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산업의 ‘굿 파트너’ 생성형 AI Vol. 32
지난 6월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재기발랄한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한 한상호 PD를 만나 AI를 다큐멘터리 제작에 사용한 의도와 이번 시도를 통해 느낀 AI와 콘텐츠의 관계에 대한 인사이트를 들어보았다.
©EBS
방송은 진화하고 있다. 광범위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기술적인 시도도 다양해졌다. 이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지난 6월 방영된 EBS의 인도 문명사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 3부작은 지난해 2월 기획, 개발에서부터 방송에 이르기까지 1년 6개월에 걸친 연구와 자문, 국내 스튜디오와 인도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고대 인더스 문명에서부터 무굴제국, 영국 식민 시대와 독립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친 거대한 인도 문명의 수레바퀴를 관통한다. 한상호 PD는 이를 ‘생성형 AI’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재기발랄하게 풀어내고자 했다.
<위대한 인도>를 연출한 한상호 PD
사진 제공 EBS
한상호 PD는 이전부터 AI를 활용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다큐멘터리는 제작비가 많이 들고 제작 기간도 길다. AI가 보편화되면서 이 모든 것을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생긴 셈이었다. 당연히 A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와 함께 가장 전통적이고 오리엔탈적인 인도 문명사를 실험적이지만 새로운 방법,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생성형 AI로 소개하는 것이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혁신적인 시도들이 앞으로 경비 절감은 물론, 콘텐츠 창작자에게는 창작과 구현의 자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이라고 예감했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 ©EBS
덕분에 <위대한 인도> 3부작은 생성형 AI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국내 최초의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다큐멘터리답게 비슈누, 가네샤 등의 수많은 인도의 신들, 인도 최초의 제국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한층 입체적으로 되살려 대화하고 인터뷰했다. 생성형 AI를 통해 신화 속에 박제된 인도의 무수한 신들과 사진 속에 박제된 인물들을 생생하게 살려내 대화하고 입체적으로 재해석하며 시청자들의 흥미와 이해를 도왔다.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노래도 성우 더빙 대신 생성형 AI로 소화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인도 영화의 필수 요소인 집단 군무 ‘맛살라’의 노래와 춤도 모두 생성형 AI의 힘이었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 ©EBS
‘한 편의 역사 예능을 보는 기분’이라는 것이 <위대한 인도>에 대한 평가였다. 역사를 알기 쉽게, 그리고 친근하게 표현한 게 큰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런 평가에는 이유가 있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이끄는 프리젠터인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 강성용 교수와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김대식 교수를 독특한 방식으로 등장시켰다. 보편적인 다큐멘터리라면 두 교수가 ‘점잖게’ 설명을 하겠지만, 한상호 PD가 선택한 문법은 달랐다. 작품에 등장하는 간디, 찬드라 굽타 등의 인물들이 교수들과 함께 설명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걸그룹 에스파의 <슈퍼노바>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장면이 등장하는가 하면, 두 교수가 타지마할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런 시도가 실현된 것 역시 생성형 AI의 힘이었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 ©EBS
한상호 PD는 다큐멘터리도 웃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제작진 내에서도 “이렇게 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이 오갔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다큐멘터리는 ‘엄숙한’ 콘텐츠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뒤집어 보면 ‘융통성이 없다’라는 뜻도 된다. 한상호 PD는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하는 한 사람으로서 늘 변화해왔고, 새로움을 시도했다. 이번에 생성형 AI를 통해 인도 문명사를 다루면서 오래된 꿈을 이룬 셈이다. 어느덧 다큐멘터리도 여러 장르를 통해 풀어내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가 된 듯하다.
왜 걸그룹 에스파의 <슈퍼노바>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했느냐는 질문이 종종 나왔다. 한상호 PD가 총괄 연출을 했지만, 제작진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있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속에 등장하는 젊고 발랄한 요소들은 나의 공이라기보다는 젊은 PD들의 아이디어였다. 사실 BTS, 뉴진스 등 다양한 후보군이 있었지만, 에스파가 제일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있어서 시도를 하게 됐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 ©EBS
한상호 PD는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고 시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생성형 AI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AI 시대의 초기라서 생성형 AI를 ‘신기하다’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게 너무 당연한 시대가 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콘텐츠 자체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앞으로는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않는 다큐멘터리가 더욱 주목받는 세상도 오지 않을까.
1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노동력이 대체됐다. 생성형 AI는 지식과 사무직 노동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던 혁명적인 변화지만 이제 AI의 시대가 시작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AI 발달로 PD라는 직업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항상 미래 기술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알지 못할 때 항상 불안해한다. 적응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AI 시대가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지만, AI를 잘 사용한다면 또 다른 세상이 오는 셈이다. 그러니 콘텐츠 제작 분야에서도 또 다른 기술과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구술 정리 남혜연(마이데일리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