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취향의 다양성과 서브컬처 Vol. 34
최근의 <흑백요리사>,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K-콘텐츠에는 유난히 계급 구도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대결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비교적 짧은 기간 겪어온 압축성장과 그 후유증에 대한 재연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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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있어서는 저마다 빠지지 않는 80명의 요리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를 알아보며 견제하는 와중에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화려한 조명과 함께 20명의 요리사들이 마치 고대 석상들 같은 아우라로 2층에서 등장한다. 그것으로 80명과 20명 사이에는 구분점이 생긴다. 재야의 요리사 80명이 흑수저라면 이미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20명의 요리사들은 백수저다. 그리고 곧바로 80명 흑수저 요리사들만 치르는 미션이 시작된다. 80명 중 단 20명만 남기는 그 미션에 백수저 20명은 참여하지 않는다. 흑과 백으로 나뉘는 구분이 대우에 대한 차별로 드러나면서 흑수저 요리사들의 의지는 불타오른다. 이것이 바로 최근 화제가 된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가 가져온 계급 구도다.
제목에서부터 계급을 철저히 나눈 <흑백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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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같은 흑백 구분이 이들 요리사들의 실제 실력 차이를 말해주는 건 아니다. 실제로 흑수저와 백수저가 1:1로 맞붙어 블라인드로 우열을 가린 미션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백종원, 안성재는 경력 차이가 두 배도 넘는 백수저 대신 흑수저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동일선상에서 치러졌다면 다소 밋밋했을 서바이벌이 ‘흑백 구분’을 통해 ‘쫄깃해진’ 건 사실이다. 흑수저 요리사들이 백수저 요리사를 꺾는 ‘언더독의 반란’이 보는 이들의 피를 끓게 했고, 그 도전에 맞서 오랜 세월 쌓아온 아성을 지켜내려는 백수저 요리사들의 백전노장 경험들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공교롭게도 이 구도는 마지막까지 이어져, 백수저인 에드워드 리와 흑수저인 나폴리 맛피아 권성준의 대결이 펼쳐졌다. 결국 흑수저 권성준이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그 과정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 백수저 에드워드 리 역시 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흑수저와 백수저로 나뉘어 치열한 경쟁 서바이벌이 펼쳐졌지만 뒤로 갈수록 흑백 구분이 의미 없어지는 대결을 통해 시청자들은 계급 구도 자체가 무화되는 짜릿한 훈훈함 또한 경험할 수 있었다. ‘계급’이 도대체 뭐길래 이토록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만든 걸까.
사실 계급으로 대변되는 경쟁 구도는 예능만이 아니라 드라마, 영화를 통틀어 K-콘텐츠에서 자주 등장하는 코드다. <기생충>이 지상과 반지하 그리고 지하라는 주거 공간의 차이로 거기 살아가는 이들의 계급화된 차별과 그로 인한 파국을 그려낸 작품이라면 <오징어게임>은 456명의 참가자가 456억의 상금을 놓고 펼쳐지는 데스게임을 통해, 치열한 게임에 참여하는 계급과 그런 게임을 만들어 즐기는 권력 계급에 의해 운용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은유한 작품이다. <킹덤> 같은 좀비 장르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좀비들은 같은 좀비가 아니다. 배고파 어쩔 수 없이 좀비가 된 서민들과 권력에 굶주려 좀비가 된 지배층이 등장한다.
예능뿐만 아니라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계급’은 중요한 요소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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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서바이벌이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하게 되면서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계급 구도를 동력으로 활용하는 건 이제 일상이 됐다. <솔로지옥>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출연자들의 대결(매력 대결이든 힘 대결이든)을 통해 천국도에 갈 커플과 지옥도에 남을 커플을 구분한다. 한번 천국도를 경험한 커플들은 그래서 더 치열하게 지옥도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피지컬:100>은 몸을 쓰는 대결을 통해 보다 직관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고, 패자는 자신의 토르소를 깨고 방출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걸 본 생존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힘과 전략을 짜내게 된다.
