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41호] 미 대법원, '의무전송규정' 합헌 판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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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99.12.18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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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미국 대법원은 미국 방송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케이블방송이 지방방송국의 지상파방송을 의무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이른바 말하는 '의무전송규정(must-carry law)'에 대해 대법원이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여지껏 여타의 중요 사안이 그랬듯이 5대 4로 결정된 이 판례는 지상파방송이 케이블업자들에 대해 거둔 또 하나의 큰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 이로써 케이블 방송업자들이 지방의 공공 또는 사적인 방송국의 신호를 시청자들에게 공급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는 연방법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시비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 법은 지난 1992년 케이블방송에 대한 전반적인 입법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써 무료 지상파방송, 특히 영세한 지방방송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입안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현재 케이블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미국 전체의 60%가 넘는 가구들이 지방 지상파방송을 동시에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케이블방송 초기에는 업자들이 주요 3대 지상파방송만을 임의로 자신의 고객들에게 전달했었다. 이것은 주요 지상파방송이 이미 수많은 시청자들을 장악하고 있어서 이에 대한 요구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수많은 작은 지방방송들(지역 공공방송까지 포함해서)은 점점 시청자들에게 도달할 기회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판결은 케이블업자가 어떻게 해서라도 지방방송국에게 채널을 할애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이러한 불안을 없앤 반면 케이블업체의 성장에 심각한 장애물을 마련하게 되었다. 접근권과 언론의 자유 1990년대 후반은 방송업자들에게 있어 유래없는 경쟁의 시기이다. 방송 양식이 다양해짐에 따라 기존의 지상파방송 이외에도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그리고 비디오 대여업자들까지 시청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복잡한 양상의 경쟁을 벌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번 판결은 케이블 산업에 연간 250억 달러에 달하는 불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케이블업체는 각 가정에 케이블을 연결하기 위하여 막대한 돈을 투자해 왔다. Time Warner 같은 대규모의 업체는 자체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스튜디오까지 매입했다. 투자한 금액이 막대한 만큼, 케이블업체측에서는 한정되어 있는 채널을 수익이 되는 프로그램들로 구성하려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투자하여 확보한 채널을 제3자가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하는 '의무전송규정'이란 엄연히 위헌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의무전송규정'이 언론의 자유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해 온 케이블업체측으로서는 이번 판결은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다. 이번 판결의 개요를 살펴보면, 다양한 방송에 대한 공중의 접근권과 개인의 언론의 자유가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의무 전달'에 찬성한 5명의 공동 의견은 만약 케이블 공급업자가 임의대로 채널을 할당할 경우 기존의 지상파방송은 수많은 시청자들을 잃게 되어 존립의 위기를 맞게 되고, 이는 결국 국민들이 다양한 방송에 접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의무전송규정'은 케이블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오락뿐 아니라 다양한 양질의 정보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는 데에 초점을 둔 것으로 이는 위헌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대한 4명의 판사들은 기존의 지상파방송의 존립이 얼마만큼 '의무전송규정'과 긴밀하게 연관된 사항인지, 이러한 법의 시행이 과연 다양한 접근권을 보장하는 데 얼마만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부가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는 새로운 연방법이 다양한 방송에 대한 공중의 접근권을 현실적으로 얼마나 신장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한 고려도 없이 현재 케이블방송이 점유하고 있는 채널수의 3분의 1에 달하는 권리를 케이블업자들에게서 몰수하여 지방 지상파방송에 떠넘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방정부가 '다양성'과 '책임성'이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언론의 자유라는 대원칙을 무시하는 규제책을 입안했다는 것이 반대 주장의 근간이다. 'TBS 대 FCC(Turner Broadcasting System vs.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로 불리는 이 사건은 1994년에 처음으로 고등법원에 제소되었다. 그 당시 고등법원에서는 '의무전송규정'은 케이블방송업자들이 원하지 않는 내용을 자신의 채널에 담아야 하므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언론의 자유에 저촉되는 것이며, 따라서 정부가 이를 제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과 비교하여 고려할 사항이라고 명시하면서, 이 법은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공공의 다양한 방송에 대한 접근권이 케이블업체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방송사에 있어서 큰 판례를 남겼다. '의무 전달'의 부작용 '의무전송규정'으로 야기되는 부작용 또한 없지 않다. 현재 케이블 채널은 비교적 한정적이기 때문에 여러 채널을 지방방송국에 할애할 경우 케이블업체가 방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만든, 그러나 수익이 낮은 여러 채널을 없애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양 프로그램들은 영화, 스포츠 채널에 비해 인기가 없기 마련이다. 그러나 케이블방송 자체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의미에서도 이러한 채널들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널의 부족 현상이 벌어지면서 케이블업체들은 더욱 수익성이 높은 오락 프로그램에만 치중하게 되고, 또한 '의무전송규정'은 그러한 경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C-SPAN의 경우이다.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시청자들에게 직접 전달한다는 공공적인 취지로 설립된 이 채널은 이제 케이블업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1992년 '의무전송규정'이 통과된 이후 케이블회사가 채널 지급을 중단함으로 해서 지금까지 3500만에 달하는 시청자들이 C-SPAN을 더이상 시청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의무전송규정'이 반드시 모든 경우에 양질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접근권을 보장한다고 보기도 힘든 것이다. 어쩌면 이번 판결은 케이블방송의 오락적 성향을 더욱 가속화시킴으로써 케이블산업이 자체적으로 성숙하는 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시청자들을 진정한 양질의 정보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고, 따라서 시청자들간의 정보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은호/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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