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화질 디비디(DVD) 시장의 중흥을 위한 할리우드의 전략
얼마 전, 향후 영상물 시장의 판도를 가늠할 차세대 고화질 디비디(DVD) 기술표준 전쟁의 종지부가 찍혔다. 1980년대에 경험했던 ''비디오 녹화재생(VCR)'' 기술표준을 위한 전쟁의 제2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번 기술표준 경쟁에서 소니의 ''블루레이(Blue-ray)''가 도시바의 ''HD DVD'' 방식에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로써 소니는 1980년대 자사의 베타맥스(Betamax) 비디오 녹화재생 기술이 JVC사의 VHS 방식에 패배했던 기억으로부터 홀가분해질 수 있는 기회뿐만 아니라, 현재 기타 가전 및 컴퓨터 시장에서 기업경영의 위기를 타개할 (잠재적인) 출구를 찾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블루레이 방식의 승리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따르고 있다. 이 방식은 기존의 적색 레이더 광선을 사용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짧은 파장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기록, 저장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청색 레이더 광선을 사용한다.
최근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이 기술적 혁신이 가져올 가정용 고화질 DVD 시장의 성장을 고대하고 있다. 1990년대 DVD가 미국 가정에 들어온 이후, DVD 시장은 미국 영화 시장 수입의 약 60%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도전이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도 또 다른 현실임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잘 알고 있다. 최근 미국 내 DVD 영화 판매는 지난해 대비 3.2%가 감소하여 약 16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이는 미국 DVD 시장에서 첫 번째 겪었던 수입 감소라고 아담스 미디어 리서치 회사는 전한다. 이는 최근 초고속 브로드밴드가 미국 각 가정에 폭넓게 보급되면서, 미국 수용자들이 DVD보다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를 활용하여 가정에서 영화나 텔레비전 시리즈를 감상하려고 하는 소비패턴을 반영하는 것이며, 케이블 텔레비전 채널의 다양화와 더불어 티보와 같은 디지털 비디오 레코더 시장의 대중화가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커다란 도전이 되어오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이러한 변화에 맞서 새로운 고화질 DVD 시장이라는 것으로 맞서려고 하는 듯하다.
할리우드는 왜 이러한 대중적인 소비 패턴의 변화에 일종의 ''거스르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미국 미디어 산업의 강력한 성장 동력이 산업 간 시너지 효과를 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전략에서는 분명하게 찾을 수는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소니사와 컬럼비아 영화사 등을 제외하고는 할리우드 영상 콘텐츠와 고화질 DVD 하드웨어 산업 간의 수직적 통합의 연계성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할리우드와 기존 VCR 기기 산업 간의 전통적인 연대성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다른 두 가지 이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수용자들의 특정 미디어 이용에 관한 밀착성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본다. 일단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된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한국에서처럼 디빅스 레코더를 이용하여 컴퓨터가 아닌 텔레비전을 통해 시청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정용 평면 텔레비전의 거대화를 위한 기술적 추세를 고려한다면, 영화나 텔레비전 시리즈를 컴퓨터가 아닌 텔레비전을 통해서 편안한 자세로 안방이나 거실에서 보는 전통적인 시청 패턴이 여전히 유효한 문화적 요인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둘째, 블루레이 방식이 영상물의 저작권 보호 방식에서 보다 더 강화된 통제 시스템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가 당시 블루레이가 아닌 ‘HD DVD’에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참여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블루레이 방식은 지나치게 저작권자의 권리만을 보호하기에 적합한 기술장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지난 행보에 비추어 다소 아이러니한 언급이지만, 블루레이 방식에서 소비자들은 영상물 콘텐츠 제공자의 서버에 접속하여 디지털 파일을 스트리밍하여 전송받은 후에 디스크에 저장된 영상물을 DVD 장치에서 재생하거나 다른 허가된 외부 장치에 옮기게 된다. 실제로, 최근 폭스 DVD는 지난달부터 이러한 방식을 통해 DVD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즉, 폭스사가 판매하는 DVD 영화를 구입한 소비자는 이를 우선 자신의 컴퓨터에 연결하여 DVD 재생에 필수적인 파일을 5분 만에 다운로드 받은 후에 이를 시청하거나, 자신의 아이파드(디지털 MP3 플레이어)에 옮겨 이를 재생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현행 미국 디지털저작권법(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을 위반할 소지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디지털 저작권관리기술, 즉 DRM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디지털 파일은 전송과 보관, 재생 등은 저작권의 침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강화된 저작권보호기술 때문에, 블루레이 방식이 적용된 영상물의 소비자는 고작 30일의 제한된 영상물 재생에 관한 권리만을 갖는다는 문제도 지적해야 한다고 지지 손은 전한다.
