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43호] 영국 방송조직 내의 차별구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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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99.12.18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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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영국에서는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18년 동안 집권을 해 오던 보수당이 물러나고 노동당이 새로운 집권당으로 들어서게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번 선거의 열기는, 그 변화만큼이나 뜨거운 것이었다. 이번 선거과정은 매스 미디어의 관점에서 볼 때 정치적인 이슈 자체에 대해 수많은 논의와 토론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그러한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매스 미디어의 자기 관찰과 그에 대한 반성이 뒤따르는 생산적인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과정에서 거론되었던 주제들 중의 하나로 사회의 중요 정치적 사건에 있어서 여론 생성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저널리스트들 간에 존재하는 차별구조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었다. 소수의 주류 미디어 조직과 다수의 비주류 조직간의 차별, 유명 논설가와 그렇지 못한 다수의 저널리스트들간에 존재하는 갈등 등에 대한 고발이 그 대체적인 내용이 되었다. 사회의 정치적인 여론이 사회 구성원 전체로부터 매스 미디어 기관들로 축소될 뿐만 아니라, 그 기관들내에서도 극소수의 조직과 개인들로 집약된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중심지라 일컬어지는 영국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아이러니한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위계적 질서의 대표적인 사례들 중의 하나는 남녀 저널리스트들 사이에 작용하는 차별 구조이다. Joanna Coles라는 여성 저널리스트가 소개한 기자 회견장의 모습은 그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테스토스테론이 이끈 캠페인 : testosterone - driven campaign(테스토스테론은 남성호르몬의 일종이다)'이라고 풍자하고 있듯이 정치인들과 저널리스트들이 만나는 장소는 온통 '남성 유명 논설인' 중심적인 질서로 구성되곤 했다(여기서 물론 '남성'과 '명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는 항상 일치되어 나타난다). 예컨대 어느 당이 주관하느냐를 불문하고 기자 회견장의 종결 부분은, "자, 그럼 기자 여러분들의 질문순서입니다. 네, Robin(BBC 정치해설 담당자) ... 이번에는 Michael(ITN 정치해설 담당자) 손 드셨습니까? ... 시간상 앞으로 두 개의 질문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Adam(Sky의 정치해설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John(BBC 수석 정치기자), 수상의 발언 내용에서 지적하실 사항이라도?"라는 반복적인 패턴으로 마감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거론된 이름의 주인공들은 TV방송의 주요 정치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통해 영국 시청자들에게 잘 알려진 얼굴들인 것이다. 성(姓)도 붙이지 않은 채, 이름만으로 불리워지는 분위기에서 정치인들과 소수의 유명저널리스트들간에 맺어진 '친숙한(?)' 관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이는 것은 말할 기회가 이미 제한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과 탈락의 기준이 공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암묵적이고 사적인 관례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비공식적인 차원이 더욱 문제시되는 이유는, 형식적 혹은 표면상으로 결백하다는 구실은 곧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서 개선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포츠 프로그램, 여성 앵커에 대해 일각에서는 성적 이용물이라 비난하기도 이번에는 잠시 선거장을 떠나 완전히 상이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유사한 현상을 보기로 하겠다. 그곳은 TV 스포츠 중계실이다. 스포츠 분야 저널리스트가 갑작스럽게 화두의 주제로 떠오르게 된 것은 C5의 Trish Adudu라는 인도 여성의 등장과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영국 방송 내에서 유일한 비백인 여성 스포츠 보도인이다. 사실 여성 스포츠 보도인은 백인이라고 하더라도 매우 드물다. Helen Rollason이 1990년 BBC2의 [Sport on Friday]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등장함으로써 주요 스포츠 프로그램의 보도인으로 활동하는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된 이후, 현재 TV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여성들이라고는 BskyB의 축구 중계 프로그램인 일각에서는 그간 금기로까지로 여겨졌던 스포츠 분야에 여성들이 진출하기 시작하는 최근의 현상을 두고 보수적이었던 방송계가 점차적으로 개방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경향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항상 낙관론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스포츠 보도인들이 각광을 받게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되었을 때,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 내역에 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에 따른 것이기라기 보다는 남성이 주를 이루는 스포츠 프로그램 시청자들에게 강력하게 작용할 '여성'으로서 이용하자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심이 생기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들어서서 스포츠가 점차 성적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적인 지적은 그러한 염려를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저널리스트들 내부에 존재하는 차별 구조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정치 문제와 같은, 소위 '진지한 분야'에서는 보수적인 차별 구조가 뿌리깊게 박혀 있어 전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스포츠와 같은 '가벼운 분야'에서는 형식적인 개방이 프로그램의 선정성, 시청률 제일주의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자아낼 위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민주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매스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책임을 수행해 나갈 미디어 자체의 내부구조를 민주화하는 것 역시 저널리즘의 윤리성이라는 이름 하에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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