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권호영

권호영(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정부차원에서 지난해 5월 이후에 논의가 실종되었던 방송통신 융합에 부응하는 구조개편에 대한 논의가 2006년 2월에 들어서 다시 논의되고 있다. 방송과 통신 분야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방통융합에 적합하도록 관련된 제도의 개편과 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제도와 정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서 많은 식자들이 질책을 하고 동시에 한탄을 쏟아냈다. 디지털기술로 대변되는 방송.통신 기술은 하루가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비해서, 제도와 정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무조정실에서 이번에는 통신·방송 융합 추진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고, 국무총리가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칭)’를 설립할 의사를 여당 의원들에게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방송.통신융합에 부응하는 제도와 정책을 개편하겠다는 의지가 지난해 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지난해에 성사되지 않은 일이 올해라고 해서 성사될 것 같지 않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골프파동으로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구성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추측도 나돌고 있다.

지난해 3월에서 4월까지 국무조정실에 ‘방송통신구조개편위원회 설립 전담반’이 만들어져서 방송위원회, 정보통신부 및 문화관광부가 논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방송융합구조개편위원회’가 출범하지 못하였다. 이 위원회가 출범하지 못한데 대한 공식적인 해명조차 없지만, 이 위원회의 위상 즉 대통령산하냐 총리 산하냐를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정말로 이러한 이유로 범정부차원에서 융합을 논의조차 하지도 못한 게 사실이라면 동시대에 사는 사람으로서 창피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지난해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와 같은 기구가 구성되어 융합에 부응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관련 제도와 정책을 정비하지 못한 이유는 융합에 부응하는 제도와 정책의 개편을 거부하는 집단과 사람이 많기 때문이리라. 융합에 대응한 구조개편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정부 기관(및 직원)이 실제로는 구조개편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소문도 흘러나온다. 그리고 현재의 구도에서 지배적 지위를 가지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일부 방송사업자, 통신사업자 및 그 종사원들도 구조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랄수도 있다. 융합에 적합한 구조 개편이 이루어져서 융합형 서비스가 활성화될 경우에 시장에서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업자로서는 보다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방송통신 융합에 적합한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정부실패라고 할 수 있다. 구조개편 논의가 중단된 이유를 부처이기주의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관료제의 내부성 및 본인-대리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방송통신 구조 개편에 관여하고 있는 일부 관료들이 공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사익을 추구하고 있고, 일부 관료들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지 않고 대리인인 관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였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본인-대리인 문제를 국민-관료의 단선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시민-정치가-고위관료-일선관료’의 연쇄관계로 볼 때 융합과 관련한 구조개편의 경우 정치가(또는 고위관료)까지는 본인인 시민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보이지만, 일선관료(또는 고위관료 포함)는 시민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청와대와 총리실이 초심을 잃지 않고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시민을 위한 제도와 정책을 구현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융합에 부응하는 제도와 정책을 개편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복지 증진이라는 것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융합형 서비스가 경쟁적으로 제공되는 경쟁적 시장의 육성, 관련 사업자의 경쟁력 강화,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의 다양한 목표 있을 수 있지만 이를 통해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후생 극대화가 되어야 한다. 영국 정부가 ‘커뮤니케이션 규제’를 발표하면서 제시한 정책 목표중의 하나가 바로 공익과 소비자 보호였다. 미국의 FCC가 통.방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규제기관 모델의 목표도 ‘모든 국민이 통.방 혁신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촉진’에 두고 있다(손재권, 전자신문, 2006/3/7). 통·방융합 시대에 대비한 새로운 규제정책은 소비자로서의 국민 편익을 증진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 모든 국민이 통·방융합과 디지털 컨버전스 발전에 따른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촉진하고 공익 향상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기존 사업자 중심의 규제 방향이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허운나, 전자신문, 2006/3/2).

*본 칼럼은 미디어오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