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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덕’과 함께 성장하는 K-콘텐츠  Vol.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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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과의 융합으로 한계를 뛰어넘는 ‘UR콘텐츠’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4 콘텐츠산업 전망 키워드 중 하나로 ‘UR 콘텐츠’를 선정했다. ‘신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무한한 현실감(Unlimited Reality)을 제공하는 몰입도 높은 콘텐츠’를 의미하는 UR 콘텐츠는 콘텐츠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Shutterstock

2023년,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쉬지 않고 세계를 돌며 콘서트를 열었다. 자신들이 직접 가지는 않았다. 극장에 앉아 VR 헤드셋을 이용해 즐기는 VR 콘서트이기 때문이다.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는 지난 3월과 9월, MBC 음악 방송 <쇼! 음악 중심>에서 1위를 차지했다. 현실에서 직접 보거나 만날 수 없는 가상 아이돌이 해낸 일이다. 8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는 ‘리플라이 AI 영화제’가 함께 열렸다. 3개월 만에 1천 편이 넘는 작품이 접수됐다. 지금, 콘텐츠산업의 경계가 크게 허물어지고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VR 콘서트 홍보 영상
©하이브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콘텐츠를 낳는다

기술은 항상 콘텐츠 진화의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인쇄술의 발명은 대량 인쇄된 책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탄생시켰고, 스마트폰의 등장은 스트리밍 콘텐츠 시대를 열었다. 그래봐야 읽고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지만 그 변화가 산업과 문화를 바꾼다. 예를 들어 녹음 기술이 그렇다. 그저 소리를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을 뿐인데 음악 감상이 취미가 되고 음반과 음향 기기 산업이 생겼다. 댄스 클럽에서 라이브 밴드가 사라지고, 힙합 문화와 독립 라디오, 팟캐스트가 태어날 기반이 됐다.
요즘에는 어떨까? 트렌드를 이끄는 기술이라면 역시 인공지능과 가상 현실 기술이다. 그중에서도 생성형 AI와 메타버스, 공간 컴퓨팅 같은 혼합 현실(Mixed Reality, MR) 기술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콘텐츠도 이런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어서 버추얼 아이돌을 비롯해 버추얼 인플루언서, 가상 친구 등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 너무 다양해서 부르는 이름도 많다. 인공지능을 썼으면 앞에 AI를 붙이고, 가상현실 기술을 쓰면 버추얼이나 VR을, ‘포켓몬 고’처럼 증강현실 기술을 쓰면 AR을 붙이는 등 복잡하다.
제작 기술이 아니라 콘텐츠 경험에 집중할 수는 없을까? 앞서 말한 ‘녹음’이란 단어를 특정 작업을 제외하면 쓰지 않게 된 것처럼,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WWW)이 그냥 인터넷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뒤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기술로 인해 얻어지는 경험에 집중하는 단어가 더 낫지 않을까?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UR 콘텐츠(Unlimited Reality Content)’라는 용어를 제시하는 이유다. UR 콘텐츠는 신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무한한 현실감을 제공하는 몰입도 높은 콘텐츠와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경험을 함께 가리킨다.

플레이브 등의 비추얼 아이돌은 인간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플레이브 공식 인스타그램

신기술과 융합해 제한이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UR 콘텐츠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를 UR 콘텐츠라고 부를까? 신기술에 기반한 콘텐츠는 거의 다 해당한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버추얼 아이돌과 버추얼 유튜버다. 이는 CG로 만든 캐릭터를 인형 탈처럼 사용해 활동하는 아이돌이나 유튜버를 가리킨다. 표정이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잡아서 CG로 만드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술 발달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고,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영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사람과의 소통에 중점을 둔 콘텐츠를 교류형 콘텐츠라 부른다. 정말 놀라운 것은 교류형 콘텐츠를 사람들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있다. 2007년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용 캐릭터로 만들어졌다가 인기를 얻은 ‘하츠네 미쿠’나 2016년 버추얼 유튜버를 세상에 각인시킨 ‘키즈나 아이’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저런 건 일본이니까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다 2018년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가상 K-팝 그룹 ‘K/DA’가 호응을 얻더니, 지금은 이세계 아이돌이나 플레이브 같은 버추얼 아이돌이 현실 아이돌 그룹 같은 대접을 받는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등장하는 가상의 K-팝 걸그룹, K/DA
©라이엇게임즈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여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더한다. 만약 ‘나’를 기억하는 게임 속 NPC가 있다면 어떨까? 혼자 게임 세계를 여행할 때 말벗이 되어주는 AI 친구가 있다면 어떨까? 한 도시의 사람들이 마치 진짜인 양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지금 연구하고 있는 기술이다. GPT-4o를 비롯해 사람처럼 정겹게 대화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공개됐다.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겠지만, 앞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버추얼 캐릭터가 나를 기억하고, 나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콘텐츠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UR 콘텐츠

UR 콘텐츠의 다른 축이라고 볼 수 있는,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몰입형 콘텐츠는 어떨까. VR 헤드셋의 등장과 포켓몬 고 같은 게임의 성공으로 가상현실 기술이 주목받은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투자한 것에 비해 거둔 것이 없어서 타박을 받긴 하지만, 메타퀘스트 3, 애플 비전 같은 기기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머스드 바이저’처럼 저렴하면서 가벼운 AR 안경이나1) ‘로키드 AR 조이 2’나2) ‘테크노 포켓 고’처럼3) AR 게임이나 영화 감상 같은 틈새시장을 노리는 기기도 계속 선보이고 있다.
기기가 있으면 기기에서 즐길 콘텐츠도 있어야 한다. 현재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4 미니츠 인사이드 슈퍼 볼 LVIII>이다. 슈퍼볼 경기를 녹화 중계한 애플 비전용 몰입형 영화로, 한번 본 사람들은 모두 ‘이런 걸로 실시간 경기 중계를 해달라’고 외친다. 할 수 있을까? 애플은 모르겠지만 소니는 하고 있다. 영화 <토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방을 배경으로 실제 미식축구 경기를 실시간으로 CG 애니메이션으로 바꿔 중계하는 ‘토이 스토리 펀데이 풋볼’을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4)

실제 NFL 경기를 <토이 스토리>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토이 스토리 펀데이 풋볼’
출처 | @ESPN 마케팅

UR 콘텐츠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콘텐츠 제작 환경도 바뀌고 있다. 디즈니에서 제작한 SF 드라마 <더 만달로리안(The Mandalorian)>처럼5) CG 합성 대신 아예 가상 배경을 촬영 장소에 투영해 배경과 연기를 함께 찍을 수 있게 해주는 버추얼 스튜디오를 쓰는 일이 늘고 있다. 인기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는 생성 AI를 이용해 텍스트만 입력하면 게임 배경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출시했다. 이를 통해 좀 더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앞으로 콘텐츠산업은 UR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꽤 많은 변화를 겪을 것 같다. 어떤 새로운 즐거움이 다가올지 기대해보자.

글. 이요훈(IT 칼럼니스트)

1) https://www.visor.com

2) https://global.rokid.com/products/rokid-ar-joy-2

3) https://www.tecno-mobile.com/accessories/product-detail/product/pocket-go

4) https://youtu.be/kpi6t1TM5z4

5) https://www.unrealengine.com/ko/blog/forging-new-paths-for-filmmakers-on-the-mandalor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