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윤호진
윤호진(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2006 독일 월드컵 개막과 함께 전격적으로 허용된 지상파 TV 4사의 멀티모드서비스(MMS)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MMS란 영상압축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 HD 방송을 위해 각 방송사에게 할당된 주파수대역을 HD급과 SD급 채널, 오디오 채널과 데이터 방송 등으로 분할 서비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상파 MMS 시험방송은 논의 과정과 정책 일관성 그리고 시청자 복지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먼저 지상파 MMS는 충분한 여론수렴 없이 졸속으로 처리됐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방송위원회는 지난 5월 30일 개최된 제24차 임시회의에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제재조치 등 모두 7건의 의결사항을 논의했는데, 그 중 하나가 지상파 DTV의 MMS 시험방송에 관한 건이었다. 사전에 전문가와 관련 사업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다각적인 점검이 이루어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쫓기듯 너무도 경솔하게 중대 사안을 결정해버린 것이다.
또한 디지털 TV의 여러 장점 중에서 특히 HD 방송의 선명한 화질과 입체적 음향을 강조하여 월드컵 기간 중 TV 수신기 보급에 박차를 가하려는 정책적 노력과 지상파 MMS 허용은 전혀 상충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MMS로 인한 전송률 저하로 인해 정작 HD 방송의 화질과 음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상파 방송의 다중서비스 제공은 지상파 독과점을 해소하고 매체간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정책 목표와도 모순된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상파 MMS의 성급한 허용은 시청자 복지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축구 팬으로서 디지털 TV를 구입한 사람들에게는 노이즈가 나타나는 HD 화면으로 인해 짜증을 안겨주었고, 지상파 방송사들의 월드컵 광분에 시달린 채 채널 선택권을 빼앗긴 시청자들에게는 다른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채널을 찾는 수고로움이 더욱 커졌다. 방송사들의 과도한 월드컵 편성에 대해 자제토록 관리 감독해야 할 방송위원회가 오히려 사업자들과 장단을 맞추어 부추긴 셈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방송위원회와 지상파 방송 4사가 시청자들에게 정중히 사과를 해야 하며, MMS 시험방송의 조기 중단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방송위원회가 “이번 지상파 MMS는 시험방송에 불과하다”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거나, 지상파 방송사들이 “6㎒ 주파수 대역은 자신들의 몫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따름이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통해, 방송정책을 결정하는 방송위원회가 사업자 논리를 뛰어넘는 전문성을 갖추고, 시청자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함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공영방송의 위상에 걸맞은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채널 수를 늘이고 광고수익 확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방송사들이 공익을 우선시하고 사회적 이슈들의 공론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공영방송 시스템을 개편하는 작업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 공감할 수 있다. *본 칼럼은 [기자협회보 2006-06-14]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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