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덕’과 함께 성장하는 K-콘텐츠 Vol. 33
AI를 활용해 제작한 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 건>과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 화제를 모았다. 이 두 게임을 개발한 렐루게임즈의 신승용 CTO가 AI를 활용한 게임 제작 경험 그리고 그 가치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렐루게임즈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2020년 전후로 GPT-2, GPT-3가 등장하면서 AI나 머신러닝, 딥러닝 같은 기술이 본격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필자는 그즈음 AI가 기존의 휴리스틱(인간이 제한된 시간과 정보 속에서 내리는 최선의 결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 수 있게 되면서 게임 업계에도 큰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했다. 사람보다 똑똑한 AI 동료가 등장하는 게임, 감정 교류가 가능한 NPC(Non-Player Character, 유저가 직접 조작하지 않는 게임 캐릭터), <소드 아트 온라인>(게임 플레이어가 자신의 몸으로 온라인 아바타를 움직인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과 같은 완전 몰입형 가상현실 등이 곧 구현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된 것이다.
<언커버 더 스모킹 건>
©렐루게임즈
최근 렐루게임즈가 생성형 AI를 활용해 두 개의 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 ‘스모킹 건’)>과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 ‘루루핑’)>을 만든 것이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제작자들은 자신이 특별히 생성형 AI를 통해 게임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이미 생성형 AI는 게임 제작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되었다.
‘루루핑’은 생성형 AI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시선을 ‘병맛’과 B급 개그를 통해 재미로 승화시킨다는 것을 목표로 제작했다. 게임 화면상 대부분의 에셋(게임 내 그래픽 자원)을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1명의 개발자가 전담했다. 총 3명의 개발자가 AI 기술과 창의력을 더해 데모 버전을 만들기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픈 AI의 대화형 AI 서비스 GPT-4o를 자체 기술로 게임에 맞춤 적용한 ‘스모킹 건’은 ‘루루핑’에 비해 비주얼과 콘셉트의 퀄리티에 좀 더 집중한 게임으로 인간의 후처리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
©렐루게임즈
‘스모킹 건’과 ‘루루핑’ 모두 애셋 제작에서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AI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렐루게임즈의 모든 구성원은 챗GPT 등의 LLM(대규모 언어 모델)을 개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아트 애셋의 경우 미드저니나 커스텀 콤피 UI를 활용했다. ‘스모킹 건’의 LLM은 아주르 오픈 AI의 GPT-4o 모델을 주로 사용했다. 9월에 이루어진 게임 업데이트(영어판 한정, 한국어판 업데이트도 곧 적용 예정)는 크래프톤의 딥러닝 본부에서 자체 개발한 TTS(텍스트-음성 변환) 모델인 ‘DiTTo’의 ‘스모킹 건’ 전용 버전이 적용되기도 했다. 이밖에 ‘루루핑’의 STT(음성-텍스트 변환)에는 아주르 스피치 스튜디오를 사용했으며 감정 분석, 주문 채점은 렐루게임즈 DL팀에서 자체 개발한 모델을 이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트 애셋을 생성형 AI로 제작한 ‘루루핑’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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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게임 제작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는 기정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AI를 개발 프로세스가 아닌 게임 그 자체에 접목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임을 실감했다. 생성형 AI는 게임 제작의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변화시키고 있다. 쉽게 말해 간단한 코드 작성이나 사실 확인을 위해 챗GPT 등의 LLM을 사용하는 것은 이미 일반화되었고, 이제는 타블렛이 아니라 프롬프팅을 통해 원화 이미지나 배경 텍스처 등을 제작, 수정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간단한 아이디어 프로토타이핑이나 로그 수집기 등은 프로그래머가 아닌 직원이 제작하기도 한다. 특히 렐루게임즈에서는 기존의 개발 직군 간의 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AI를 게임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재미’에 대한 이해와 함께 AI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한데, 이 측면에서 기존 디렉터나 기획자가 갖춰야 할 지식과 역량의 수준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핵심 메카니즘을 AI가 차지하게 되면서, 예전 같았으면 엑셀이나 워드 문서의 형태로 작성할 수 있었던 부분을 이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 고민하게 된 것이다. 또한 게임을 구현하는 입장에서도 기획서, 사양서를 단순 참고해서 구현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고 있다.
‘스모킹 건’의 경우, 상품의 최전선에 챗GPT를 이만큼 적극적으로 사용한 선례가 없었다. 이 때문에 제작하는 사람들은 ‘방망이 깎는다’라고 표현할 만큼 유저가 AI와 나누는 대화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관리하는 작업이 무척 힘들었다. 테스트 시나리오부터 구조 설계 등의 전 과정을 무에서부터 만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AI라는 것이 근본부터 확률에 기반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유저의 질문에 AI가 어떻게 답할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렐루게임즈만의 기준과 방법을 찾아서 노력한 결과가 ‘스모킹 건’이라는 게임으로 나타난 것이다.
‘스모킹 건’은 AI와 나누는 대화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렐루게임즈
AI를 통한 게임 제작은 새로운 AI 기술에 적응해야 하는 숙제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렐루게임즈가 ‘루루핑’와 ‘스모킹 건’을 제작할 때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AI 생성에 대한 윤리적, 법적 기준이 명확히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참고할 수 있는 선례도 마땅히 없었다. 실제로 스팀에서는 한동안 생성형 AI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한동안 ‘스모킹 건’의 오픈이 금지되었다. ‘루루핑’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런 부분을 안전하게 해결하기 위해 제작 과정에서 나름의 근거와 기준을 마련했고, 모회사인 크래프톤의 도움을 받으며 철저하게 법적 검토를 진행했다. 앞으로 제대로 된 법적 장치가 만들어진다면 AI를 활용한 게임 제작이 더 다양하고 용이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언커버 더 스모킹 건>
©렐루게임즈
렐루게임즈는 AI를 통해 개발 프로세스의 효율이나 개발 속도를 높인다는 측면보다는 이용자들이 게임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AI를 통해 기존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을 통한 재미’를 발견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스모킹 건’과 ‘루루핑’ 모두 개발 속도 향상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AI라는 도구를 통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경험을 제공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초반의 K-게임 업계가 그랬듯 현재 AI 업계의 변화 속도는 정말 빠르고 광범위하며 파괴적이다. 변화를 느끼고 따라잡을 수 있는 유연함과 흡수력이 필요한 동시에 남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고 구현할 수 있는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요청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 게임 제작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상용화된 AI 모델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아야 한다. 그 단계를 뛰어넘어 팀과 회사의 요청에 맞는 날카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 신승용(렐루게임즈 C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