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인터넷 이용에 관한 최대 이슈인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의 고수냐 폐지냐의 논쟁의 결론에 매듭이 맺어지기 시작했다. 10월 22일, 오바마 정부의 새로운 연방통신위원장 줄리어스 제나초프스키(Julius Genachowski)는 예상대로 네트워크 중립성 강화를 위한 제안서(Notice of Pro posed Rulemaking: FCC-09-93A1)를 채택하여 발표하였다.
모두 107쪽으로 만들어진 이 제안서에서 제나초프스키 위원장은 미국 경제회생의 새로운 주춧돌로서 인터넷을 강조하고, 따라서 개방적이고 공익 중심의 원칙을 지키는 것을 미국 인터넷의 미래라고 보았다. 2010년 1월 14일까지 전화나 통신, 케이블은 물론이고 텔레비전과 영화 등 다른 미디어산업과 각종 시민단체와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2010년 3월 5일까지는 이들의 논평과 제안에 대한 연방통신위원회의 입장을 정하기로 하였다. 아래에서는 이 제안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이 제안서의 주요 논쟁자로서 에이티엔티(AT&T)나 버라이즌(Verizon) 같은 거대 통신기업들의 현재 및 향후 대응 등과 그 속에서 진행되는 논쟁들을 다루어본다.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 존폐에 대한 간략한 역사와 현재 공적 논쟁의 수준
여러 차례 다루어온 이슈인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에 대한 논쟁은 미국 사회에서 거대 통신기업이나 학계 그리고 관심 있는 시민단체 등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인터넷 이용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크게 공론화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 자체에 대한 인터넷 이용자들의 반대를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이용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감히 도전받고 있다는 생각을 미국 국민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는 보다 근본적으로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에 대한 설명이 사회적 차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에 기인한다.
그 논쟁이 점화된 후 지난 4년 동안 매 학기마다 필자가 아이오와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스터디즈학과에서 가르치는 두 개 과목의 학생들에게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설문조사해 보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원칙에 대해 들어본 경험이 있는 학생이 거의 전무할 정도였다. 구글(Google) 검색을 대학의 전자 도서관으로 이해하고,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Facebook)이나 단문 블로깅 사이트인 트위터(Twitter) 등을 손에서 떼지 못하며, 유투브(Youtube)나 훌루(Hulu)를 통해 미디어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미국의 젊은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인터넷 삶의 인프라 중에서도 인프라인 네트워크 중립성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차지하더라도 그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이 원칙의 존폐 논쟁이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공적 수준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반성할 문제임은 틀림없다.
따라서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의 기본 내용을 간략하게 살피고, 이번 연방통신위원회의 제안서 내용 등을 둘러싼 논쟁을 토론해 보자.
‘네트워크 중립성’이란, 말 그대로 ‘네트워크는 그 어느 누구의 이용에 관해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점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인터넷 서비스 제공 사업자(한국으로 치자면 가령 KT나 SK브로드밴드 등)가 제공하는 가격 차별화된(즉, 가격에 따라 속도가 차별화되는) 서비스를 선택적으로 이용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네트워크 중립성이란 이미 지켜지고 있는 것 아닌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한국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필자가 조사했던 미국의 대학생들에게서도 나오는 똑같은 질문이다. 이들 역시도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에이티엔티나 컴캐스트(Comcast) 등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에게 월별 사용료를 지불하고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터넷 서비스 접근에 대한 가격 차별화를 가지고 네트워크 중립성을 논의하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 중립성이라 말할 때, ‘네트워크’는 분명 이러한 사업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또는 학교나 공공 서비스 등이 독자적으로 설치하여 관리하는 인터넷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립성’이란 이러한 인터넷망에 대한 접근에 대한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망에 놓인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접근’을 의미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컴캐스트가 제공하는 인터넷 브로드밴드 서비스 중에서 가장 싼 월 30달러에 다운로드 기준 250MB의 속도의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 공하를 가리켜 네트워크 중립성을 말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자신의 컴캐스트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유투브 사이트에 접속하려 할 때 어떤 제한을 받는다면, 이때 네트워크 중립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물론 해킹이나 유해 콘텐츠의 유통과 관련된 사례라면 관련 법 등에 따라 유투브에 대한 접속에 제한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유투브가 아니라 인터넷망을 운영하는 컴캐스트가 이 이용자의 유투브 접속에 대하여 이 사이트에 대한 트래픽이 타 사이트들에 비해 월등히 높아 네트워크 관리와 컴캐스트의 수익성을 위해 월별 30달러 이외의 다른 추가 비용을 요구할 때, 이것을 가리켜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의 위반’이라고 말한다.
