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유균
유 균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한미 FTA 협상 타결로 국내 방송시장도 개방의 파고를 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가령 우리가 3년의 유예기간과 2년의 비준 준비기간을 허비한다면, 5년 후 PP(방송채널 사용사업자)와 국내 제작프로덕션이 감수해야 할 시장 피해는 2005년 가격기준으로 3,000억원에서 최대 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런 시장 피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자칫 우리 방송 콘텐츠 시장과 채널이 흥미를 앞세운 미국의 폭력ㆍ선정적 프로그램에 점령당하지 않을까 하는 문화적 두려움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두려움은 용기를 내는 발원점이며, 피해는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한 선투자라고도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보다 재미있고 양질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우선 제공받을 수 있으며, 국내 주요 PP와 프로덕션은 지금까지 미뤄왔던 자체 제작과 콘텐츠 개발에 적극 나서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
나아가 국내 주요 PP들이 미국 콘텐츠와 정면대결이 아니면 굴종이라는 무모한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게임만 생각할 게 아니라, 공동제작 등의 방법을 통해 우리의 정서에 부응하고 아시아와 세계시장까지 겨냥한 협력체제를 모색할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타이타닉>의 컴퓨터입체영상(3D) 작업을 지휘 감독한 할리우드의 거장 스캇 로스는 얼마 전 한국에 왔을 때 필자에게 "한국의 창의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할리우드는 한국과 손잡기를 원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한국 콘텐츠의 우수성은 실제로 <겨울연가>나 <대장금> 등에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한미 FTA가 주는 메시지는 이것이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로 우리를 찾아왔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키 워드는 한마디로 콘텐츠다. 우리 콘텐츠를 만들고 늘리고 키워나가는 데 민간과 정부가 함께 손잡고 나서야 한다.
우선 시장에서 콘텐츠의 문화적 파급효과와 경제적 부가가치를 계량화하고, 정부는 콘텐츠 산업이 국가 기간 동력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창의적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한 제작 인프라를 구축하고 디지털시대의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
3년의 유예기간 동안, 우리가 가진 창의력을 콘텐츠의 용광로에 짜 넣어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문화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방송의 '포스트 한미 FTA 전략'을 치밀하게 실행해 나가야 한다.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현재는 미디어 분야에 변화와 혁신이 시급한 시점이다.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 남아 미래를 대비하는 요체는 양질의 콘텐츠를 충분히 공급하는 데 있다.
미국산 방송 콘텐츠를 참고서로, 혹은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콘텐츠를 세계적인 콘텐츠 교과서로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이미 한류라는 이름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두면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다. 이제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세계 속에서 한 판의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 본 칼럼은 [한국일보/4.12]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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