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NN스토리 5

‘콘덕’과 함께 성장하는 K-콘텐츠  Vol. 33

Special N N스토리 5

지속 가능한 K-팬덤을 위하여

이제 ‘팬덤’은 콘텐츠 산업을 받치는 중요한 기둥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팬덤이 애착과 인정만으로 유지된다면 오랫동안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K-팬덤의 특징과 변천을 살펴보고 K-팬덤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본다.

©Shutterstock

과거의 대중문화는 TV처럼 ‘모두가 보는’ 매체가 불씨였다. 콘텐츠의 생명력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엔터테이너가 새로운 앨범을 내거나, 새 작품에 출연하거나, 새로운 코너에서 유행어를 만들어야 했다. 중앙에 강하게 자리 잡은 매체(TV, 신문 등)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분리되어 있는 ‘덕후’들이 서로를 확인하기 어려웠고, 정보 역시 중앙집권적이며 폐쇄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정보를 교류하고 덕질하는 팬덤이 형성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들은 콘서트장, 공개 방송 등의 오프라인 공간 즉 엔터테이너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팬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두가 미디어를 가진 상황에서, 팬덤을 만드는 구심점은 TV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다. 아니, 심지어는 1차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람조차 아닐 수 있다. ‘팬의 팬’이 등장하는 세상이다. 콘텐츠 생산자가 콘텐츠를 제공해 팬을 만든다면, 더 오래 활동하기를 바라는 팬의 마음이 또 다른 팬을 낳는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K-팬덤’이다.
K-팬덤은 단순히 팬의 집단이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의 팬이 또 콘텐츠를 만들고, 그걸 본 사람들이 또다시 모인 거대한 집합체다. 마치 핵분열의 연쇄 반응처럼 팬 없이 팬은 늘어나지 않는다. 팬과 아티스트, 또 팬과 팬은 일방적 전달 관계가 아니라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쌍방으로 영향을 주는 거대한 집합체다. 그렇게, 팬덤은 이제 콘텐츠와 콘텐츠 산업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열쇳말이 되었다.

‘K-팬덤’은 커뮤니티가 빠르게 형성되고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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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인정, 낭만으로 유지되는 팬덤의 2차 창작

온라인에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행위가 수익화로 이어지기 어려웠던 2010년대 초중반까지 K-팬덤은 적극적으로 ‘짤방’을 만들고, 팬덤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 안에서 반응을 얻고자 하는 적극적인 참여자들의 힘으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냈다. 짤방을 만든다고 해서 수익을 얻기는 어려웠으니 그 짤방의 유행을 보며 만족을 얻는 단계 즉 일종의 선물 경제(Gift Economy)의 형태를 띄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선물 경제는 지금 당장은 아무런 경제적 이득이 되지 않지만, 쌍방이 재화와 인지를 얻어가는 형태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사례도 있다. 엔믹스의 멤버 오해원의 팬이 만든 유튜브 채널 ‘또 오해원’은 2022년 6월 개설되어 2024년 9월 8일 기준 총 조회 수 10억 회 이상을 기록한, 구독자 51.1만 명의 채널로 성장했다. 오해원이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캐빈 크루 체험을 하며 선보인 ‘외모 췍!’ 장면은 또 오해원 채널에서 조회 수 961만 회를 얻으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행했다. 오해원 자신 역시 ‘밈’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또 오해원 채널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채널 덕분에 엔믹스와 오해원의 존재를 알게 되어 ‘덕통사고(덕질 +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K-팬덤’의 특징 중 하나는 이렇게 온라인 커뮤니티가 아주 빠르게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팬인 동시에 크리에이터인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또 오해원 채널의 사례뿐 아니라 수많은 ‘팬튜브’들은 자발적으로 팬덤을 형성하고, 그 팬덤 안에서 다시 ‘팬의 팬’이 생겨난다.

