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42호] [페루 일본대사관 인질사건] 잠입보도, 기자의 판단과 미디어의 대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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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99.12.18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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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고 있는 지면에 대한 감촉은 없었다.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했다.", "이제부터 일어날 페루정부, 일본정부, 양국의 여론 반응에 신경이 쓰였다. 또, '紀子妃의 오른손'을 촬영했다가 퇴직한 사진부 나카야마(中山俊明)씨의 경우를 생각하며 나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1996년 12월 17일에 일어난 페루 일본대사관 인질사건에서 1997년 1월 1일 사건 발생후 저널리스트로서는 처음으로 관저 내부를 직접취재한 쿄도(共同)통신 사진부 하라다(原田浩司)기자는 취재하기 위해 관저에 들어갔을 때와 취재를 끝마친 직후의 기분을 쿄도통신 노동조합 신연부가 발행하는 <新硏 프리토크>(2월 6일, 2월 9일자)에 이렇게 쓰고 있다. '紀子妃의 오른손'이란 1990년 6월 29일 신문 각지에 게재된 '朝見의 儀'(아침 천황을 배알하는 의식)가 끝난 후 紀子妃가 秋篠宮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사진에 대한 궁내청의 항의로 인해 사진을 찍은 나카야마 기자가 다음해 3월 퇴직당한 사건이다. 하라다 기자의 취재에 대해 대부분의 신문, 방송미디어는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라다 기자에 이어 1997년 1월 7일 TV아사히 계열의 ANN 뉴욕지국의 人見剛史 기자가 조수와 함께 경비를 뚫고 관저 내에서 취재한 행위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위험한 취재라고 보도했으며, 일부 미디어는 쿄도통신의 취재는 부정할 수 없지만, TV아사히의 취재에는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페루 당국은 人見 기자를 4일 동안 전후 사정을 듣기 위해 구속하고 비디오 테이프를 압수했다. 많은 매스미디어들이 비난을 했던 까닭인지 두 기자의 취재행위에 대한 여론도 냉정했다. 신문노련과 민방노련이 페루정부의 조치를 비판한 것 이외에는, 페루 기자협회가 일본인 기자를 구속한 것에 대해 곧바로 페루 정부에 항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는 페루, 일본 양국 정부가 두 기자를 비판하는 것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별로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1월 말, 쿄도통신은 하라다 기자에게 사장상(賞)을 수여했다. "관저 내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도한 이번 취재활동은,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을 현장보도 함으로써 통신사 기자의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함과 동시에 많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는 것이 수상 이유였다. 한편 ANN의 人見기자가 취재한 영상은 2월 24일 현재까지 방송되지 않고 있다. 주도면밀한 하라다 기자의 취재 1997년 1월 1일(현지는 12월 31일) 텔레비전 화면에 하라다 기자가 촬영한 영상이 흐르고, 3일자 각 신문(아사히 신문 제외)에는 쿄도통신이 전송한 기사와 사진이 크게 게재되었다. 하라다 기자는 12월 31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각사의 사진기자가 한 사람씩에 관저 정문 앞을 통과할 수 있는 press tour의 세 번째 그룹에 있었다. 페루 당국이 각사의 사진기자를 대상으로 배려한 취재였다. 하라다 기자는 같은 그룹의 다른 회사 15명과 함께 건물에 들어갔다가 다른 기자들이 나간 뒤에도 일본대사관 서기관과 게릴라 양쪽의 요구에 따라 관저에 남아 약 4시간 동안 취재하여 기사를 쓰는 한편, 스틸사진, 비디오 영상, 테이프 녹음 등 취재를 했다. 하라다 기자의 취재에 대해 현지의 일본정부 대책본부는 "인질의 안전, 사건의 평화적이고도 신속한 해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매우 유감이다."고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또 쿄도통신이 대책본부의 자제 요청을 무시한 것이라고 했다. 히시모토 일본수상도 "게릴라측의 주장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를 주어 페루정부의 입장을 매우 난처하게 했다.", "페루정부가 쌓아온 노력이 상당히 후퇴하고 말았다. 앞으로의 교섭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매우 염려된다.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외무성 보도관은 1월 2일 기자회견에서 "페루정부의 노력을 저해하고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했다"며 거듭 정부로서의 불쾌감을 드러냈다. 일본정부의 비난에 대해 쿄도통신은 "예상 밖의 사태에 직면해 순간적인 판단을 했다", "취재활동 허용범위에 있다고 믿고 있다. 당사로서는 이것이 페루정부와 범인 사이의 교섭을 방해하지 않기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현지 리마에서 기자회견을 한 쿄도통신 현지 취재본부 데스크도 하라다 기자 개인의 '해프닝성 취재'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1월 1일 아침부터 게릴라측이 '共同通信 進入可'라는 게시판을 걸어두고 있어 현관 앞에 있던 페루 경찰도 하라다 기자의 진입을 막지 않았다. 