네트워크 중립성에 대한 논쟁은 미국의 가정 내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 이용률이 2003년 즈음부터 50%를 넘어 2004년에는 무려 전년 대비 약 36%나 증가하면서, 브로드밴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대 케이블 및 통신 사업자들이 시장 확대를 위한 다양한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2005년부터 본격 점화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당시 연방통신위원회는 2005년 를 발표하여 1934년의 연방통신법에 기초한 인터넷의 개방성(openness)을 강조하는 네 가지 일반적인 인터넷 관련 정책 원칙들을 천명하였다. 이들 네 가지 각 원칙들은, 첫째, 인터넷 이용자들의 인터넷상 법적 요건이 갖추어진 콘텐츠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고, 둘째, 이러한 콘텐츠에 접근하기 위해 인터넷 이용자들이 자신의 애플리케이션(예를 들어, PC냐 Mac이냐 등에 따른 브라우저나 소프트웨어)의 선택과 서비스 이용에 대한 선택을 보장하며, 셋째, 인터넷 이용을 위한 컴퓨터의 사양이나 종류 및 브랜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기전자기기의 소비자 선택과 이용을 보장하고, 넷째, 인터넷 이용자들은 위 세 가지를 위한 사업자들의 경쟁을 충분히 보장 받는다 등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이 모든 네 가지 원칙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브로드밴드가 ‘공공의 인터넷 이용이 갖는 개방적이고 상호 연결된 본성(the open and interconnected nature of the public Internet)’을 보장하고 적극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원칙이었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초 컴캐스트가 빗토렌트(BitTorrent)라는 개인 간 파일공유 프로그램을 이용한 특정 인테넷 트래픽을 ‘네트워크 관리(network management)’라는 이유로 차단하거나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정했던 사건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 오고가는 파일의 불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타당성에 관한 논란과 더불어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에 대한 침해 및 미국 수정헌법 1조가 규정하고 있는 ‘언론자유’의 원칙과도 위배된다는 공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2009년 초 연방통신위원회는 라는 결정을 통해 컴캐스트의 그와 같은 행위에 대하여 소비자 권리 침해라는 엄중한 경고를 내렸다.
여기에 올 초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 이후 얼마 전 공식적으로 임명된 새 연방통신위원회가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의 강화를 천명하며 보다 구체적으로 9월 중순 의회와 더불어 다양한 법안 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노스다코타(North Dakota) 주 출신 연방상원의원인 민주당의 바이런 도건(Byron L. Dorgan)은 9월 28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메인(Maine) 주 출신 공화당 연방상원의원인 올림피아 스노위(Olympia J. Snowe)와 더불어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의 강화를 위한 법안 제출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10월 8일, 제나초프스키 연방통신위원장은 역시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은 인터넷의 개방성과 시장성을 보다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근본적으로 소비자들의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자유롭게 보장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2009년 네트워크 중립성 강화를 위한 연방통신위원회 제안서
이번 연방통신위원회의 제안서에서 우선 주목할 점은, 현재 인터넷과 관련한 공적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다. 먼저, 이 보고서는 현재 인터넷 이용자들이 제한된 경쟁과 선택권에 놓여 있음을 강조한다. 둘째, 그 제한성에 대한 배경으로 이 제안서는 현재 브로드밴드 서비스 산업의 구조를 지적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네트워크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이 제안서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네트워크 관리가 반드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 이용의 보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번 보고서는 지난 2005년 발표되었던 의 네 가지 원칙들에 ‘비차별 원칙(nondiscrimination principle)’과 ‘투명성 원칙(transparent principle)’을 추가하고 있으며, 여기에 ‘네트워크 관리’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규정을 더불어 제안하고 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비차별 원칙
이 원칙은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법적으로 정당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기타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이용자에 대한 이용료 부과 등의 방법을 통해 선호나 비선호를 나타내는 것을 차별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에게 ‘합당한’ 이유의 네트워크 관리(reasonable network manage ment)를 하도록 허용한다. 연방통신위원회는 합당한 네트워크 관리란 제한 트래픽의 정체 문제를 해소하고 불법적이거나 이용자들에게 유해한 트래픽의 문제를 다루거나 금지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연방통신위원회는 네트워크 관리의 ‘합당함’에 대한 정의를 위해 무엇이 합당하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지에 대한 공적 의견 제출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네트워크 관리란 컴캐스트의 빗토렌트 트래픽 차단 사건에서처럼 특정한 인터넷 이용을 기술적 판단의 타당성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판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인터넷 이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치들을 효율적으로 취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 일차적 목표라고 연방통신위원회는 제안하고 있다. 연방통신위원회가 잘 인지하고 있는 바, 여기서 문제는 어떤 기술적 방법을 통해 어떤 문제를 ‘타당한 관리’의 항목 아래 둘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향후 각계로부터의 논쟁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연방통신위원회는 모든 인터넷 트래픽이 제안된 네트워크 관리의 목적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IPTV, 즉 인터넷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한 의료행위와 관련한 기술 활용 등 보다 향상된 서비스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네트워크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 투명성 원칙
비차별 원칙을 통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비록 네트워크 관리를 허용 받음으로써 특정한 인터넷 트래픽에 대한 간섭을 이룰 수 있지만, 이들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네트워크 관리에 관한 정보를 제출(disclose)해야 한다는 것을 이 투명성 원칙은 제안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보 제출’은 이용자들의 ‘정보 접근(access to information)’에 비해 다소 덜 적극적인 정책 방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데 연방통신위원회가 여기서 또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정보 제출을 통해 이용자들이 인터넷 서비스 사업에 대한 구입과 서비스 이용에 대한 보다 충분한(informed) 결정을 내리도록 도모하려 한다는 점이다.
