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관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는 K-콘텐츠 IP 영향력 Vol. 31
최근 게임 IP의 연관 산업 확장이 활발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펄어비스의 <검은사막>은 소비재 등 연관 산업계와 협업해 <검은사막> IP를 활용한 여러 상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게임 IP의 연관 산업 확장은 이제 시작이라는 게 중론. 게임 IP의 성공적인 연관 산업 확장 방안을 생각해본다.
©펄어비스·광천김
‘김은 사막’, ‘껌은 사막’. <검은 사막>의 오타가 아니다. 펄어비스가 <검은 사막> 게임 IP를 활용해 만들었던 김과 껌의 상품명이다. 검은 사막은 광천김, 해태제과와 함께 김과 껌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그리고 스웨거와는 ‘검은 사각’이라는 팬티를, 컴퓨존과는 ‘컴은 사막’이라는 컴퓨터를 만드는 등 꾸준히 협업을 진행해오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까지도 치킨 브랜드 멕시카나와의 컬래버레이션인 ‘검은사멕시카나’나 케이크 체인 빌리엔젤과 ‘검은 케이크’로 IP 활용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IP의 연관산업 확장이 콘텐츠 업계에 드문 일은 아니다. 2024년 5월에는 롯데월드몰에서 ‘포켓몬 타운 2024’ 행사가 진행되어 캐릭터 상품 판매와 함께 포켓몬 게임부터 애니메이션까지 모두 전시하고, 도넛 체인에서는 포켓몬 도넛을 판매했다. 넥슨의 <블루 아카이브> 같은 국내 서브컬처 게임들도 햄버거 체인과 협업을 진행했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콘텐츠 분야에서도 캐릭터 IP 활용은 일반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마케팅이다.
©펄어비스·해태제과
IP의 활용 및 전개는 산업 및 학계에서 ‘컬래버레이션’, ‘원소스멀티유즈’, ‘미디어믹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여러 방법으로 진행되어왔다. 국가마다 사용 범위가 다르지만 크게 원소스멀티유즈, 미디어믹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한 가지 이야기를 여러 종류의 미디어로 만드는 것을 지칭하며, 컬래버레이션은 매체가 아닌 다른 상품에 IP를 씌워 판매하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원소스멀티유즈의 경우,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처럼 같은 이야기를 영화 개봉 후 만화나 소설 등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믹스의 경우는 게임 <.hack>이나 <우마무스메>와 같이 초반부터 세계관과 캐릭터를 미리 준비한 후, 각 이야기를 게임,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전개하는 방식, 아니면 타입문의 게임 <페이트> 시리즈처럼 같은 세계 설정을 놓고 완전히 다른 캐릭터와 이야기를 여러 플랫폼의 게임과 소설로 펼쳐나가는 방식 등의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이를 뭉뚱그려 학계에서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로스트아크>의 캐릭터 ‘모코코’의 IP 확장 사례
©스마일게이트
한편 포켓몬빵같이 식품이나 소품, 문구 등 일상적인 제품에 인기 게임, 만화, 캐릭터 등의 IP를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포켓몬스터>의 경우 게임으로 시작했으나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세계를 확장하면서 다시 비디오게임으로 이용자를 유입시켰고, 트레이딩 카드 게임, 인형, 학용품 등 캐릭터를 사용한 제품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또한 <포켓몬GO> 등 정식 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플랫폼으로 게임이 서비스되며 닌텐도 게임기를 넘어 그야말로 글로벌로 펼쳐져 나가고 있다.
국내에도 <메이플스토리>나 <카트라이더> 등 미성년자에게 인기 있는 게임들이 학습 만화나 완구 등으로 IP를 활용하는 것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편의점 등에서 게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쿠폰을 주는 컬래버레이션도 많다. 최근에는 <로스트아크>나 <마비노기>의 경우처럼 게임 굿즈를 제작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판매하거나 팝업스토어를 만들어 입장 대기자들이 장사진을 치는 상황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포켓몬스터는 게임 IP 확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Shutterstock
이런 활용 중에서도 <검은 사막>의 케이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IP 활용이 인기 캐릭터의 매력에 의존하는 반면, <검은 사막>은 게임 브랜드만으로 협업을 진행해왔다는 지점이다. <검은 사막>은 대부분 게임 산업이 아니라 게임의 연관 산업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김은 사막’의 경우 몇 년에 걸쳐 협력 업체를 찾으며 힘들게 진행했지만, 한번 레퍼런스가 생긴 후로는 계속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진행해오고 있다. 게임과 관계없는 일상 상품들은 <검은 사막>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검은 사막>을 알릴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기존 이용자에게도 호감을 주는 상품이 된다.
이렇게 지금까지는 IP 활용의 대상에서 고려되지 않았던,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상품을 묶어 성과를 냈다는 지점에서 <검은 사막>의 IP 활용은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흔히 ‘IP 활용’에 대해서 사람들은 인기 있는 마스코트 캐릭터 등을 생각하겠지만, 게임 이용자들은 단순히 캐릭터만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은 해당 이용자가 단순히 그 게임에 시간을 쏟는다는 것만을 뜻하진 않는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게임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게임에 시간을 쓴다. 어떤 사람들은 게임 공략법을 찾으며, 어떤 사람들은 커뮤니티에서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사람들은 게임 안에 있는 콘텐츠로 2차 창작을 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IP 활용은 이용자에게는 공식이 주는 새로운 즐길 거리다. 햄버거 가게에 가서 “궁극의 미식 버거 세트 주세요”라고 외치는 것까지 게임을 즐기는 부분이며, 매장이 열기 전부터 백화점 앞에 줄을 서서 ‘오픈 런’을 하는 것 역시 게임에 대한 참여다. 게임에서 나올 법한 ‘명계 라떼’ 같은 음료를 마시기 위해 콜라보 카페에 줄을 서면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길드원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게임이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 ‘문화’로 동작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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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캐릭터를 이용한 IP 활용이 많았다면 앞으로는 그 ‘세계’를 즐기는 느낌을 주는 더 다양한 활용 방법이 늘어갈 것이다. 이용자들이 이야기를 즐기는 방식은 변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캐릭터뿐만 아니라 그 캐릭터가 살아 숨 쉬고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세계 그 자체를 즐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본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슈퍼마리오 월드 어트랙션에서는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캐릭터들이 가진 지분들이 상당하겠지만, 버섯 왕국의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길 수 있기도 하다. 강원도 인제에서는 게임 <서든어택>의 웨어하우스를 그대로 옮겨놓아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그 ‘세계’를 활용하고 있다. 게임을 넘어선 경험을 줄 수 있는 IP 활용 사례이기도 하다. 공간이 힘들다면 게임 안의 소품 하나를 활용하더라도 이러한 세계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용자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IP 활용은 이용자가 가진 ‘게임에 대한 애정’으로 동작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오히려 독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상대방을 인격이 아닌 지갑으로만 보는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IP 활용은 이용자에게 외면받을 것이며, 실망하게 되면 애정도 식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상품이다. 하지만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과 서비스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용자 모두 서로를 아껴주며 행복한 시간이 계속되길 바란다.
글. 오영욱(게임 개발자, 가천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