‘또 오해원’ 채널은 자발적으로 팬덤을 형성하는 팬튜브의 한 사례다
출처 | @ohhaewon

낭만만으로는 팬덤을 지속할 수 없다

팬덤 비즈니스의 핵심에는 2차 창작물이 있다. 기존의 창작물을 재가공하고, 독자가 재해석하거나 재편집해 제공하는 행위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저작권 위반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원본을 직접 공유하거나 배포하지 않는 이상, 팬들의 이런 2차 창작은 일종의 회색지대로 남겨두고 고발하거나 처벌하지 않고 있다. 2016년 일본의 국세청 신고를 기준으로 보면 일본의 ‘동인지 시장(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대한 팬 패러디부터 독립 작가 및 출판사의 독창적인 창작물에 이르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용어)’, 즉 2차 창작물 시장의 규모만 2조 원에 달한다. 2016년 일본 만화시장 규모인 4,454억 엔(한화 약 4조1,501억 원)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물론 이 ‘동인지 시장’에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해진 1차 창작자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걸 전부 그레이존이라고 보는 것은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규모다.
하지만 ‘팬덤 비즈니스’에서는 이런 형태가 조금 달라진다. 이전의 2차 창작이 1차 창작의 요소를 가져와서 새로운 창작을 더하는 형태였다면, ‘팬덤 비즈니스’를 포괄하는 내용에는 이른바 ‘짤방’의 활용부터 다른 유저들을 ‘입덕’시키기 위한 노력을 모두 포괄한다. 심지어는 창작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미국에서 1천 화를 맞이한 크리스 맥코이 작가의 <Safely Endangered>에 등장하는 노란색 캐릭터는 아무런 이름도, 역할도 없었지만 팬들이 ‘타이틀 가이(The Title Guy)’라고 부르면서 역할과 맥락이 생겨났다. 이런 상호 작용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 바로 팬덤 비즈니스다.
이전에는 일방적인 관계였다면, 이제는 아티스트와 팬덤이 쌍방으로 소통하고 성장한다. 이를 ‘비즈니스’로 해석한다면, 비용 역시 쌍방이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는 2차 창작이 아니라, 팬을 홍보하기 위한 적극적 상호작용으로서의 팬덤 비즈니스는 아주 낭만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걸 ‘비즈니스’라고 부르려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팬에게도 일정 수준의 보상이 따라야 한다. 물론, 낭만 너머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어디까지를 저작권 침해가 아닌 ‘팬덤 비즈니스’로 볼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중앙집권적인 플랫폼의 수익화 전략의 해체가 가능한지 여부를 고민해봐야 한다. 아낌없이 애정과 자금을 투자해 아티스트의 성장을 지원하는 ‘팬덤’에 대한 보상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세계 아이돌’은 데뷔 전 과정을 시청자들과 함께하며 고정 팬덤을 형성했다
출처 | @왁타버스

이렇게 아티스트와 팬덤이 쌍방으로 소통하고 비용을 지원하면서 성장하는 관계에서 가장 앞서있는 것은 스트리머 콘텐츠다. 스트리머들은 플랫폼에 묶여있지 않고, 유튜브, 치지직, 트위치 등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며 여기서 후원을 받는다. 팬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함께 키워낸다’는 관점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확장시키고 있다. 스트리머 ‘우왁굳’의 경우 그의 팬으로 참여한 시청자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또 다른 팬덤을 구성하고, 스스로 세계관을 구축하고 새롭게 수익화를 이뤄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경우가 버추얼 걸그룹 ‘이세계 아이돌’이다. 단순히 자기만족을 넘어 ‘새로운 팬덤을 구축하는 팬덤’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웹툰의 경우 단 한 번도 웹툰 플랫폼에서 정식 연재를 한 적 없는 앨리스 오스만의 <하트스토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앨리스 오스만은 웹툰 연재 사이트에 자신의 작품을 올리고 웹툰의 각 회차마다 돈을 받는 대신 개인 채널을 통한 후원금을 받는다. 그에게는 2024년 9월 8일 기준 19,115명의 후원자가 있다. 후원금의 최소 금액인 1달러로만 계산해도 월 2,560만 원의 후원금이 모이는 셈이다. 파스타플레이버 작가의 웹툰 <보이 걸프렌드>는 현재 13,359명이 후원 중이다. 최소 단위인 1유로로 계산해도 월 1,983만 원의 후원이 이뤄진다. 이 작가들은 단 한 번도 ‘정식 연재’ 플랫폼에 연재한 적이 없지만 후원 시스템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정식 연재’만이 유일한 수익 창구였던 시대가 이제 천천히 저물고 있다.

엘리스 오스만은 웹툰 연재 사이트에 작품을 올리는 대신 자신만의 공간에서 후원금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출처 | 창작자 후원 플랫폼 '패트리온'의 앨리스 오스만 후원 페이지

이제 팬덤 문화를 정식 콘텐츠로 이끌어내야 할 때

다양화된 콘텐츠 생산자가 스스로 팬덤을 구축하고, 그 팬덤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팬덤을 기반으로 수익을 올릴 때 콘텐츠는 지속 가능성을 얻는다. 그리고 ‘팬덤’이 비즈니스로 작동한다면, 콘텐츠 생산자의 성장에 기여한 팬에게 ‘자기만족’ 외에 어떤 것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팬은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모두에게 알려져야’ 사랑받을 수 있었다. 중앙집권적인 매체의 힘이 강한 세상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 가운데서 어떻게 ‘2차 창작’에 해당하는, 또는 ‘정식 연재’가 아닌 콘텐츠를 묶어내고 수익을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와 아티스트에 대한 애착으로 형성된 팬덤의 놀이와 문화를 어떻게 ‘정식 콘텐츠’의 영역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글. 이재민(웹툰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