BBC 저명한 시사해설가들의 스타일이라면, 수 년 전 정부가 BBC가 부과할 수 있는 시청료 액수를 동결하면서 점차 그 무게를 더해가는 재정적 압박을 이겨가면서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편이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보다 젊은 세대의 방송인을 선호하는 경영진들의 기본 입장이라 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어느 한 편의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서 한 경영인의 조직 운영 방식의 민주성이다. John Birt의 장기적 사업 정책이 반드시 BBC의 장래에 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단정지울 수 없음은 물론이다. 단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일정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과 방식에 관한 것이며, 실무자들을 소외한 채 작업상의 효율만을 주장하는 그의 독단이, 조직의 생산성을 고양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직 전체를 혼란과 지체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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