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취향의 다양성과 서브컬처 Vol. 34
덕후들만의 문화로 평가받던 서브컬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콘텐츠 업계는 서브컬처에 관심을 갖고 이를 도입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서브컬처’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콘텐츠 일타강사’의 ‘서브컬처 개론’을 마련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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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 일산 킨텍스에서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음악 페스티벌이 열렸다.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브랜드 리벳과 공연 제작사 원더로크가 함께 제작한 3일간의 축제 ‘원더리벳’ 페스티벌이었다. ‘음악 페스티벌의 해’라고 불러도 무방할 2024년에 원더리벳 페스티벌이 유독 주목받은 이유는 이 페스티벌이 일본 소니뮤직솔루션즈의 제작 협력을 바탕으로 J-팝 아티스트들을 대거 초청해 개최한 국내 최초 J-팝 전문 페스티벌이었기 때문이다. 각양각색의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캐릭터, J-팝 그룹의 티셔츠를 입고 현장에 모인 팬들은 국내 페스티벌에서 인기 있는 한국 음악가들의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일본 음악가들의 무대 앞으로 달려갔다. 일본 음악가들의 서투른 한국어에 ‘다이조부(‘괜찮다’라는 뜻)’로 화답하며 일본어로 소통하는 모습은 생경했다.
J-팝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던 원더리벳 페스티벌 현장
©원더리벳프렌즈
원더리벳 페스티벌은 2024년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 J-팝의 인기를 확인하는 현장이었다. J-팝은 지난 해부터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고려대 화정체육관을 시작으로 올해 인스파이어 아레나 이틀 연속 매진 공연을 예고한 밴드 요아소비와 올림픽홀에서 공연을 펼친 밴드 킹누, 일본 아티스트 최초로 한국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의 톱100 차트에 진입한 곡 ‘나이트 댄서’의 주인공 이마세, 일산 킨텍스 이틀 공연을 순식간에 매진시킨 오피셜히게단디즘 등의 밴드들이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한국을 찾고 있다. 지난 8월 드림어스컴퍼니의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플로(FLO)는 제이팝 카테고리 청취 건수가 전년 대비 22% 성장했다는 지표를 공개함과 동시에 일본 음원 유통사 튠코어와 마세넥스트의 음원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J-팝의 인기는 한국에서 J-팝의 문법을 활용한 히트곡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가 차트 역주행을 통해 올해의 히트곡으로 자리 잡았고, 일본 걸밴드와 음악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4인조 밴드 QWER이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원더리벳에 참가한 QWER은 국내외 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출처 | QWER 인스타그램
이런 J-팝의 인기에 주목할 때는 항상 ‘서브컬처’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올해 콘텐츠산업계에서 가장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서브컬처다. ‘서브컬처의 부상’, ‘서브컬처의 확장’, ‘서브컬처의 반전’, ‘서브컬처의 주류화’ 등 용례도 다양하다. 그런데 서브컬처란 과연 무엇인지, 어떠한 이유로 서브컬처가 주목받는지, 오늘날 논의되는 서브컬처는 어떤 문화이자 공간인지에 대한 정의와 경계가 모호하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서브컬처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는 가운데 대중문화, 반문화 등의 개념도 혼재되어 구분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 등장하고, 이에 따라 서브컬처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구분되지 않으며 혼란을 가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브컬처(Subculture), 즉 하위문화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 문화 내 대중문화의 개념을 먼저 명료하게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전체 문화 가운데서도 대다수의 사람이 공유하고 즐기는 문화를 흔히 대중문화라 부른다. 대중문화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던 19세기 서구권에서는 일부 엘리트 계층만이 즐기던 엘리트 문화에 반대되는, 세련되지 못한 다수가 소비하는 매스 컬처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대중이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뜻으로 파퓰러 컬처의 개념이 새로이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자들의 주체성이 강조되던 1960년대였다. 오늘날 매스 컬처는 매체와 자본의 생산과정을 중심으로 사회 구성원 대다수들에게 공급되는 문화로, 파퓰러 컬처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향유하는 소비에 중점을 맞춘 문화로 대중문화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대중문화는 매스 컬처와 파퓰러 컬처의 공존 지대에 위치하며, 고급문화에 대립하여 사용하는 경우 서브컬처와 그 의미를 같이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고급문화는 서브컬처가 될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서브컬처의 속성과 용례 덕이다.
K-팝, 펑크, 스킨헤드 등의 대표적인 서브컬처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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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처는 흔히 하위문화, 부분문화, 반문화 등으로 번역된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부터 다양한 문화 요소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집단, 일본 문화 개방으로부터 형성된 팬층을 지칭하는 용어로, 하위문화로서의 서브컬처가 사용되었다. 하위문화는 한 사회에서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다수가 공유하는 전체 문화 속에서 독특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의 문화를 뜻한다. 매스 컬처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는 주류의 문법을 공유하지 않기에 위계를 적용하여 관심도가 낮아지거나 그 속성에 대한 저평가가 이루어지곤 했다. 따라서 이 시기 한국에서의 서브컬처는 저항과 대안으로의 반문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하위문화가 지닌 파퓰러 컬처의 속성을 고려하면 이 시기 하위문화는 한국 대중문화를 넘어 해외 문화를 먼저 접하고 취향을 굳혀가는 고급문화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서브컬처는 일본을 기반으로 하는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의 오타쿠 팬층을 지칭하는 용어 그 자체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해석을 거꾸로 짚어 올라가며 오늘날 한국의 서브컬처를 바라보자. 앞서 예로 들었던 J-팝 및 일본 기반의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콘텐츠 시장은 더는 소수 집단이 아니다. 거대한 소비 시장을 갖추고 있는 대중문화로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를 저급문화로 평가절하하며 비판했던 미디어 및 사회적 시선 역시 ‘서브컬처의 힘’ 등의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를 서브컬처의 주류화, 서브컬처의 상업화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해석은 아니다. 소셜 미디어의 보편화로 인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희미해졌고, 다수가 누리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도 취향을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 환경이 조성되며 상위, 하위의 도식이 해체되고 대중문화와 서브컬처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서브컬처는 대중문화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우리 대중문화에서 그간 주목하지 않았거나, 주류 미디어 환경에서 흔히 접할 수 없었던 서브컬처의 속성이 대안을 찾는 대중의 지지를 통해 콘텐츠 시장의 중심부로 떠오르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대중문화와 서브컬처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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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중음악에서는 J-팝의 인기와 더불어 그간 한국 대중음악에서 인디의 영역에 머물러있던 록 음악과 밴드 포맷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올해 최고의 히트곡을 다수 보유한 데이식스와 QWER 같은 밴드들과 더불어 인디, 록 음악 자체에 쏟아지는 관심도 늘었다. 세계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한국의 대표적인 서브컬처 문화인 K-팝 팬덤이 앨범 소비 중심으로 돌아서며 유튜브뮤직, 멜론, 지니, 벅스 등 스트리밍 시장에서 과거와 같은 위력을 보이지 못하는 현상 역시 서브컬처의 순환을 상징한다. 게임 업계에서는 이미 서브컬처 중심의 콘텐츠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게임을 제작하는 것이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불황으로 고심하는 영화 업계 역시 인기 가수들의 공연 실황 영상과 더불어 애니메이션 및 중소형 예술영화 개봉을 통해 서브컬처 중심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제 서브컬처에 대한 이해는 문화 다양성 확보를 위한 기초 과정이자,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를 공유하고 상호 확산하여 새로운 미래를 융합하기 위한 필수 전공과목이다.
글. 김도헌(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