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윤호진
윤호진(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디지털 다매체 환경은 지금까지 신문과 방송이 양분해 온 저널리즘 영역에 일대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인터넷 뉴스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속보와 자신의 취향에 따른 맞춤형 뉴스 제공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방송뉴스, 특히 지상파 방송의 저녁종합뉴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나열식으로 소개하는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선택의 여지도, 참여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방송뉴스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예전의 경쟁력을 계속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1980년대 후반 영국의 BBC가 이른바 ‘버트 혁명’을 통해 ‘이슈 저널리즘’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에 주목할 만하다. 1987년에 BBC의 보도시사국장으로 취임한 존 버트는 기존의 단신기사 중심 저널리즘을 이슈 저널리즘으로 전환하여 BBC 뉴스의 심층성과 전문성을 고양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따라서 우리의 방송뉴스도 심층성과 기획성 그리고 탐사 저널리즘의 정신이 충만한 아이템들을 적극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일상적인 사건사고는 단신 형태로 짧게 처리하고, 핵심 이슈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진행자가 담당기자 또는 주요 관련자와 인터뷰를 하고 몇 개의 아이템으로 나누어 심층 구성하는 등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방송시간과 관련해서도 보다 치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경쟁 방송사와의 시청률 경쟁 차원에서 메인뉴스의 방송시간대 이동을 생각하기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뉴스구성의 완성도 등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근시안적인 변화도 문제이지만, 기존 관행에 대한 지나친 고수도 지양해야 한다. 주 5일 근무제의 정착과 함께 주말뉴스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지을지에 대해서도 방송사 내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연성뉴스의 강화와 함께 아예 방송시간을 축소 또는 폐지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주말뉴스는 각 방송사의 저널리즘 역량을 과시하고 차별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심층 인터뷰와 기획취재 등 다양한 아이템을 시도할 수 있다. 주 시청층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요구된다. 주말 나들이에 바쁜 젊은 층보다는 40대 이상의 중장년층과 오피니언 리더들을 타깃으로 한 시사정보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직하다.
이처럼 제작 시스템이나 방송시간의 변화도 방송뉴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뉴스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즉 진행자와 기자들의 역량이다. 미국 상업방송 뉴스제작의 산물인 앵커 시스템을 어설프게 흉내 내기보다는 이슈에 대한 전문성을 강조하는 영국의 프리젠터 시스템을 우리 현실에 맞게 응용할 필요가 있다.
단순 속보성 뉴스와 선정적 스포츠 연예기사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 정말 필요한 정보, 자신만의 관점을 배양할 수 있게 하는 리포트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진다. 방송뉴스가 현재의 위기를 미래의 기회로 전환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본 칼럼은 경향신문에(2006. 6. 27)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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