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39호] 영국 방송과 헐리우드, 프로그램 제작 교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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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99.12.18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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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의 방송 인력계에서 대두하는 현상 중의 하나는, 방송인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기질에 따라 자신의 작업장소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방송사가 방송인들의 우위에 서서 실제적으로 통제에 가까운 방식의 계약관계를 맺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계약 관계에서 보다 우선적인 선택권을 가지는 편은, 만일 그가 그럴만한 정도의 재능과 인기를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프로그램의 성패를 결정하는 인기스타인 것이다. 영국 방송계에서도 고정 프로그램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개그인들, 토크쇼 진행자들이 보다 좋은 조건을 따라 지금껏 몸담아 왔던 프로그램을 스스럼없이 떠나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시의적인 점은, 방송인들의 자유로운 이동현상이 영국 국내의 방송계만을 배경으로 했던 수준을 넘어서 국경선 바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영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바 있는 심리범죄 드라마 'Cracker'의 제작팀이 고스란히 미국 TV 방송계로 진출하기로 한 사건은 이러한 경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영국의 인기 드라마 'Cracker' 제작팀, 미국 TV방송계 진출 영국의 주요 프로그램 제작사들 중의 하나인 Granada Television의 드라마 제작팀의 지휘자인 Gub Neal을 중심으로 한 이 사건은, 이제껏 주로 미국의 인기드라마를 수입하는 쪽에 있었던 영국으로서는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일단 화제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쪽의 해당 방송사인 ABC가 내세우는 조건이 매우 파격적인 것이다. 즉, 이번 3월부터 Granada의 드라마 방송팀은 역시 그들이 셋팅한 헐리우드의 드라마 제작설비들을 이용하여 '미국판 Cracker'를 제작할 계획이라 한다. 아직 미정인 상태이지만, 미국인 극본가와 배우들로 구성될 이들 프로그램들은 5월부터 피크타임대에 편성되어 시험용 방송에 들어갈 것이고, 이것이 성공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후속작품들이 뒤를 이을 것이다. 또한 Cracker 이외에도, Neal은 다른 두 작품들을 미국에서 제작, 방송할 예정에 있다. 모두 과거 혹은 현재에 영국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거나 누리고 있는 작품들 - 예를 들어 'Band Of Gold Writer Kay Mellor'나, ITV의 새 공상과학 프로그램 시리즈인 '2020' - 을 미국적 구미에 맞도록 재창조한 형식으로, 각각 ABC와 Fox를 통해 미국시청자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국 오락적 드라마의 미국으로의 수출 현상이 함축하고 있는 바를 탐지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새로운 경향에서, TV 프로그램들의 지구화 현상의 실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국가의 방송제작 구조의 탈구상태를 진단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방송조직과 방송인들 사이의 관계맺음 양식이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음 또한 알 수 있다. 첫번째 사항과 관련하여, 제작자인 Neal은 범죄 드라마에 있어서 영국 시청자들과 미국 시청자들 사이의 문화적 간격이 점차 좁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비범한 인물로 정형화되어 온 미국의 형사 스타일, 예컨대 코작이나 콜롬보 등의 전통에 따를 때, Cracker의 피츠와 같은 인물은 잘 맞아떨어진다. 더불어 반드시 정의롭지만은 않고 어딘지 위험스러운 인상을 주는 피츠는 지금까지는 미국형 형사들이 결여하고 있던, 그러므로 이제 미국 시청자들이 원할 만한 캐릭터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 내용의 보편화 현상은, 무조건 저질 오락 프로그램이라는 오명을 받아 왔던 미국식 범죄드라마가 하나의 보편적인 프로그램 장르로 자리잡아 간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국 특유의 문화적 감각, 취향이 점차로 약화되어 가고, 대신 그것이 미국 헐리우드 스타일에 흡수될 위기에 처해 있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한 것이다. 두 번째 지적은, Neal의 본래 소속처가 BBC였으나 이미 그곳을 떠났고 다시는 되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그의 개인적인 경력과 관계가 있다. 그는 자신이 BBC에서 일했던 경험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작품제작 과정에 있어서 관료적 의사결정 과정, 비능률적인 인력 관리 등등은 프로그램 제작자들을 절망감에 빠지게 할 정도라는 것이다. 그는 BBC의 드라마 제작부서가 시급히 재정비되지 않는 한 우수한 인력들이 유출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세 번째 사항과 무관하지 않게도, 방송조직이 프로그램 생산자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생산자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로 이동해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될 것이다. Cracker의 미국산 제작은 영국 방송제작 구조의 전체적인 모습을 대신하는 하나의 중요한 사례일지도 모른다. 전세계의 TV방송이 지구화 - 혹은 미국의 헐리우드화 - 되어 가고 있다는 지적이 이미 주지의 사실이 된 현상태에서, 단지 프로그램 내용상의 획일화라는 단편적인 비판수준에서 벗어나, 제작구조상의 병폐, 직접적인 프로그램 생산자와 생산조직간의 긴장관계 등 보다 심층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점에 접근하려는 태도가 요구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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