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PCOM 2007 참가기 - 초짜, palais에서 (4일 동안이나) 길을 잃다
'처음'은 설렘이자 두려움, 걱정이다.
OBS의 개국이 11월이라 10월에는 아무래도 정신없이 바쁠 것 같아 MIPCOM은 가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다가 조금은 늦은 감이 있었던 9월 초, 참가하자는 회사의 결정은 담당자인 나를 당황하게 했다. 지난 10년여를 iTV 제작 쪽에서 일하다가, 새방송사 OBS에 와서 편성국 편성팀 소속 PD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잘 모르는 구매 프로그램 수급을 맞게 되니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MIPCOM 참가비가 심하게 비싸서, 섣불리 참가하여 웬만큼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 때 들려온 KBI의 참가비 지원 소식은 회사가 져야할 경제적 부담을 적잖이 덜어주고 덩달아 나의 심적 부담을 조금 가볍게 해주어 반가웠다.
그 러나 여전히 MIPCOM의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지난 5월의 BCM과 8월의 BCWW로 어느 정도 워밍업은 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어디 MIPCOM에 비기겠는가?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선 50% 먹고 들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걸 보면 분명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있었고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해마다 4월, 10월이 되면 다들 MIPTV,MIPCOM 하던 그 MIPCOM이 아닌가? 세계 최대 프로그램 시장이고 세계 방송의 흐름이 보인다는 그 유명한 견본시. 그 이름값만으로도 나 같은 초짜를 오금 저리게 하는 대상이었다.
MIPCOM 사이트를 통해 그간 만나지 못한 몇몇 해외 유명 제작, 배급사에 meeting request를 넣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sorry, already fully booked'. 아 좌절이여.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거절부터 당하다니... OBS의 참가 등록 시기가 늦긴 했어도, 남들이 15분, 30분 단위로 잡는다는 ’줄미팅‘이 내게는 ’간간히미팅‘이 되어 내 나름의 일일 스케줄표에 그려진 걸 보며 나의 출장이 걱정과 두려움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결국 나에게 미팅 요청을 해온 무명 해외 제작자들이나, 배급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덥석 미팅 약속을 받고, ‘나도 미팅 약속을 꽤나 잡았다고. 이거 왜 이래!’하는 자조를 했다. 그리고 내심 이번 MIPCOM 나의 목표는 ‘명함 수거와 OBS 홍보’라는,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나만의 목표를 비밀스럽고 부끄럽게 간직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10월 8일 아침, 시차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더 부담스러웠던 두려움에 일찍 깨어 MIPCOM에 몸을 던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낯익은 국내 방송사, 배급사 분들 덕에 무사히 등록도 하고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규모가 컸다. 부스도 많았고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도 많았다. 메인 행사장 외에도 해변으로, 요트로 여기저기 부스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행사장 부스 안내판 해독(?)도 못해 어떻게 찾아가야 할 지 헤맬 지경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첫 날 오전 EBS 남한길 PD의 친절한 안내로 행사장 배치를 대충 이해하고 아주 조금 MIPCOM의 규모를 파악한 뒤 내 나름의 미팅을 ?아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가 너무 짧았고 행사장은 너무 컸다. 만나고 싶은, 만나야할 대상들은 많았는데 나의 미팅 스케줄은 보잘 것이 없었다. 좀 여유 있게 보고 싶은 부스가 많았는데 내 마음이 너무 조금하고 보는 눈이 없었다. 다들 메이저라고 하는 데하고는 미팅을 잡지 못했는데 또 아주 감사하게도 디지털 미디엄 문성환 팀장 도움으로 꼽사리미팅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OBS를 알리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내 나름으로는 최대한 많이 보고 많이 다녀서 이것저것 챙겨보자는 심산이었는데 자꾸자꾸 길을 잃고 헤맸다. MIPCOM에 오신 어느 한국분 말로는 최소 세 번 정도는 와야 비로소 길이 보이고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내가 하도 여기 저기 돌아다니니까 다른 사람들은 내가 꽤나 열심히 미팅을 하고 프로그램 정보를 획득한 줄로 아시는데, 정작 나는 내 출장 현실이 알려질까 두려울 정도로 헤매고 방황했다. 올해는 개국을 이유로 혼자 왔기 때문에 더욱 부담감이 커서 더 잘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다그쳤지만, 다그쳐서 될 일이라면 그 누가 못할까? 연륜, 경험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인가 새삼 느낀 MIPCOM이었다.
반 면 정말 매력적인 시장이었고 내겐 아주 소중한 기회였고 앞으로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행사라는 점은 가슴깊이 새겼다. 구매 담당자 뿐만 아니라 제작 담당자, 홍보 담당자 등 방송사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라도 한번 이상 다녀가 보면 분명 피가 되고 살이 될 경험과 배움의 장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전체 규모에 기죽고, 메이저 방송사・배급사 부스의 현란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으며, 넘쳐나는 프로그램 수에 압도당하고, 내 짧은 언어에 한숨지은 매가리 없었던, 가엷은 나의 첫 MIPCOM. 그래서 나는 MIPCOM을 사랑하기로 맘먹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음이라'. 이제 두 번 이상 더 참가하게 된다면, 세계 최고 프로그램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익히게 될 것이다. H와 R과 L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자원봉사자의 길안내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보다 여유 있게 프로그램을 살펴보는 능력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힘든 하루 일정을 마치면 올드 칸느에서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정리하는 교양(?)도 갖추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 MIPTV가 사랑스러워진다.
글 ● 신하연 / OBS 편성국 신하연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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