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덕’과 함께 성장하는 K-콘텐츠 Vol. 33
K-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편의점이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역할이 바뀌고 있다. 하나의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 K-편의점의 현재.
ⓒShutterstock
‘K’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K-콘텐츠, K-팝, K-푸드, K-뷰티, K-클래식, K-패션 등 크게 ‘문화’로 아우를 수 있는 것들이 K와 함께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구석구석으로 뻗어나간다. ‘K’는 품질을 보증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한국에서 만들거나 유래한 것들 앞에 ‘K’가 붙으면 신뢰를 토대로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언제나 훌륭하다는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기대감은 대체로 충족시킨다.
K 수식어를 새롭게 보유하게 된 콘텐츠 가운데 하나는 편의점이다. ‘편의점이 콘텐츠라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테다. 그러나 큰 틀에서 편의점은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됐다. 동네 곳곳의 생활밀착형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 편의점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사연이 흐르고 쌓였다. 그렇게 콘텐츠의 기반이 단단하게 만들어졌다. 편의점은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화, 드라마, 웹툰, 소설 등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빚어내고 있다. 관객, 시청자, 독자의 입장에서는 편의점 하면 떠오르는 한 컷이 생겨나게 됐다.
여기까지면 그저 상상력을 일으키는 공간 정도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편의점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휩쓸며 K 수식어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몽골에 편의점이 처음 진출한 시기는 2018년이다. CU가 첫발을 디뎠고 GS25가 후발주자로 바짝 따라붙으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K-팝, K-푸드로 무장한 한국의 편의점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핫한’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울란바토르를 장악해나갔다. 편의점은 K-콘텐츠와 함께 해외로 나갔기 때문에 K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 측면이 크다. 콘텐츠와 공간은 그렇게 K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 몽골에서만 K-편의점이 아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편의점을 관광 코스에 넣으며 K-편의점의 지위는 공고해졌다.
한국 편의점은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Shutterstock
K라는 모터를 단 편의점은 더욱 빠르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K-콘텐츠와 시너지를 내고 있다. 최근 CU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공식 출범한 빌보드 코리아와 손잡고 ‘편의점표 웹 예능’을 만들고 9월 중순 공개한다. 빌보드는 세계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브랜드다. 빌보드 차트의 대중음악계 영향력은 여전하다. 그런 빌보드가 한국 시장 공략의 첫 파트너로 편의점을 선택한 것은 K-콘텐츠가 가장 빠르게, 가장 트렌디하게 전파되는 곳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CU만 해도 전국에 1만7천여 개 매장이 있다. 편의점이 소셜미디어와 결합하면 입소문에 속도를 낼 수 있게 해주는 지름길을 제공해준다.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인 만큼 K-팝이 전면에 등장한다. CU 유튜브 공식 채널인 ‘씨유튜브’에서 공개되는 ‘T-Time 그르르 갉’은 K-팝 아티스트들이 함께하는 토크쇼다. CU의 IP인 ‘그르륵 갉’은 드라마, 웹 예능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편의점은 IP까지 활용하면서 콘텐츠로서 확장성을 넓혀가는 추세다.
CU가 빌보드 코리아와 협업해 만드는 편의점표 웹 예능 콘텐츠들
©BGF리테일
편의점은 다양한 K-콘텐츠 유통에도 앞장서고 있다. 매장과도 연계하지만 애플리케이션이 콘텐츠 유통의 선봉에 서 있다. GS25는 모바일 앱 ‘우리동네GS’에서 문화 상품을 예약 판매한다. 올해는 르세라핌 앨범을, 지난해는 엔하이픈 앨범을 일부 오프라인 매장과 앱을 통해 판매했다. 눈에 띄는 지점은 외국인들의 편의점 앱 활용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K-팝 스타의 앨범을 ‘우리동네GS’에서 예약 판매로 진행해 보니 매출 4분의 1 이상이 외국인에게서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편의점 앱이 K-콘텐츠 유통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통계로도 확인된다. CU는 자체 앱 ‘포켓CU’에서 인기 K-팝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판매하고 있다. 편의점 앱의 인기 검색어에 아이돌 이름이 상위권에 등장하는 일도 흔하다. 외국인 관광객과 10~20대가 많이 찾는 서울 홍대, 성수 등의 매장에서는 전략적으로 K-팝 관련 상품을 적극 판매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앨범을 판매한 홍대 CU 팝업스토어에는 4천여 명이 다녀가며 성황을 이뤘다. 편의점에서 K-콘텐츠와 관련한 굿즈나 스타들의 포토 카드를 판매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닐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오히려 ‘단독 판매’를 앞세워 콘텐츠 소비자들을 이끄는 식으로 차별화 전략을 써야 할 정도다. 세븐일레븐이 단독 판매하는 ‘BTS도킹보조배터리’, 이마트24가 포토 카드를 포함해 단독 판매한 걸그룹 스테이씨의 첫 번째 정규 앨범 등이 인기를 끌었다. CU는 넷마블과 손잡고 액션 게임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 콜라보 제품을 판매하며 게임 내 아이템을 경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넷마블과 CU의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 컬래버레이션
ⓒCU 공식 인스타그램
편의점은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서도 주요 콘텐츠로 쓰인다. 스테디셀러 소설 <불편한 편의점>,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 웹툰 <와라! 편의점> 등은 편의점을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들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다양하게 다뤄진다. 지난해 방영된 넷플릭스 화제작 <더 글로리>에서도 편의점과 편의점 삼각김밥이 드라마의 주요 소재로 쓰였다. K-콘텐츠의 저력을 세계적으로 보여준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도 편의점이 등장하는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편의점 앞 간이 탁자에 앉아 편의점 안주를 펼쳐놓고 소주를 마시며 두 주인공, 성기훈(이정재)과 오일남(오영수)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현대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간명하게 보여준 장면으로도 꼽힌다. 공간 자체가 콘텐츠를 극대화해준 사례다. 드라마가 촬영된 편의점은 한때 관광 코스에도 들어갈 만큼 관심을 모았다.
배우 손석구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도 편의점이 등장한다. 주인공 삼 남매 중 둘째인 염창희(이민기)의 직장이기도 했고, 주인공 구씨(손석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리는 곳이기도 했다. 이민기가 연기한 염창희는 편의점을 관리하는 본사 영업사원으로, 이들의 업무는 흔히 알려진 상황은 아니다. 친근한 편의점에서 벌어지는 낯선 광경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공간 뒷단의 이야기’까지 관심을 갖게 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스튜디오피닉스, 초록뱀미디어, SLL
K-드라마 주인공들에게만 편의점이 각별한 공간일 리 없다. 평범한 한국인의 생활을 따라가다 보면 편의점이 한 번쯤은 반드시 나오게 돼있다. 워낙 생활밀착형 공간이다 보니 그렇다. 우리나라의 편의점 수는 전국적으로 5만5천여 개에 이른다. 문을 닫고 새로 생겨나는 경우가 매일 일어나는 만큼 정확한 수치 집계가 어려울 정도다. 매일 5만5천 개의 편의점을 오가는 수천만의 사람들. 콘텐츠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K-콘텐츠의 활로로 편의점만큼 가깝고 친근한 공간은 찾기 힘들 듯하다.
글. 문수정(국민일보 유통 담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