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윤호진
윤호진(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HDTV 시대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아날로그 방송에서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 방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HD급 고화질 와이드 수상기가 많은 가정의 거실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HDTV는 거실 풍경을 변모시킬 뿐만 아니라, 세계 미디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이자 콘텐츠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수시장 규모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뉴미디어와 정보통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 이 HDTV 관련 세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유기적인 협력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HDTV 연착륙 위한 NHK 전략
HDTV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취하고 있는 대응전략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HDTV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는 반면, 일본 정부는 방송사업자의 자발적인 의사를 존중한 가운데 시장원리에 의존하는 방임정책을 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HDTV 시장의 육성을 위해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과 디지털 제작 및 편집시설의 공적 지원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총무성이 방송사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와 함께 대국민 홍보활동을 벌이고, HD 프로그램 편성과 관련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방송영상 콘텐츠와 디지털 방송장비 등에 대한 각종 마케팅이나 견본시와 관련해서도, 한국은 정부와 방송사 그리고 민간업체들이 주축이 되어 경쟁적으로 이벤트를 개최하고 이에 따른 프로모션 효과도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내수시장의 안정성과 방송장비의 우월성을 감안해서인지 정부 차원에서 별도의 마케팅을 개최하지 않고 있다.
HDTV가 효과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양질의 HD 프로그램 제공과 함께, HD 와이드 수상기와 기존 아날로그 수상기가 공존하는 향후 5~6년 동안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합적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바로 이 점에서 NHK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NHK는 주 1회 방영되는 대하 역사극과 매일 방송되는 연속극을 상이한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먼저 상대적으로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역사극의 경우, 화면의 양 측면을 잘라 내거나(side cut), 화면구도를 감안하여 적절히 조절하는 방식(Pan & Scan)을 택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HD 카메라와 SD 카메라로 같은 각도에서 동시에 촬영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회분 프로그램에는 사이드 컷이 87%, 팬 앤 스캔이 8,5%, 동시촬영이 4,5%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한편 아침마다 방송되는 연속 드라마의 경우에는 아예 처음부터 14 : 9로 촬영하여, HD 와이드 수상기와 표준 화질의 4 : 3 수상기 화면에서 잘려지는 부분을 최소화하면서 제작시간을 단축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처럼 NHK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송이 공존하는 시기에 HD/SD 프로그램 서비스를 확대하고, 이를 위한 제작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범정부차원의 유기적 협력 필요
HDTV는 시청자들에게는 고화질, 고음질의 품격 높은 시청환경을 제공하지만, 국가적으로 볼 때에는 프로그램 수출시장을 선점하고 가전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한 방송 현장과 가전업계의 애로사항을 적극 수렴하여,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과 진흥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원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시장의 논리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장비를 공적 자금으로 무턱대고 구입하기보다는 R&D에 주력하여 자체기술을 개발, 수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HDTV라는 기술의 발전이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품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콘텐츠 제작지원에 힘쓰고, 네트워크와 송출 시스템의 디지털화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21세기 미디어 산업의 첫 번째 교두보라 할 수 있는 HDTV 시장에서 뉴미디어 강국 한국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을 때다.
윤호진(연구정보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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