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인도 델리데학교에서 동아시아학을 강의하고 있는 산딥 쿠마르 미쉬라씨의 기고문으로 국정브리핑 2007. 1. 26일자에 게재된 것을 전재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 단체인 정동극장이 최근 인도 세곳의 메트로폴리탄 지역에서 공연을 했다. 인도인들은 전 좌석을 꽉 채운 가운데 환호를 보냈다. 외국 공연단에 대해서 그토록 후하고, 격렬하며, 오랜 시간의 갈채를 보낸 예는 거의 없었다. 공연단이 한국 음악을 인도 관객들에게 연주할 때 공연장의 모든 사람들은 무아지경에 빠져든 것 같았다. 매혹적인 공연에 매료된 관객들은 쉬지 않고 앙코르를 외쳤다. 분명히 그것은 한류가 인도의 문을 두드린 것이고 모든 면에서 볼 때 그 두드림은 매우 강렬했다.
한 류는 인도 문화와 음악분야의 가장자리에 이제 막 도달했지만, 동아시아와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에는 이미 격렬한 물줄기가 되어 쏟아져 들어갔다. 한류의 확산은 (한국의) 이웃국가인 일본과 중국에서 시작되어 10년간 지속되어온 과정이다. 한류는 이어서 동남아 국가들을 강타했다. 처음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한류 현상을 문화접근이론의 관점에서 파악하면서 한류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문화접근이론은 문화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국가들이 문화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국가들보다 더 큰 문화적 현상의 수용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한류의 영향은 한국과 문화적으로 유사성을 갖는 국가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러나 갈수록 한류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힘 때문에 지역적 그리고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확산될 수 있다는 인식과 이해가 높아졌다.
한국 정부는 한국과 지리적, 문화적으로 먼 국가들에까지 한국 드라마를 확산시키는데 관심을 가졌지만 그 드라마들의 인기와 수요, 지속가능성은 정부의 지원만으로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한류 문화 상품들에 대해서는 대중적인 수요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예를 보면 일본과 한국 사이에 정치적인 입장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겨울 연가’ 같은 한국의 드라마들은 일본인들 사이에 하나의 유행(fad)이 되었다. 한국 정부가 이러한 문화 상품들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촉진시켰을 수는 있지만, 문화적 특성이 세계적인 것이 되려면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관심과 영감을 이끌어 내야만 한다는 것이 검증되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외국에서 그러한 문화 상품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 공연팀의 인도 공연의 경우도 주 인도 한국대사관과 인도문화관계협회가 그 공연을 주관했지만, 공연에 쏟아진 모든 갈채에 대한 공(功)이 그 기관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관객들이 그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은 본질적으로 한국 문화의 힘인 것이다.
2006년 5월부터 6월까지 한류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 대표단이 인도·인도네시아·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인도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 드라마 ‘해신’이 DD-1 TV에 의해서 2006년 7월23일 첫 방송을 탔다. 인도인들에게 풍부한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MBC의 대성공을 거둔 드라마 ‘대장금’도 9월 24일부터 DD-1에 의해서 방영이 됐다. '해신'의 시청률이 0.8% 수준에 머물렀던 초창기에는 이 드라마들의 인기를 가늠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이후 해신의 시청률이 4%대로 상승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초창기에 있는 한국 드라마 인기에 대해서 단정적인 얘기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인도에는 이 드라마들을 매우 좋아하고 더 자주 방영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이 드라마들은 일주일에 한번 방영된다).
인도 뿐 아니라 파키스탄과 같은 다른 서남아 국가에서도 한국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있으며, 곧 파키스탄인들도 자국의 채널을 통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영원불변의 보편성을 지닌 대하드라마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인기 있는 소니 TV 채널(머독의 스타TV, 인도의 Zee TV, 일본의 소니가 투자한 TV 방송)이 한국의 드라마에 깊은 관심을 갖도록 만든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한국 드라마의 인기와 대규모의 시장 가능성 때문이다. 소니 TV는 자체 프로그램에 한국 드라마들을 포함시킬 뜻이 있음을 나타냈다. 이러한 모든 현상들은 한국과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남아시아 국가들에게도 한류가 유입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른 성질의 것이기는 하지만 한류가 처음 인도에 상륙한 것은 1990년대 초반 인도 시장 자유화 과정의 일환으로 해외의 기업들에게 문호를 열었을 때이다. 근래에 활발한 인도와 한국 간 상호교류의 첫 단계는 본질적으로 대우·현대·LG·삼성과 같은 한국 기업들에 대한 친밀감이 점차 높아지면서 부터이다. 그 당시만 해도 인도에는 한국의 재벌 기업들 그리고 그 한국 기업들의 상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후 몇 년간 이 기업들은 사업을 확장하고 상품의 다각화를 꾀했으며 인도 어느 가정에서나 한국 기업들은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특히 인도 도시 지역에서 한국 상품을 쓰지 않는 가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점차적으로 한국의 중·소기업들도 인도 시장에 진출하면서 인도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노력과 경제적인 이해관계 덕분에 한국과 인도의 양자 무역은 1991년 5억7천만 달러에서 2006년에는 거의 1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렀다. 한국의 철강 거대기업인 POSCO가 오리사주의 파라딥 종합제철소 건설에 15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함에 따라, 앞으로 수년간 한국 다국적 기업들의 인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해볼 수 있다. POSCO의 대 인도 투자는 지금까지 외국 기업의 인도 투자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한국 기업의 단일 해외 투자 가운데서도 최대 규모이다. 이것이 인도에서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경제 한류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한국 기업들의 인도에 대해서 높아지는 관심은 다양한 형태의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늘어감에 따라 인도에서는 한국어 뿐 아니라 한국학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인도에서 자와하랄 네루 대학 한곳에서만 강의되던 한국학은 2002년에는 델리대학에, 2005년에는 마드라스 대학과 캘커타 대학에 개설됐다. 해마다 한국학과 연관된 다양한 과정에 등록하는 학생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델리 대학은 ‘한국주간’, 자와하랄 네루 대학은 ‘한글날’과 같은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러한 행사들은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점과 관련해 델리 대학 ‘한국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선보이는 한국 연극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해마다 올려지는 연극의 감독들은 한국에서 오지만 출연진은 델리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인도 학생들이다. 2004년과 2005년에는 한국 연극 춘향전과 흥부전이 공연됐고 인기도 매우 높아서 한국 연극 공연은 ‘한국주간’ 행사의 핵심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 연극에 대한 수요와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올해는 한국 연극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인도의 주요 연극 공연이 올려지는 델리의 카마니 극장에서 공연됐다.