연방통신위원회 제안서 제출을 둘러싼 파장
이번 제안서가 제출되기 전부터 AT&T, 버라이즌, 컴캐스트 등은 보수적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이나 공화당 의원들과 각 주지사들을 상대로 상당히 포괄적인 전방위 로비를 하였던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 등을 통해 드러났다. 52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총 18만 달러의 (합법) 정치자금을 AT&T로부터 받았고, 연방하원 전체를 놓고 보면 AT&T의 정치자금 제공 규모는 무려 40만 달러를 넘는다. 버라이즌이나 컴캐스트는 연방통신위원회에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이 미디어산업의 성장에 대한 지나친 정부규제라는 서한을 전달한 의원들에게 모두 약 7만 3,000달러의 정치자금을 제공하였다. 심지어 대표적인 네트워크 중립성 옹호자인 매사추세츠 주 민주당 하원의원인 에드워드 마키(Ed Markey)도 무선통신그룹인 CTIA와 미국 제2위 케이블 사업자인 타임워너(Time Warner)로부터 각각 1,000달러와 8,000달러의 정치자금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파장 가운데 이번 제안서 제출 이후 최종 결정이 이루어지기까지 사회적으로 어떤 합의와 법적 분쟁이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 가장 일반적인 관측은, 거대 통신기업들이 연방통신위원회의 결정을 법원으로 가지고 감으로써 이 과정에서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는 청문회나 공청회 등을 지속시킴으로써 그 최종 결정 시한을 최대한 미룬다는 것이다. 이 경우 거대 기업들은 최대 5년까지 시간을 벌 수 있고, 만일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경우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 철폐론이 우세한 공화당 정권 아래에서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보다 분명히 공론화가 이루어지는 이 문제에 대해 미국 국민들이 언제나 조용할 것이리라는 생각은 현재 미국 경제회복에서 인터넷 브로드밴드망의 확대 구축이 핵심 사안으로 제기되고 있는 만큼 그리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 가운데 거대기업들과 연방통신위원회 사이의 타협도 예측될 수 있다. 네트워크 중립성 원칙을 분명히 하는 대신에 거대기업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들 중 브로드밴드 이용에 대한 ‘종량제’ 도입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가격 차별화가 어려워질 경우 종량제를 통해 이른바 ‘브로드밴드 독식자들’에게 보다 많은 인터넷 서비스 이용료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재 가격경쟁에 진입하고 있는 인터넷 브로드밴드 서비스 사업자들 간의 이해관계 조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단순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브로드밴드 속도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제기되는 가운데 섣부른 종량제 밀어붙이기는 소비자들의 저항을 일으킬 것이라는 난제도 남아 있다
● 참고 : - www.websiteoptimization.com/bw/0501 - www.pewinternet.org/Media-Mentions/2005/Broadband-users-sign-up-at-slower-rate.aspx - “Senator Plan Bill to Advance Net Neutrality”, voices.washingtonpost.com/posttech/2009/09/senators_plan_bill_to_advance.html. - “My Interview with FCC Chairman: No Retreat on Net Neutrality”, voices.washingtonpost.com/posttech/2009/10/my_interview_with_fcc_chairman.html?hpid= news-col-blog. - “AT&T, carriers fund democratic reps against net neutrality”, voices.washingtonpost.com/posttech/2009/10/all_but_two_of_the.html.
● 작성 : 성민규(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스터디즈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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