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웅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성과와 관련된 논쟁이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실체적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좀더 시간이 지나봐야 하겠지만 그 논쟁의 불씨를 지핀 것은 분명 MBC 이다. 이를 계기로 PD 저널리즘 전반에 대한 비판과 격려의 목소리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보통 저널리즘은 기자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인정돼 왔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프로그램의 기획을 전담하는 PD들에 의한 저널리즘적 시도가 줄곧 이어져왔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룬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자 저널리즘이 팩트, 즉 사실에 무게를 두다보니 신속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결과위주의 보도를 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반해 PD 저널리즘은 어떤 문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구조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심층보도에 대한 사회적 요청을 수용한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자 저널리즘이 가진 ‘짧은 호흡’의 한계를 보완하는 의미로서 PD 저널리즘이 추구해온 ‘긴 호흡’의 탐사적 접근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곳들을 드러내어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데 적잖은 기여를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PD 저널리즘 프로그램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 이면에는 시청률 지상주의로 인한 소재주의 등 그 역기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PD 저널리즘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어떤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안의 제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일부 PD 저널리즘 프로그램들에서는 이러한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구조적인 진단과 분석은 외면한 채 피상적인 접근으로 일관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러다보니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 그래서 무엇을 듣고 보긴 했는데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 영 감이 안 잡힌다는 시청자들의 불만도 여전히 줄어들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대부분 시사고발적 성격을 띠고 있는 PD 저널리즘 프로그램들이 이러한 심층보도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이로 인한 병폐는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사회병리적 현상만 연속적으로 나열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치유책은 실종되는, 다시 말해 ‘보여주기식’의 충격요법으로만 일관하는 폭로 저널리즘 프로그램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자칫 PD 저널리즘 프로그램이 유해정보를 쏟아내는 온상이 되거나, 범죄를 가르치는 교과서가 돼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속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PD 저널리즘 프로그램들의 문제점이 쉽게 개선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방송사 내에 PD 저널리즘이 주로 다루는 시사고발 분야의 전문가층이 매우 얇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사고발 문제와 같이 중장기적인 심층취재를 요하는 경우, 충분한 제작인력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프로그램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인데, 현실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부서가 방송사 내에서 3D 파트로 인식되어 이곳에 지원하려는 PD들이 적다보니 취재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이 부족하게 되고, 제작기간도 당연히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분야, 이를테면 노동문제, 장애인문제, 사회복지문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식견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기란 불가능할 것이고, 결국 어떤 사안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일반 교양 프로그램에 비해 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제작비는 N분의 일 형태로 지급되다보니 공을 들여 프로그램을 제작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인센티브를 주기는커녕 제작진의 일방적인 희생만 요구하는 상황에서 사명감을 갖고 집요하게 문제를 파헤쳐 그 대안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시청률이 방송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PD 저널리즘 분야만 고고하게 시청률을 의식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넌센스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그만큼의 사회적 영향력을 증명하는 중요한 수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어떻게 시청률을 올릴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고민이 지금보다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 수 있는 소재, 이를테면 살인, 폭력, 성관련 소재들을 다룸으로써 손쉽게 시청률을 올리려는 시도들이 적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PD 저널리즘이 센세이셔널리즘만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았는가? 이제는 시청자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는 점을 제작진들이 간과해서는 안된다. 매체환경도 많이 변했다. 인터넷에서 각종 흥미로운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데 방송사가 똑같은 수준의 얘기밖에 해줄 수 없다면 결국 PD 저널리즘은 그 설 곳을 잃게 될 것이다. 결국 어떤 사안에 대해 얼마나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심층취재를 해내느냐가 PD 저널리즘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박웅진(연구정보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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