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윤호진
경기, 인천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지상파 방송사를 선정하기 위한 허가 추천 작업이 마무리됐다. 신청 마감일인 11월 24일, 방송위원회는 모두 5곳의 컨소시엄, 즉 Good TV, KIBS, 나라방송(NBC), 경인열린방송(KTB), TVK의 신청서류를 차례로 접수했다. 지난 해 12월 21일, 투자의향서 미비와 재정건전성 확보방안 미흡 등의 이유로 경인방송(iTV)이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을 거부당한 지 1년 여 만에 경인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방송사 탄생이 마침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사실 경인방송 재허가 추천 거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대 사건이었다. 거부권 행사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염려한 방송위원회가 어떻게 해서든 파국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노사 간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경인방송은 정파의 비극을 맞고야 말았다. 이 과정에서, 동양제철화학과 대한제당을 대주주로 하는 경인방송 경영진들은 직장폐쇄와 고별방송 봉쇄, 위장폐업 의혹과 퇴직금 반액지급 등 상식 이하의 대응을 일삼아왔다.
물론 경인방송 노조의 투쟁방식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익적 민영방송이라는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구호에 매몰되어, 협상 전략의 유연성이 부족했고 외부 전문가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프로그램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강성 투쟁의 이미지가 앞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허물과 무리에도 불구하고, 경인방송 노조원들은 방송의 공익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힘겨운 투쟁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고, 이제 간절한 기다림의 종착역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재허가 취소 이후 희망노조로 탈바꿈한 경인방송 노조는 방송회관 앞에서 정기적으로 촛불집회를 개최하여 새로운 방송사 설립을 위한 꿈을 이어나갔다. 또한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경인지역 새방송 창사준비위원회’(창준위)를 구성했고, 결국 이와 같은 전방위적인 노력이 바탕이 되어, 지지부진하던 경인지역 방송사 재설립 문제를 공론화하고, 미적거리기만 하던 방송위원회의 결단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방송위원회의 로드맵이 확정되고 방송을 희망하는 사업자들의 합종연횡이 시작되면서, 주요 언론들은 본질보다는 현상 보도에 급급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5파전이니 4파전이니 하며 경쟁구도를 강조하는가하면, 은연중에 특정 컨소시엄을 주도하고 있는 경쟁매체에 대한 견제 목소리도 가세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지난해 겨울에 우리 모두를 더욱 춥게 만들었던 경인방송 재허가 취소 사태는 방송의 공적인 역할과 지역주민에 대한 봉사 의무를 저버린 방송사업자에게 방송법 차원에서 내려진 엄중한 단죄였다. 단지 방송권역이 확대되고 수익구조가 마련되었다는 이유에서 서둘러 참여를 결심한 기업, 방송에 대한 고민이나 철학이 부재한 채 넉넉한 자금력을 앞세워 신청서를 제출한 컨소시엄에게 또다시 방송사 경영을 맡기는 잘못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새롭게 탄생하는 경인민방이 우리 방송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기자협회보 / 20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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