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만제
요즈음 방송통신융합 구조개편과 관련하여 방송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2003년부터 계속되어온 외주채널 설립에 대한 논의도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한 달 사이에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여당의원과 야당의원이 각각 개최하는 토론회가 열려 정책기관, 방송사를 비롯한 이해당사자, 학계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의견을 개진하였고, 채널설립을 검토하는 정부의 TF팀이 활동을 시작한지도 서너 달이 지났다.
논의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상파 이외의 제작기반이 취약한 현재 우리방송 현황을 볼 때 외주채널 설립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이 채널의 구체적인 설립, 운영방안에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견 차이는 새롭게 설립되는 채널의 상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외주채널의 상을 자의적으로 그려두고 이에 대해 논의를 하다보니 생겨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새 방송사인 외주채널의 규모, 운영방안, 재원 등과 관련된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들을 분명히 하고 이를 기준으로 논의를 통해 수정보완을 계속해 간다면 훨씬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해 질 것이다.
외주채널은, 지난해 도입을 결정하고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는 소출력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명목상은 지상파 방송이지만 기존의 지상파 방송과는 전혀 다른 운영구조를 갖는 방송이다. 운영인력이 지상파 방송 종사자 전체 인력 1만 4,143명(2003년 현재)의 0.63%인 90명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방송사인 것이다. 인력이 이렇게 적은 것은 방송국 내에는 기자나 PD같은 프로그램 제작인력을 두지 않고, 필요한 프로그램은 모두 방송국 밖의 제작주체들이 만들어서 공급하는 소위 ‘출판사형’ 방송국이기 때문이다.
외주채널의 연간 제작비는 신규 외주 제작 5시간, 구매 프로그램 3시간을 편성하고 나머지를 재방송할 경우, 대체로 717억 원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 정도 규모는 2003년 지상파 방송의 전체 매출이 3조 5,482억 원이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1.98% 정도의 규모이다. 신규 외주 제작과 프로그램 구매를 두 배 늘린다고 해도 전체매출의 4% 수준에 머물게 된다. 전체 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이처럼 소규모 인력과 100% 외주제작으로 운영되는 방송국은 운영비가 많이 들지 않아 상대적으로 넉넉한 제작비를 투입할 수 있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또한 외주전문채널의 이러한 특성은 기존 지상파에서 방송하지 못하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게 한다. 기존 방송사는 몸집이 크기 때문에 매시간 편성되는 프로그램들은 이 규모에 적절한 광고수입과 시청률을 담보할 수 있어야 만 한다. 모든 시청가구가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채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를 다루어야 하는 다수주의 공익성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지상파 방송은 시청자의 평균적인 취향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매커니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은 현란한 몸놀림과 이름난 출연자들의 소음 같은 말장난으로 채워지는 오락물과 전 국민이 관심을 갖길 희망하는 대형 드라마가 편성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소수자의 의견과 문화 또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은 발붙이기가 어렵다. 많은 시청자들은 편안하게 문화적 감수성을 확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날 기회를 점차 잃고 있는 것이다.
외주전문채널은 문화적 다원성과 제작주체의 다원성을 실현할 수 있는 미래형 방송국이다. 주파수라는 국민의 재산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사업자의 이익이 방송사 종사자들에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방송사 밖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다양한 창작자들에게 전유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만제(연구정보센터 책임연구원 man2@kb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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