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취향의 다양성과 서브컬처 Vol. 34
핸드폰으로 콘텐츠를 보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최근에는 세로 화면과 잘 어울리는 숏폼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핸드폰을 돌려서 영상을 보지 않는다. 프레임이 세로로 바뀌면 콘텐츠도 달라지는 걸까? 세로 속에 담긴 새로움을 살펴보자.
©탑릴스
2024년, 시장조사기관 오픈서베이가 전국 15~59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이 올해 숏폼 콘텐츠를 시청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과 2023년의 각각 5명(56.5%), 7명(68.9%)에서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머릿수만 증가한 것이 아니다. 1인당 숏폼 플랫폼(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월평균 사용 시간은 52시간으로, OTT 플랫폼의 7시간보다 7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과연 숏폼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더 많이, 더 오래 숏폼에 빠져들게 하는 것일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편의성 그리고 고품질 영상으로 일찍이 전통적인 TV 채널을 훌쩍 앞질렀던 OTT 플랫폼보다 더 가파르고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는 힘은 무엇일까?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그중 분명한 한 가지는 바로 숏폼은 세로형 화면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1인당 숏폼 플랫폼 이용 시간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Shutterstock
세로형 콘텐츠는 숏폼을 위해 태어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과거에도 인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술에서 인물을 집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세로형 구도를 사용해 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세종대왕 영정 등이 대표적인 세로형 작품이다. 이러한 점에서 세로형 화면은 숏폼 콘텐츠와 천생연분인지도 모른다. 숏폼은 거두절미한 요점 중심의 몰입형 콘텐츠 형식으로, 짧게 소비하는 스낵컬처 콘텐츠다. 따라서 불필요한 미장센과 화면 여백 없이 중요한 피사체만 확대해 제공하는 세로형 화면은 숏폼 콘텐츠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조합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과거부터 세로형 화면은 인물을 표현하는 데 최적화된 프레임이었다.
세로형의 숏폼 장르는 기존 미디어의 제작과 편집 공식을 깨트려가며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과거 숏폼이 기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편집, 정보 전달 등의 콘텐츠 형태로 존재했다면, 이제는 인플루언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직접 영상을 제작해 업로드하면서 시청자와 제작자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은 OTT와 TV 채널의 시리즈물 자리를 위협할 만한 긴 서사물까지 등장했다. 이는 ‘세로형 숏폼 드라마’라고 불린다. 숏폼 드라마는 한 회당 2분 이내, 총 50화에서 많게는 80화까지 구성된 짧은 시리즈물이다. 세로형 숏폼 드라마는 극강의 몰입도를 위해 제작부터 세로형으로 기획된다.
세로형 숏폼 드라마는 더 이상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2023년 중국 시장만 보더라도 시장 규모가 7조 원이 넘는다. 이러한 성장세는 기존의 드라마 시리즈물의 제작과 소비 패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우선 세로형 화면에 맞추기 위해 기존의 영상 제작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촬영 기법이 도입되고 있다. 숏폼에 맞는 대본 개발, 빠른 호흡을 위한 편집, 제작 기간 단축을 위한 등장인물 조정, 미장센을 대신해 청각적 몰입을 위한 사운드 믹싱 등 드라마 제작의 모든 것을 숏폼에 맞춰 바꾸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단계 전에 숏폼 시청자를 분석해 적합한 장르를 먼저 찾는 것이 우선 과제다.
중국에서 숏폼 드라마는 이미 드라마 제작 환경과 미디어의 판도를 바꾼 지경을 넘어서 다양한 사업의 상업화 채널로 떠오르고 있다. 이커머스와 브랜드 홍보를 위한 브랜디드 숏폼 드라마가 잇따라 성공하면서 숏폼 콘텐츠는 단순한 소비용 콘텐츠에서 벗어나 기업의 스폰서나 브랜드 이미지 제고의 필요를 충족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성공 모델이 된 것이다.
탑릴스를 통해 공개된 세로형 숏폼 드라마들
Ⓒ폭스미디어
이제 세로형 숏폼 드라마는 더 이상 미디어 콘텐츠 업계의 루키가 아니다. 침체된 콘텐츠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커머스와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대안이 되었다. 한국에 최초 론칭된 숏폼 드라마 플랫폼 ‘탑릴스’ 등의 업체는 숏폼 시대에 걸맞는 콘텐츠 제작 전략으로 한국을 넘어 다양한 나라 시청자들의 바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고, 선보이고 있다. 또한 숏폼 드라마 플랫폼 회사들은 좁게는 PPL(간접광고), 넓게는 커머스와 결합하여 수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협력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 제작사들의 이런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의 숏폼 시장, 더 넓게는 세로형 콘텐츠 시장 역시 경쟁력을 갖추어가고 있다.
한때 어느 휴대폰의 메가 히트 전략이었던 ‘가로 본능’이 이제 ‘세로 본능’으로 진화했다. 지금 소비자들은 굳이 화면을 90도로 돌리지 않는다. 화면에 가득 찬 세로형 콘텐츠로 짧게 짧게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또 언젠가 가로 본능으로 회귀할 수 있겠지만 제작자와 소비자가 모두 세로형에 열광하는 이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글. 송지연(탑릴스 콘텐츠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