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산업의 ‘굿 파트너’ 생성형 AI Vol. 32
AI 기술이 콘텐츠를 만들 때만 쓰이는 건 아니다. 콘텐츠를 추천하는 데도 사용된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보는 사람이라면 이미 ‘AI 콘텐츠 추천 시스템’의 자장 아래 있는 셈이다. ‘나만을 위한 콘텐츠 비서’ AI 에이전트는 어떤 존재일까? 더 자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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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2월, 스포티파이는 AI DJ 기능을 선보였다. 개인화 기술을 이용해 플레이리스트를 생성하고, 생성형 AI를 이용해 AI DJ가 할 말을 만든다. 거기에 음성 합성 AI를 이용해 사람처럼 몇 곡 사이에 말을 집어넣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터치 한 번에 바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AI DJ가 “몇 달 전에 당신이 많이 듣던 노래를 가져오고 싶었어요. 자, 여기 새로운 리믹스가 있습니다.” 이러면서 곡을 들려줄 때는 많이 놀랐다.
출처 | 스포티파이 홈페이지
이런 것을 ‘AI 콘텐츠 추천 시스템’이라 부른다. 솔직히 말해, 새로운 것은 아니다. AI를 어떻게 정의할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알고리즘을 이용한 추천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쓰고 있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거의 모든 웹페이지에는 콘텐츠나 상품을 추천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뉴스, 쇼핑몰, 포털 사이트, 음악 스트리밍, 넷플릭스, 유튜브, 틱톡, 인터넷 검색 결과까지.
인터넷을 지탱하는 사업 모델이 광고를 보여주고 물건이나 콘텐츠를 파는 것이라서 그렇다. 이용자가 해당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야 많은 광고를 보여줄 수 있고, 광고에 쓸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쇼핑할 가능성이 커지고, 구독료를 계속 내게 된다. AI 추천 시스템을 가장 열심히 연구하는 회사가 넷플릭스나 유튜브, 아마존, 쿠팡 같은 곳인 이유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의 추천 시스템인 ‘그런디(Grundy, 1979)’는 사서처럼 책을 추천하는 상황을 상정하고 고안됐다. 1992년에 등장한 ‘태피스트리(Tapestry)’는 수많은 이메일 중에 이용자가 관심 있는 이메일만 골라 보기 위해 만들어졌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추천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터질 듯이 정보가 많아지는 시대에, 내게 맞는 개인화된 정보를 필터링해서 보기 위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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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추천 시스템은 이후 음악, 책, 뉴스 추천 시스템으로 적용되는 영역을 넓혔다. 여기에 아마존이 책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연구 개발하면서 상업적 추천 시스템으로 거듭나게 된다. 왜 아마존이 선두에 나섰을까? 온라인 쇼핑 거래량이 늘면서,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걸 바탕으로 관심 있을 만한 책을 추천하니, 책이 더 많이 팔렸다. 추천을 통해 매출이 는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앞다퉈 추천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추천 시스템의 기본은 협업 필터링(collaborative filtering)과 콘텐츠 기반 필터링(content based filtering)이라 불리는 방법이다. 인터넷을 이용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뭘까? 이용자와 콘텐츠다. 추천 시스템은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잘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 잘 보여주기 위해선 이용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하고,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존재해야 한다.
협업 필터링은 이용자의 행동을 기준으로 삼는다. 내가 인디 음악을 좋아한다면, 다른 인디 음악 팬이 고른 영화를 좋아할 가능성도 크다. 그런 식으로 비슷한 콘텐츠 취향을 가진 사람을 묶어서 그룹을 만들고, 그 그룹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추천한다. 콘텐츠 기반 필터링은 내가 고른 콘텐츠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번에 SF 소설을 샀다면, 다음에 또 SF 소설 안 사겠냐고 묻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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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렇게 걸러진 정보가 꼭 마음에 드는 건(=매출을 늘리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계속 수정을 해야 한다. 이용자의 행동이나 구매 습관 등에서 피드백을 받고, 그걸 분석해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을 쓴다. 그래도 쉽게 좋아지지 않으니, 인공지능을 빠르게 도입하게 됐다. AI가 잘하는 건 패턴을 찾는 일이라, 구매 행동을 비롯해 콘텐츠 관련 자료, 이용자 관련 자료를 대량으로 입력하고, 뭘 바꾸면 매출이 늘지 찾아보라 한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바뀌었다. 추천 시스템이 진화하면서, 거꾸로 그걸 중심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애쓰는 창작자들이 있다. 다른 쪽에선 숏폼 같은 추천 시스템에 적합한 콘텐츠 양식이 태어났다. 이젠 알고리즘이 추천하기에 내가 좋아하게 된 건지,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추천을 해준 건지도 알기 어려워졌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 도입되는 기술이, 생성 AI와 AI 에이전트다.
생성 AI는 주로 이용자가 하는 행동을 학습해, 다음에 할 것을 예측하는 용도로 쓰인다. 이번엔 이걸 샀으니, 다음엔 저걸 살 것 같다. 이번엔 이 영화를 봤으니, 다음엔 저 영화를 볼 것 같다. 그러니 추천하자는 식이다. AI 에이전트는 반대다. 초기 추천 시스템처럼, 플랫폼이 아니라 이용자 편에 선다. 내가 요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AI가 스스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고, 내 상황을 알아서 고려해 콘텐츠를 추천한다. 나 대신 뭔가를 알아서 해주는 비서다.
AI 콘텐츠 추천 시스템에는 플랫폼, 창작자, 이용자의 욕망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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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에이전트는 정말 멋진 기술이지만, 여기에도 약점은 있다. AI 에이전트는 나 대신 움직이기 위해, 나에 대해 매우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과연 안전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콘텐츠 정보도 부족하다. 추천은 내가 모르는 정보도 알아야 가능하다. 결국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에 한정된다. 기존 추천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같은 정보를 반복하거나, 원하지 않는 콘텐츠를 추천한다고 내미는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AI 콘텐츠 추천 시스템에는 서로 다른 욕망이 교차한다. 플랫폼, 창작자, 이용자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개발하는데도 추천 시스템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 만드는 사람이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괜찮은 콘텐츠가 외면받고 괴상한 콘텐츠가 자꾸 추천되는 이유? 그걸 이용자가 클릭하기 때문이다. 새로 도입되는 AI 추천 시스템은 이런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좋겠다.
글. 이요훈(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