또 쿄도통신의 편집국 차장은 "쿄도의 현지 데스크는 하라다 기자의 관저 내부 취재에 앞서 중요한 사실이 있었음을 설명했는데도 일본의 미디어는 대부분 보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新硏 프리토크]에 따르면, 하라다 기자는 크리스마스 무렵 관저 내 취재를 제안하여 사진부 책임자와 회사를 사퇴할 각오까지 하면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함께 새해를 맞을 수 없는 가족에게 인질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전할 수 없을까. 일본의 설날은 페루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며 취재를 요청했다. 또 인질인 대사관 직원이 쿄도통신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리고 있지만, 그런 사실은 없다고 하라다 기자는 말하고 있다. 쿄도통신은 관저 내의 게릴라에게 취재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미리 전하고 있었다. 그 메시지는 12월 31일에 게릴라측에 전달된 모양으로, 그 다음날 아침에 '언제든 창에 OK 신호를'이라는 하라다 기자의 지시대로 '共同通信 進入可'라는 게시가 붙은 것이다. 그래서 하라다 기자의 취재계획을 승인한 쿄도통신의 현지 취재본부는 도쿄 본사와 협의하여 관저 내 취재를 결정했다.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기자 3명과 카메라 기자 2명 등 합계 5명의 취재팀을 구성하여 관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비에게 저지당했다. 여기에서 일단 관저 내 취재를 단념하고 다른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그 직후에 시작된 press tour에 참가한 하라다 기자가 돌발적으로 관저 내 취재에 성공했다고 한다. 각사의 보도 1월 23일자 아사히신문은 페루의 유력 주간지 <카레타스>가 하라다 기자가 관저 내에서 찍은 일본기업의 인질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진을 크게 게재한 것에 대해 "현지에서는 협박사건 등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에 일본기업의 관계자 중에는 '또 다시 게릴라나 몸값을 요구하는 범죄단체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기사는, 사진이 쿄도통신과 계약관계가 없는 이 신문에 현지의 사진부 기자에 의해 제공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기업의 현지 대책본부의 관계자는 "쿄도통신의 사진기자는 그 때 가족에 대한 메시지라는 이유에서 촬영했을 것이다"고 논평했다. 이에 대해 하라다 기자는 1월 31일자 [新硏 프리토크]에서 [카레타스]에 사진을 제공한 것에 대해 [유감스러운 회사의 대응]이라는 제목으로 투고했다. "우리들을 비난하는 매스컴은 인질이 석방되더라도 영상, 음성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익명으로 보도하려고 했을까." 미디어의 대응 하라다 기자에 이어 ANN의 人見剛史 기자가 1월 7일 관저 내에서 취재한 것에 대해 미디어는 지나친 행동이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TV아사히의 본사 책임자는 맨처음 "계열국의 기자이기 때문에" 받아들인다는 취지의 논평을 발표했다. 외무성 보도과는 동남아시아를 방문중인 하시모토 수상이 "이러한 행위는 예상 밖의 사태를 불러올 수 있으며, 사건의 평화적 해결과 인질의 전면적 석방을 위한 페루정부의 노력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으로 유감스럽기 그지 없다."는 논평을 했다고 발표했다. 외무성을 8일 아침, "페루정부의 허가를 얻어 들어갔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며, 이러한 행위는 예측하지 못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극히 유감이다."는 견해를 발표했다. 쿄도통신 하라다 기자의 경우와 똑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TV아사히의 사장은 재빨리 외무성에 대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상의 사죄를 했다. 우정성에 대해서도 사정을 설명했지만, TV아사히의 홍보담당자에 따르면, 그 내용은 쌍방 모두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1월 8일자 아사히 신문은 人見 기자의 취재를 쿄도통신의 관저 내 취재에 이은 '미디어의 게릴라적 행위'로 보도했다. 1월 10일자 아사히 신문의 사설은 제목으로 人見 기자의 취재를 '돌격 취재'라 지칭하며, "쿄도통신 등의 기자의 취재가 비난을 받은 직후의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人見 기자의 행동은 경솔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서 취재할 때는 특별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월 14일자 [天聲人語] 칼럼에서도 "人見 기자는 취재결과를 어떻게 시청자에게 전하려고 했던 것인지 의문이다. 저널리스트의 우선 목표는 취재내용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관저 내에 들어가면 나온 다음 바로 구속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으며, 마이니찌 신문의 사설은 '어리석은 행동(愚擧)'라고 표현했다. 미디어들이 집중포화를 퍼붓는 가운데 쿄도통신과 TV아시히의 반응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쿄도통신은 하라다 기자에게 사장상을 주었으며, 하라다 기자 본인도 자신의 취재의도와 비판에 대한 반론을 조합 기관지에 게재하고 있다. 반면, TV아사히의 경우 먼저 사죄를 하였을 뿐아니라, 人見 기자는 기자회견 이후 취재 일선에서 밀려났으며, 아직까지 본인의 해명이나 반론 기회도 갖지 못한 상태이다. [放送文化 '9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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