따라서 인도 국영 TV에서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는 것이나 한국 문화 공연에 대한 대대적인 지지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도에서 한국의 경제 기적 뿐 아니라 다양한 한국 드라마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중국·동남아로 한류가 폭넓게 확산된 것과 마찬가지로 한류는 남아시아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그 가능성을 가늠해보면 인도에 유입된 한류가 가시적이고 주목받는 존재가 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나라 간에 포괄적인 관계 증진이 이루어지고 경제분야 관계에서 비약적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한류가 더 인기를 얻고 강력해 질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화접근론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과 인도는 가야왕국 김수로왕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김수로왕은 기원전 1세기 인도 아유타 왕국의 공주와 결혼했다. 그러나 고대의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가 과거 두 나라 간의 유일한 교류는 아니다. 불교와 아시아적 가치들은 한국과 인도에서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공통적인 문화현상이다. 역사적, 문화적 연계와 점차 강화되는 두 나라 간의 경제적 관계를 토대로 한류는 11억 인구를 가진 이 나라에 지속적인 흐름을 가지고 유입될 것이다. 문화접근론을 넘어서 살펴보더라도 많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한류 문화상품은 동시에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드라마들은 가족· 우정·사랑·탐욕·배신과 같은 정서적으로 끌리는 주제에 관한 장면과 대사를 보여준다. 보편적인 주제는 한류가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적 상황을 뛰어넘어 호소력을 지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드라마들은 대사와 연기에서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적 현상인 가치와 믿음, 관행들을 보여준다.
한류 현상 그리고 한류가 인도와 남아시아 같은 멀리 떨어진 국가들로까지 확산되는 것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소프트 파워’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여기서 소프트 파워는 한국이 아이디어, 문화, 비즈니스 관행, 지적 노하우, 정치 및 사회적 가치 등과 같은 무형의 자원에 기반을 둔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사력·인구·영토·원자재와 같은 물리적 자원에 주로 의존하는 하드 파워와는 대조적으로, 무형적 자원의 전파는 확실히 한국이 아시아에서 보다 중대한 역할을 하는 지렛대를 제공해 줄 것이다.
21 세기는 무형의 시대라고 말해진다. 분명 한류와 (한류가) 아시아인들의 사회적 정신에 미치는 무형적 영향력은 새로운 세기의 도래와 함께 주목받는 현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류의 전망은 인도는 물론 남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유망해 보인다. 그러나 인도의 크기와 하부구조적 요인을 감안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인도에서 한류는 인도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으면서 좋은 출발을 보였고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할 수 있지만 인도만의 독특한 과정을 거칠 것이다. 지금까지 오직 두개의 드라마만이 인도에서 방영됐지만 앞으로 ‘열아홉 순정’, ‘파리의 연인’, ‘내 이름은 김삼순’과 같은 드라마들이 소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 배우들이 출연하는 한국 드라마의 인도 촬영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3월 한국 드라마 프로덕션 DHB는 태국에서 촬영된 연예쇼 프로그램 ‘무야무야’를 선보였고 이 프로그램은 태국에서 6개월 만에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 2년간 모두 10개의 한국 프로덕션이 태국·베트남·중국 등지에서 TV 프로그램 제작을 하기 위한 해외시장조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역시 이 리스트에 포함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한류가 인도에 소개될 수 있도록 한 원인이 한국을 알고자 하는 인도인들의 요구 때문인지, 아니면 한류를 인도와 남아시아에 진출시키고자 하는 정부의 지원으로 시작된 것인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경제, 문화적 교류 증진을 위해 한국 문화 상품을 남아시아 국가에 들여와서 이 지역 국민들에게 소개 시키는 것은 (한국)정부와 민간 분야 관계자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지리적인 거리를 감안할 때 한류 확산을 위해 처음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그 단계를 지나면 한류는 한국과 다른 상대 국가들 간의 관계를 가깝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인도의 사례는 이러한 점에서 하나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인도=산딥 쿠마르 미쉬라 (sandipmishra10@gmail.com) ※ 국정브리핑 2006.11.22일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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