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권호영
권호영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로 미국 기업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지분을 사실상 100% 소유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외국기업은 PP의 지분을 49%이상 소유할 수 없게 돼 있다. 유료방송은 가입자가 전체 가구의 80%를 넘고, 케이블TV의 시청점유율이 전체의 36.4%를 기록하는 등 지상파방송과 함께 방송의 양대 축을 구성하고 있다. 외국 자본에 PP시장이 개방된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는 미국의 유수한 채널인 HBO, 디즈니, ESPN, MTV 등이 직접 진출해 현지 시청자의 인기를 얻고 있는데, 앞으로 한국에도 이들 채널이 직접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을 조기에 시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채널로 인해 유료방송의 시청료가 올라가고 친밀한 국산 프로그램을 볼 기회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시장개방으로 인해서 국내 PP사업자들의 수입은 감소될 것이고, 미국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영화, 스포츠, 다큐멘터리 등의 채널은 영업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소유한 미국 사업자들이 국내에 진출한 자회사 PP에게 우선적으로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2~3년이 지난 프로그램만을 국내 PP에게 판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국내에 진출한 미국 채널이 시청자에게 접근하려면 플랫폼 사업자들을 통해야 하므로, 이들이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및 IPTV 사업자와 합작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국내 PP시장은 급격히 재편되면서 많은 PP들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PP들은 지상파방송사나 외국 프로그램을 주로 편성해 왔으나, 최근에 온미디어, CJ미디어 같은 PP들이 드라마, 쇼 등을 제작하면서 PP들의 자체 프로그램 제작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들 PP는 주로 외국 프로그램을 통해서 확보한 수입을 프로그램 제작에 투입했는데, 시장 개방으로 인해서 이 수입원이 위축될 것이다. 미국 PP가 한국에서 직접 영업할 경우 양질의 프로그램과 탁월한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하여 한국의 시청자를 사로잡을 가능성이 많고, 국산 인기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드라마의 경우 미국 드라마가 이미 높은 인기를 끌고 있어 이런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PP시장 개방은 협정 발표 후 3년으로 유예되었기 때문에 비준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실제 개방은 5년 뒤에 현실화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PP들은 지금부터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개방에 대비할 시간은 많지 않다. 국회로 도입 논의가 넘어간 IPTV의 경우도 고려해야할 것이다. IPTV를 채울 콘텐츠가 절대 부족한 실정에서 이번 PP시장 개방으로 IPTV가 미국 채널들로 채워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PP시장을 미국에게 모두 내어주지 않으려면 한국 PP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한국의 PP가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양질을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PP가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PP시장 개방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응책이다. 국내 PP의 콘텐츠 제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우선 PP가 콘텐츠 제작으로 손해를 보지 않도록 SO와의 계약 관행 개선, 수신료 배분 제도의 개선, 수신료의 인상 등이 필요하다. 둘째 초기 케이블TV 도입 당시 시행했던 PP에게 10% 자제 제작 의무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에 미국 PP가 한국에서 콘텐츠를 2차 유통창구로 활용하는 대신에 국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셋째 PP가 제작 장비를 디지털화하는데 지원할 필요가 있고, 자체 제작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PP를 위해서 공동제작센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넷째 PP가 제작한 프로그램의 해외 판매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의 홍보, 수출 대행 및 수출 장벽의 완화 등이 도움이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4. 28일자] 'DT광장'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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