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더 킹: 영원의 군주〉
글. 김상임(전 Sony Pictures Television 이사, 현 추계예술대학교 강사)
〈더 킹〉은 SBS에서 2020년 4월 17일에 방영을 시작하여 6월 12일에 종영한 16부작 로맨틱 판타지 드라마다. 〈태양의 후예〉(KBS2), 〈도깨비〉(tvN), 〈미스터 션샤인〉(tvN) 등을 연이어 흥행시킨 김은숙 작가가 대본을 쓰고, 주연인 이민호의 군복무 이후 첫 복귀작이자 〈푸른 바다의 전설〉(SBS) 이후 3년 만에 출연한 작품이다. 제작사는 CJ ENM의 자회사이자 〈미스터 션샤인〉, 〈아스달 연대기〉(tvN), 〈사랑의 불시착〉(tvN) 등의 대작들을 제작한 스튜디오드래곤과 화앤담픽쳐스이다. 이렇게 화려한 라인업으로 방영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평행세계라는 배경에, 백마 탄 왕자와 흙수저 출신의 고군분투하는 여주인공이 만나 사랑한다는 진부한 스토리 전개로 닐슨코리아 기준 전국 시청률은 평균 7.6%에 그치는 등 국내 시청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SBS 〈더 킹〉
출처 : SBS 홈페이지그러나 해외에서는 반응이 달랐다.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이 북미 등 해외에서 리메이크되어 여론의 주목을 받는 동안 〈더 킹〉은 비교적 조용히 해외에 판매되었다. 제작사와 넷플릭스와의 콘텐츠 공급 계약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유통플랫폼을 통해 선보이게 된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올해 초부터 국가별로 톱10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더 킹〉은 공개 후 여러 국가에서1) 톱10에 진입하여 현재까지도 인기리에 스트리밍 되고 있다. 한국 콘텐츠만을 방송하는 한류 전용 유료 채널들이 있는 동남아시아의 경우 소비자들이 K-콘텐츠에 익숙하기 때문에 〈더 킹〉의 인기가 놀랍지 않지만, 〈더 킹〉은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나이지리아, 모로코 등 한국 콘텐츠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국가의 넷플릭스 콘텐츠 순위에서 1위를 달성했고 지금도 꾸준히 톱10에 들고 있다.
2020년 7월 말 기준 〈더 킹〉 넷플릭스 순위
출처 : www.flixpatrol.com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발표한 ‘2019 방송산업실태조사’에서 지상파와 방송 채널의 2018년 대륙별 콘텐츠 판매 현황을 살펴보면 일본의 비중이 전체 판매의 35%,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가 29%, 미주가 21%로, 콘텐츠 수출은 지리적으로 편중되어 있고 유럽은 1%,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는 거의 0%에 가깝다. 즉, 유럽과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의 시청자들은 국내 콘텐츠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해석된다. 이런 맥락에서 〈더 킹〉이 다양한 해외 국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분명 놀랍고 주목해야 할 일이다. 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더 킹〉의 촬영 배경이 된 장소도 서울 관광 명소로 해외에 소개되고 있다.2)
이렇게 〈더 킹〉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두 가지만 꼽자면 주연배우들, 특히 이민호에 대한 선호도와, 프로그램의 장르이다.
이민호는 그가 출연한 〈꽃보다 남자〉(KBS2), 〈신의〉(MBC), 〈상속자들〉(SBS), 〈푸른 바다의 전설〉로 동남아시아에서 두터운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싱가포르 일간지 《Straits Times》에서 이민호의 인터뷰 기사를 다루는 것처럼3), 해외 매체에서도 배우 이민호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를 통해 작품 홍보와 더불어 인지도 상승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 김고은 또한 〈도깨비〉를 통해 이미 해외 시청자들과 눈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얼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분위기나 외모의 배우들이 많고,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를 접하기 때문에 신비한 이미지가 크지 않은데 비해 해외에 있는 시청자들은 배우를 오로지 작품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3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이민호가 더 반가운 것이다. 해외 콘텐츠를 시청할 때 배우들의 대사를 자막으로 읽게 되는데 배우의 섬세한 연기나 대사 전달력보다 목소리와 표정 등 배우의 외모가 프로그램 몰입에 영향을 미친다.
싱가포르 일간지 《Straits Times》에 실린 이민호의 인터뷰
출처 : Straits Times〈더 킹〉이 해외에서 인기 있는 이유에 장르도 한몫을 한다. 시청자들에게 판타지, 로맨스라는 장르에 왕실이라는 배경의 결합은 갓 튀겨낸 바삭한 꽈배기에 살짝 입힌 설탕처럼 달콤하게 느껴진다. 현실적인 소재의 이야기는 국가마다 다른 사회제도와 문화 때문에 해외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해도가 떨어져서 집중하기 힘들다. 하지만 판타지와 로맨스 장르는 어릴 적 읽었던 동화와 유사하기 때문에 쉽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싱가포르 주간지 《Women’s Weekly》 는 ‘현재가 배경인 동화 같은 K-드라마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We can’t get enough of these K-drama fairytales set in modern times)’ 라는 소제목으로 〈더 킹〉과 더불어 왕실이 배경인 국내 드라마 〈궁〉(MBC), 〈더킹투하츠〉(MBC), 〈황후의 품격〉(SBS) 등을 소개하고 있다4).
콘텐츠를 유료방송의 플랫폼이나 채널로 방영하던 미디어 환경에서는 해외 콘텐츠의 경우, 본국에서 시청률이 높았던 프로그램만이 플랫폼이나 방송사의 바이어들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스트리밍되는 것이 트렌드가 된 지금, 소비자들은 다른 나라의 콘텐츠도 본국에서 방영하는 시점과 동시에 시청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완성되지 않은 혹은 방영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선구매하는 바이어들은 어떤 지표로 프로그램을 선택하게 되는가. 투입되는 제작비의 규모, 장르, 연출진 등을 모두 고려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지표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배우, 작가, 제작사이다.
〈더 킹〉은 SBS와 넷플릭스에 판매한 방영권료와 해외 판권료로 이미 약 320억 원의 제작비를 회수했고 간접광고(PPL)비까지 감안하면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수익은 30%가 넘을 것으로 증권사에서 예측했다.5) 제작사와 넷플릭스와의 콘텐츠 공급 계약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기존 흥행작에서 보여준 김은숙 작가의 집필력과 동남아시아 국가에 여전히 인기가 있는 이민호의 영향력 덕분에 높은 판권료로 판매가 가능했던 것이다.
기존 집필작들로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은 김은숙 작가는 이번에 〈더 킹〉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미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스튜디오드래곤은 해외 유통플랫폼을 통해 국내 제작 작품을 전 세계에 선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미국에서 방영될 리메이크 드라마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제작 영역을 해외로 확장시키고 있다.
KBS 〈태양의 후예〉
출처 : KBS 홈페이지tvN 〈도깨비〉
출처 : tvN 홈페이지tvN 〈미스터 션샤인〉
출처 : tvN 홈페이지〈더 킹〉의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인해 제작사는 물론, 작가와 배우들은 앞으로 해외 제작사나 미디어 바이어들로부터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게 될 것이다. 김은숙 작가와 이민호의 인지도가 없었던 국가에서는 그들의 과거 작품들도 재조명을 받게 될 것이다. 〈더 킹〉의 성공을 계기로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편중되었던 국내 콘텐츠 판매가 미주, 유럽, 아프리카 등의 대륙으로 점점 더 확장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