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덕’과 함께 성장하는 K-콘텐츠 Vol. 33
관심 밖에 있던 인디 게임이 인기를 얻고 세계적인 흥행까지 기록하면서 MMORPG 위주의 K-게임 생태계가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다채롭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K-게임 산업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소중한 자산, 인디 게임의 힘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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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디 게임이 국내 게임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사용되는 ‘인디(Indie)’는 ‘독립적’, ‘의존적이지 않은’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줄임말이다. 대형 게임사에 의해 제작되는 게임이 아닌 소규모, 저자본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게임을 인디 게임이라 부른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인디 게임은 조악한 저자본 게임으로 인식되며 시장에서 외면받아왔다. 만듦새가 떨어지는 게임들이 부지기수였고, 게임 판매 유통망도 제한적이었다.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습작 같은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인디 게임 시장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대기업에서도 인디 게임 개발사를 찾거나 소형 인디 게임 회사를 인수해 키우는 사례도 늘고 있다.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처럼 잘 만든 인디 게임을 자사 간판 타이틀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지금도 인디 게임에 대한 대형 게임사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인디 게임이 각광받는 이유는 그만큼 질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언리얼, 유니티 같은 무료 개발 엔진이 나왔고 구글, 애플, 스팀 등 접근성 좋은 시장이 형성됐다. 적은 인원으로, 심지어 1인 개발로도 좋은 퀄리티의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개발의 문턱이 낮아졌다. 게다가 클릭 몇 번만으로도 전 세계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글로벌 마켓에 진입할 수 있게 돼 시장 접근성이 높아졌다. 글로벌 마켓에선 인디 게임이든 대형 게임이든 가리지 않고 공평한 경쟁이 이루어진다.
넥슨 산하 민트로켓랩이 만든 <데이브 더 다이버>
©넥슨
인디 게임의 강점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유연하다. 대형 게임은 인력과 돈이 많이 든다. 당연히 제작 기간도 길다. 보통 개발 기간만 5~10년 이상이다. 이렇다 보니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고 몸집만 불려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인디 게임은 몸집이 작아 최신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실패하면 빨리 털어내고 차기 프로젝트를 준비할 수 있다.
둘째, 참신하다. 대형 게임들은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보편적 재미를 추구한다. 때문에 시장에 숱하게 깔린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처럼 검증된 재미를 쫓아갈 수밖에 없다. 비교적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운 인디 게임은 얼마든지 참신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생각지도 않은 독특한 게임들이 나오면서 시장의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 글로벌 흥행을 거둔 국산 인디 게임 <데이브 더 다이브>는 바다 탐험에 초밥집 경영이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접목해 성공했다. 인디 게임이라 할 수 있는 참신한 실험이다.
2024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대상 수상작 <안녕 서울: 이태원편>
©네오위즈
셋째, 메시지와 주제 의식이 명확하다. 인디 게임에는 게임 개발자가 담고자 하는 사회 풍자 메시지나 예술성이 확실한 작품들이 많다. 올해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한 <안녕 서울>은 지구 종말까지 6개월, 모든 것을 포기한 서울에서 살아가는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그렸다. 누적 다운로드 300만 건을 돌파한 <러브 이즈>는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퍼엉’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감성 아트 게임이다. 자극적인 전투나 거창한 스토리 없이 사랑하는 남녀의 소소한 일상을 그렸다. 숨은그림찾기 형식으로 진행되며 작가 특유의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로 구성된 감미로운 사운드가 유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감성적인 일러스트와 음악이 돋보이는 힐링 게임 <러브 이즈>
©루노소프트
올 상반기 이달의 우수 게임으로 선정된 <편집장>은 게이머가 신문사 편집장이 돼 신문 1면 기사를 편집하는 게임이다. 기사 제목과 지면에 배치되는 사진의 구도 등을 어떻게 편집하는가에 따라 게임의 스토리가 바뀐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사실을 전하느냐 아니면 그 반대편의 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풍자적 요소가 많은 게임이다.
이렇게 인디 게임은 대형 개발사는 접근하기 어려운 다양한 시도를 과감하게 펼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저에게 전에 없던 새로운 재미를 선물하며 국내 게임 생태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언론 환경을 풍자한 게임 <편집장>
©데카트리게임즈
이에 따라 최근 대형 게임사들은 흥미로운 인디 게임을 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스마일게이트는 2019년 출범한 ‘스토브 인디’를 통해 인디 게임 제작, 유통, 홍보, 마케팅 모든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인디 게임만 팔 수 있는 오픈마켓까지 제공하는데 현재 900여 개가 넘는 게임이 입점하며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7월 한국벤처투자가 추진하는 한국모태펀드 문화계정 1차 정시 출자 사업에 약 300억 원을 출자하며 인디 게임 개발에 힘을 더했다.
네오위즈는 가장 왕성하게 인디게임 발굴, 육성에 나서는 기업이다. 이미 인디 게임 퍼블리싱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고양이와 스프>는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5천만 회를 돌파하며 모바일 라인업의 중요한 타이틀로 자리 잡았다.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는 200만 장을 팔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넥슨은 ‘민트로켓’이라는 인디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회사 내에서 작은 조직들을 구성해 수익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게임을 만드는 구조다. 실제로 조직 운영에 있어서 회사의 어떤 간섭도 없다고 한다. 처음엔 조직이 방만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민트로켓에서 만든 <데이브 더 다이버>가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면서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후 <낙원> 등 차기작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낙원>은 민트로켓에서 소규모 팀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지만 그 가능성이 확인되며 넥슨에서 메인 프로젝트로 개발하고 있다.
낙원상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액션 게임 <낙원>
©넥슨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만고만한 재미의 모바일 게임들이 국내 게임 시장의 주를 이루었다. 게임사들이 대형화되다 보니 새로움을 추구하는 역동성을 잃고 <리니지>처럼 어느 정도 검증된 재미만 쫓아가는 양산형 게임들이 주를 이루었다. 재미보다는 아이템 판매에만 신경을 썼고, 퀄리티를 높이기보다 톱 모델을 동원한 광고에만 열을 올렸다. 그럴수록 천편일률적인 K-게임은 몰려오는 외국 게임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다행히 최근 K-게임도 달라지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와 성과를 내고 있다. 기업들도 ‘인디 게임으로 돈 벌 수 있겠어’라는 인식에서 ‘괜찮은 인디 게임들을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전환하고 있다. 때를 맞춰 다양한 색깔의 좋은 인디 게임들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은 분명 한국 게임 시장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만한 시점이다. 작지만 다채롭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인디 게임은 분명 K-게임 생태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소중한 자산이다.
글. 이덕규(<게임어바웃>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