DRM 없는, 하지만 워터마크 된 디지털 콘텐츠
최근 아마존이나 이뮤직(emusic.com) 등이 DRM이 적용되지 않는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미국 최대의 출판사 랜덤 하우스가 같은 내용의 발표를 하였다. 이로써, DRM이 그 기술적 활용의 의도와는 달리 소비자의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권리를 제한하고 효율적인 활용을 가로막는다는 사회적 비판이 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계기를 만났다. 이 발표에서, 랜덤하우스는 자사가 제공하는 디지털 전자책이 대부분 CD나 DRM이 적용된 디지털 파일을 통해서 불법복제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DRM을 굳이 적용하지 않더라도 저작권 관리를 위한 노력을 디지털 콘텐츠 제공자들이 포기한 것은 아니다. DRM 대신 적용한 기술은 워터마킹(watermarking)이라는 기술인데, 이것은 디지털 파일에 해당 콘텐츠의 내용을 식별할 수 있는 데이터를 삽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통해 MP3 음악 파일이나 영화가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경우, 불법복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즉, DRM은 디지털 파일의 전송 자체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기술장치를 말한다면, 워터마킹은 전송은 허용하되 그것의 교환 과정이 저작권법을 준수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감시 테크놀로지인 것이다. 가령, 이 워터마킹 기술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새 영화의 시사회를 위해 제공하는 디지털 영화 필름 (스크리너)의 불법복제와 배포를 막기 위하여 사용한다. 또한 워터마킹은 기술적으로 콘텐츠에서 분리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도 불법복제 여부를 감시하는 효율적인 기술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이클 와인버그에 따르면, 이뮤직의 경우 디지털 음악 파일에 워터마킹 기술의 적용 사실을 소비자보호 정책란에 분명하게 기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워터마킹에는 소비자의 신용카드 정보와 같은 개인신상 정보를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는다면, 이는 저작권보호를 위하여 불법파일 복제를 막는다는 명분 이외에도 소비자 정보가 남용될 수 있는 위험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기술장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저작권화 된다면?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의 영화, 음악, 그리고 도서 시장에서는 콘텐츠 보호를 위해 새로운 기술혁신의 내용을 판단하고 적용하고 있다. 이것이 영상물 콘텐츠의 정당한 법적 보호를 위한 노력임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궁극적으로 그 법적 권리의 보호를 위하여 소비자의 영상물 소비패턴과 개인정보 보호 등이 이차적인 중요성을 갖게 된다면, 그와 같은 새로운 기술혁신의 내용은 사회적 재검토의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다. 저작권법의 제정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 얼마나 자신 이외의, 혹은 자신을 넘어서 다른 문화의 ''복제 동물''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문화의 복제 과정이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저작권법 제정의 의미라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하원의원 하워드 코블은 저작권 침해를 ''개인정보 절도(identity theft)''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저작권 침해자들의 인터넷 접속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셔윈 사이는 논평에서 이것은 법의 절차성을 무시하는 초헌법적 발언이며, 사회적 문제를 막기 위하여 보편적인 개인 권리의 침해를 정당화하는 시도라고 비판하였다. 우리가 보고, 듣고, 먹는 대부분의 것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누군가에 의한 창작물이라고 할 때,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것이 저작권화 된 세상을 상상한다면,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개인정보 절도자''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 패션디자이너 위원회(the Council for Fashion Designers of America)라는 단체는 ''패션''을 저작권화할 방법을 찾고 있는데, 버지니아 대학교 법학교수 크리스 스프리그맨은 이것이 상표도용이나 디자인 불법복제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패션 산업 자체가 심각한 저작권 논란에 휩싸일 수 있으며, 더욱이 패션 산업이 그 ''패션''의 대중문화로서의 의미를 법을 통해 전유하려는 ''부패''한 시도라고 말한다(패션 산업은 이를 위해 미 의회에 상당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소비자의 권리가 문화의 정당하지 못한 유통과 소비를 부추기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산업에서 문화의 유통과 소비를 위해 소비자의 다양한 문화 생산과 소비 패턴이 산업의 논리에 내던져지는 것 역시 용인될 수 없는 문제이다.
◦ 참고 : - Brooks Barnes and Matt Richell, "Studios Are Trying to Stop DVDs From Fading to Black", 25 February 2008, http://www.nytimes.com/2008/02/25/business/media/25dvd.html?pagewanted=1&_r=2&sq=DVD&st=nyt&scp=3. - Gigi Sohn, "It''s Deja Vu All Over Again for Hollywood", http://www.publicknowledge.org/node/1411. - Michael Weinberg, "Watermarks Used for Good, but Are They Evil?", http://www.publicknowledge.org/node/1421. - Sherwin Siy, "Pulling the Plug on P2P (or the Internet): a poor solution for infringement or ID theft", http://www.publicknowledge.org/node/1434.
◦ 작성 : 성민규(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스터디즈학과 박사과정, MinkyuSung@gmail.com)
◦ 출처 : 동향과 분석 (통권 2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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