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윤호진
윤호진(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바야흐로 인사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의 울음소리에서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듯이, 연일 자신이 속한 조직을 공격하는 KBS 감사의 속 보이는 고군분투 속에서 그리고 그의 언행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보수신문들의 행태 속에서 인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상투적이면서도 당위적인 인사기준을 제시하는 각종 칼럼들 속에서 방송계 인사를 바라보는 이상론과 현실론의 괴리를 거듭 감지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다가오는 5월에는 우리 방송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책을 담당하게 될 방송위원회 3기 위원과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위원 선임이 이루어진다. 이와 함께,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이 임명되며, 6월에는 KBS의 이사회가 구성되고 사장이 임명된다. 방송계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학계 모두가 관심을 기울일만한 토네이도급 인사태풍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인사기준이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스러운 것인가? 필자는 정치적 책임성과 전문성 그리고 조직통솔력, 이 세 가지 기준을 제언하고자 한다. 먼저 정치적 책임성과 관련해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사실 지금까지는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시대적 화두가 핵심적인 가치로 인정받아 왔다. 지난 시절 권위주의 정권에서 혹세무민의 도구로 이용되었던 우리 언론의 뼈아픈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정권으로부터의 독립만큼 절실한 과제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된 현 시점에서는 집권세력과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제정파야말로 민의를 가장 잘 대변하는 집단이다. 현실 정치가 지닌 합법적인 대표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직무상 독립은 분명하게 유지하되 정치적인 대표성을 지닌 인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공허한 구호로부터 ‘정치적 책임성’이라는 현실적인 명제로 논의의 주제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당당하게 정파적 입장을 피력하고 그 바탕 위에서 소신껏 정책을 수행하며 이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이 우리 방송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와 같은 정치적 책임성에는 정권의 호위병이나 추천한 정당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책임성이라는 인사기준이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조직 통솔력이라는 또 다른 기준이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한다. 미디어 융합 환경에서 첨예하게 충돌하는 이해 당사자들을 조정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에 기초한 권위를 갖추어야 하고, 내부적으로 조직을 원활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카리스마와 덕망이 겸비된 조직 통솔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자면, 정치적 독립성을 주창하며 표리부동하게 처신하는 인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여전히 아날로그식 식견을 고수하고 있는 인물, 재승박덕하여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인물은 배제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5월과 6월의 방송계 주요 인사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서 방송통신 분야의 난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본 칼럼은 4월 26일자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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