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덕’과 함께 성장하는 K-콘텐츠 Vol. 33
세계적으로 라이브 공연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팬데믹 기간에 대면 의사소통의 경험을 잃어버렸던 2030세대가 라이브 공연에 열광하고 있다. 정점에 오른 공연 산업의 현황과 지속 가능한 라이브 공연을 위해 고민해야 할 점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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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나날이 성장하는 음악 산업 중에서도 현재 가장 ‘뜨는’ 분야는 바로 공연이다.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2023년 음악 산업 보고서 ‘뮤직 인 디 에어’는 2024년 전 세계 음악 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을 7.3%에서 7.6%로 상향 조정하며 그 근거로 ‘라이브 음악 시장의 성장’을 들었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4% 성장했던 글로벌 라이브 음악 시장은 2023년의 경우 전년 대비 50% 성장을 기록했고, 2024년부터 2030년까지는 연평균 6.5%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 공연 시장의 수요도 크게 늘었다. 인터파크 티켓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23년 공연 티켓 판매 금액은 1조 2,697억 원을 기록하며 최초로 영화산업 매출을 뛰어넘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대중음악 공연이 있다. 한국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3년 총결산 공연 시장 티켓 판매 현황 보고서에서 대중음악 공연 건수는 전년 대비 17.7% 증가한 3,615건, 티켓 예매 수는 전년 대비 18.4% 증가한 516만 건을 기록했다.
LA 더 포럼에서 투어 공연을 가진 보이그룹 에이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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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의 라이브 공연은 국적과 세대를 불문하고 흥행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공연 시장 전체 매출 상위 20개 공연 중 총 6개 공연이 대중음악 공연이었는데, 팝 가수 브루노 마스의 내한 공연과 싸이의 ‘흠뻑쇼’, 김동률 콘서트가 그 주인공이었다. 대중음악 공연 매출 상위 10개 공연을 살펴보면 브루노 마스, 싸이, 김동률과 더불어 임영웅, NCT 드림, NCT 127, 방탄소년단 슈가의 콘서트가 이름을 올렸다. 특히 K-팝 산업에서 공연의 역할이 막중하다. 지난해 K-팝은 처음으로 해외 매출액 1조 원을 돌파했는데, 이중 공연은 5,88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가장 높은 비중(47.5%)을 차지했다. 미국 빌보드지가 발표한 전 세계 콘서트 매출 순위에서도 세븐틴(16위)과 엔하이픈(34위), 트와이스(46위) 등 K-팝 스타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K-팝 외의 공연 시장 성장도 활발하다. 경제 효과 400억 원 이상을 창출하며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과 더불어 부산 록 페스티벌, 서울 재즈 페스티벌 등 장르 음악 축제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뉴욕 록펠러 플라자에서 공연하는 트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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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최근 공연 소비의 주축을 이루는 집단이 20대와 30대라는 점이다. 티켓 예매 사이트 예스24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공연 티켓 예매자 가운데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74%에 이르렀다. 인터파크의 공연 장르별 관객 분포 자료에서도 거의 모든 장르에서 2030세대의 공연 예매 비중이 압도적이다. K-팝 콘서트뿐만 아니라 대중음악과 뮤지컬, 소극장 공연, 스포츠 행사 등에 적극 참여하는 이들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공연 소비 집단은 단순한 충성 구매 집단을 넘어 대중문화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뮤지컬 업계는 젊은 세대의 수요에 반응하여 팝업스토어를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록 페스티벌을 위시한 대중음악 공연 커뮤니티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과 인스타그램 매거진을 통해 실시간으로 취향을 공유하며 공연 소식을 전하고 있다.
라이브 시장의 성장은 팬데믹 이후 새로운 풍경을 펼치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예매 경쟁에서 탈락한 팬들을 위해 제작되는 공연 실황 영화가 침체한 극장가의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상영관 수는 적어도 특수 상영관에서 실감 나는 관람 경험을 선사하는 실황 영화는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이 과정에서 기술의 발전이 온라인 콘서트에 적용되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팬데믹 시기 성행했던 비대면 콘서트가 이제는 실시간 생중계라는 익숙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현장보다 더욱 현실감 넘치는 VR 콘서트의 발전 또한 눈부시다. VR 공연 전문 제작업체 어메이즈VR은 걸그룹 에스파와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VR 콘서트를 제작하여 화제를 모았다. 시선이 고정된 영화 관람에 비해 VR 콘서트는 마치 현장에 온 듯, 내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공연을 펼치는 이들의 모습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VR 콘서트 <하이퍼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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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장의 전성기는 확실히 지금이다. 그러나 이 호황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전체 공연 기획 시장의 50% 이상을 담당하며 지난해만 매출 227억 달러를 기록한 세계 굴지의 공연 기업 라이브네이션 엔터테인먼트와 그들이 운영하는 티켓 예매 서비스 티켓마스터의 독과점 구조가 폭발적인 공연 수요와 맞물려 공연 진행 과정에서의 차별 대우, 천문학적인 티켓 재판매 가격과 수수료, 암표 문제를 낳고 있다. 현재 라이브네이션은 미국 법무부의 회사 분할 요구 앞에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 역시 티켓 예매 과정에서 매크로를 악용한 싹쓸이와 조직화한 암표 거래가 사회적 화제로 떠올랐으나 뚜렷한 해결책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공연 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문제도 심각하다. 2023년 대중음악 공연은 3백석 미만의 소극장에서 가장 많이 열렸지만 티켓 판매액은 1만석 이상의 초대형 공연장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고, 5천석 초과 1만석 미만 공연장 매출은 오히려 감소했다. 해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2023년 영국에서는 125개 소형 공연장이 문을 닫고 365개 공연장이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투어’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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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고, 그 경험이 매번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또한 같은 취향과 목적을 가진 개인을 한 공간에 모아 집단화한다. 팬데믹 기간에 외부 활동과 직접적인 대면 의사소통의 경험을 잃어버린 현세대가 유독 현장의 경험을 중시하는 까닭이다. 2023년 미국 투어 흥행 수익 1.3조 원, 지역 경제 효과 13.3조 원을 기록하며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는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의 인기 역시 거대 팬덤 ‘스위프티스’들의 첫 만남과 경험의 공유,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소규모 축제의 현장에 그 비결이 있다. 오늘날 전 세계 팬덤 문화의 기초를 닦은 K-팝 산업 역시 공연 시장의 호황과 함께 날아오르고 있다.
이제는 이 정점의 순간에서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관람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 시스템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선한 기술 개발의 노력, 지역 소규모 공연장과의 상생 및 협력과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환경 보호의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도 각자 ‘최애’ 공연장에서 소중한 경험을 쌓고 있는 Z세대와 알파 세대의 다음 세대에게도 공연의 즐거움은 계속 이어져야 하니까.
글. 김도헌(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