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산업의 ‘굿 파트너’ 생성형 AI Vol. 32
제작비 0원, 제작 기간 5일. 권한슬 감독이 AI 영화 <원 모어 펌킨>을 만드는 데 소요된 비용과 기간이다. 제작비에 구애받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도전한 영화로 AI 필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 중인 권한슬 감독에게 AI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보았다.
2024 콘텐츠산업포럼에서 <원 모어 펌킨>을 설명하는 권한슬 감독
2023년, 권한슬 감독은 국내 최초로 배우와 카메라, 세트장 없이 생성형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영화를 만들어냈다. 무료 AI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만든 <원 모어 펌킨>은 그야말로 전기 요금만 들여서 만든 영화와 다름없다. 올해 2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제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원 모어 펌킨>으로 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권한슬 감독을 만나 AI 영화 제작 과정, 그가 생각하는 AI 영화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1년 전쯤 생성형 AI 비디오 기술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요. 그때는 기술 수준이 낮아서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없었지만, 저는 ‘미래’를 본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는 컴퓨터 앞에서 혼자서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올 것 같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그 기술이 미약하지만, 최대한 AI를 잘 활용하고 연출적으로 보완해서 완결성 있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AI 단편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 모어 펌킨>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1년 전 작업을 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활용할 수 있는 툴이 많지 않아서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과 피카(Pika, 당시 베타 버전)를 사용했습니다. 미드 저니 같은 툴도 있긴 했지만 검열이 있어서 <원 모어 펌킨>에서 보여주는 엽기적이고 잔혹한 비주얼을 생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테이블 디퓨전은 오픈된 AI 모델이어서 표현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AI로 생성된 부분이 가끔 비정상적이거나 불쾌하게 표현되기도 했는데, 이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살려서 그로테스크한 공포 장르로서의 연출과 표현 방법으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아직까지는 실사 촬영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지고, CG에 비해 조작성이 떨어집니다. 또한 일관성 있는 인물을 생성하기 어려워서 주인공 개념을 만들기 어려워요. 이는 내러티브를 구성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 머지않아 이런 한계점이 다 극복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제가 운영하고 있는 AI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인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에서도 필요에 따라 기존 VFX 방식과의 융복합 등을 통해서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원 모어 펌킨>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AI만이 표현해주는 기상천외하고 독특한 비주얼들이 있어서 지금은 ‘AI 필름’이라는 것이 마치 하나의 장르처럼 생겨나고 있습니다. 상업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머지않아 AI가 만든 비주얼이 컴퓨터그래픽 컷들을 대체하면서 조금씩 쓰이기 시작할 것이고, 기존 컴퓨터그래픽 작업 대비 비용과 시간 절감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AI는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AI는 표현의 도구일 뿐이고 그것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주체는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AI를 활용해보면 AI가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많은 노고와 연출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AI의 발전은 부정적인 것보다 오히려 신인 창작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 효과가 클 것 같습니다. 저희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에서도 AI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직군을 발굴하고 있어요. 이렇게 AI는 역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 시기는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습니다. 현재 AI 비디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요. 아직 접근할 수는 없지만 오픈 AI의 ‘소라’ 같은 모델은 실사와 구분하기 힘든 수준의 퀄리티를 내기도 합니다. 대중이 돈을 내고 AI 영화를 볼지 그렇지 않을지는 AI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 어떤 내용의 영화인가, 즉 ‘본질’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처음에 컴퓨터그래픽이 영화에 도입되었을 때 ‘어떻게 컴퓨터그래픽이 실사 촬영으로 찍은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아바타> 같은 영화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AI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창작의 주체는 AI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AI는 도구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AI로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도 창작의 고통은 똑같이 존재합니다. AI가 과용된다고 해도, 결국 본질을 잊은 콘텐츠는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해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고, 본질을 지켜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AI 콘텐츠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의 AI 필름, <Dangune-The First King>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런웨이(Runway)의 Gen-3와 루마(Luma)의 드림 머신(Dream Machine)입니다. 둘 다 비디오 생성 AI인데, 오픈 AI의 소라를 의식해서인지 성능이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최근에 거의 동시에 발표되기도 했고요.
저희는 <원 모어 펌킨>이 선보이기 약 1년 전에 <단군>이라는 제목의 최초 AI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원 모어 펌킨>을 계기로 더욱 다양한 영상을 준비하게 되었는데요. 최근에는 대기업 AI 광고 프로젝트와 더불어 현존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AI 뮤지컬 단편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멸망의 시(Poem of Doom)>라는 제목의 이 AI 뮤지컬 영화는 8월 초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원 모어 펌킨> 이후 약 1년 정도 만에 나타난 기술의 발전, 그리고 AI 활용법의 차이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을 겁니다.
AI 뮤지컬 단편 영화 <멸망의 시(Poem of Doom)>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AI 영화라는 장르 시장이 형성되면서 하나의 예술로서 인정받기 시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영화에도 조금씩 AI로 생성한 장면이 적용될 것 같아요. 현재 글로벌 콘텐츠산업 대비 K-콘텐츠산업의 AI 사용이 저조한 편입니다. 여기에는 현재 콘텐츠 제작을 위한 생성형 AI 서비스를 한국인이 활용하기 불편한 점이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활용을 위한 정보가 대부분 해외 정보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가이드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희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에서는 현재 AI 정보 포털 플랫폼 ‘AI-Kive(에이아이-카이브)’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AI 위키와 AI 커뮤니티를 구축해서 개인 맞춤형으로 필요한 AI 서비스 및 활용 방안을 안내해줌으로써 국내 AI 콘텐츠 제작 활성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AI가 사람들에게 친숙해지면서 콘텐츠산업에도 AI 도입률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 배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