춤과 노래 대결이 펼쳐지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아이돌 연습생들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언젠가부터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는 거대한 스튜디오 안에 꼭대기 계급과 아래 계급으로 나뉘어지는 구분을 세우기 시작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큰 인기와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생겨난 <스트릿 맨 파이터>, <스테이지 파이터> 같은 춤 대결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계급 구분을 보다 다채롭게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크루별로 나뉘고, 춤의 방식(스트릿이냐 코레오냐 식으로)으로 나뉘기도 하고, 리더들과 멤버들로 나뉘는 등 끝없는 구분을 통해 경쟁이 펼쳐진다. <스테이지 파이터>처럼 발레와 현대무용 그리고 한국무용의 세 분야가 맞붙는 프로그램에서는 이 분야별 구분과 더불어 퍼스트 계급, 세컨드 계급, 언더 계급을 둠으로써 보다 다채로운 대결이 펼쳐졌다.
인플루언서들의 소셜 생존 서바이벌 <더 인플루언서>에서도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으로 활동 플랫폼에 따른 구분이 연합과 대결 구도를 강화했고, <강철부대> 같은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출신 부대별 구분을 통한 자존심 대결이 펼쳐졌다. 물론 해외 프로그램들도 계급 구도는 어디든 등장하지만 K-콘텐츠에서는 유독 계급 구도에 진심이 느껴진다. 무엇이 이런 양상을 만든 걸까.
K-예능에는 유난히 계급 구도에 기반한 경쟁 서바이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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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에 등장하는 계급 구분 짓기와 이를 통한 치열한 경쟁 서사를 보다 보면, 그것이 한국 사회가 전쟁 이후 압축성장을 했던 그 동력과 유사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한국 사회는 반상(班常)의 구분이 사라진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의 구분 짓기가 존재했다.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도 지주인가 소작농인가가 구분되었고, 산업사회에서도 경영자인가 노동자인가가 구분되었으며, 도시화가 급물살을 탈 때는 도시와 농촌이 구분되었다. 지역적으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구분되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대학을 갔는가, 갔다면 서울권인가 지방인가를 나누고, 회사에 들어갔다면 대기업인가 중소기업인가를 구분한다. 서울 사는 이들도 어느 지역에 몇 평의 아파트에 사는가가 그 부류를 구분했고, 자가인가 전세인가가 또 나뉘었다.
이런 구분은 <흑백요리사>에서 백수저 요리사들을 올려다보며 흑수저 요리사들이 의지를 불태우는 장면처럼, 한국인들의 욕망을 끓게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욕망은 자본화가 고도화된 신자유주의 시대로 들어오면 이제 ‘배제의 공포’로 작용한다. 그 구분점의 경계 밖으로 자신이 밀려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존의 몸부림’을 만드는 것이다.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이 그 많은 서바이벌을 차용한 K-콘텐츠의 시작점이라면, 그 끝없는 대결 속에서 참가자들이 발견하게 되는 건 상승의 욕망보다 더 갈급한 것이 배제되지 않으려는 생존의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이 치열한 경쟁을 굳이 콘텐츠 속에 녹여내고 그 드라마틱한 대결과 거기서 발견되는 페이소스를 여운으로 채워 넣는 K-콘텐츠의 탄생은 한국 사회가 비교적 짧은 기간 겪어온 압축성장과 그 후유증에 대한 재연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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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경쟁이 만드는 놀라운 결과들이 잘못된 건 아닐 게다. 하지만 구분의 경계가 도처에서 부추기는 경쟁사회의 피로감은 이제 좀 더 편안한 시간들을 욕망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치열한 서바이벌 콘텐츠들의 홍수 속에서, 때로는 <삼시세끼>처럼 경쟁 바깥으로 빠져나와 그저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 소박한 콘텐츠가 마음을 사로잡는 건 이러한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가 아닐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한 그 경쟁과 이를 벗어나려는 작용과 반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글.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