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만제
지난주 서울에서는 방송영상물 국제 견본시 BCWW 2004가 성황리에 열렸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1400만 달러 어치나 수출계약이 성사됐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시장에 우리 영상물이 수출되는데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수출하는 프로그램들이 주로 드라마에 국한되어 있고 특히 어린이들이 즐겨 시청하는 애니메이션이나 문화적 교육적 가치가 높은 다큐멘터리 등은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불균형은 방송의 사회 문화적 기능 확대와 함께 심각하게 검토할 사회적 숙제이다.
드라마 수출이 늘어나면서 시청자들은 재미있는 드라마를 볼 기회가 늘어났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문화 프로그램,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볼만한 프로그램이 제대로 방송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편성되는 KBS2의 1999년 가을 개편시 어린이 프로그램 비율이 17.1%이던 것이 2001년에는 10.5%로 줄었고 올 가을 편성은 5.8%에 불과한 실정이다. KBS1의 4.0%를 합해도 10%에도 못 미치는 비율이다. 이 중 대부분은 외국 만화영화프로그램이다.
대부분 어린이들이 방과 후에 학원에 다니고 있고 또 인터넷 이용 시간이 크게 늘어났지만, 2003년 시청률 백서에 따르면 10대 미만 어린이들의 평일 평균 텔레비전 시청시간은 2시간 10분이나 된다. 이들은 어린이 프로그램 보다 유료채널이나 어른 프로그램을 주로 시청하고 있다. 유료 어린이 채널도 폭력성이나 선정성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교육방송은 학교교육 보완매체로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제 텔레비전은 더 이상 오락매체나 정보매체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매체 교육매체로 그 영역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고화질 텔레비전이 선보이고 텔레비전 채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이동하면서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있다. ‘TV 유치원’이나 ‘뽀뽀뽀’ 유형 또는 교훈적인 내용에 재미를 가미한 어린이 드라마나 만화영화 수준을 뛰어넘어 예술적 감수성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전문적인 어린이 프로그램 개발을 고민할 때이다.
전문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에 많은 비용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고 다수주의 공익성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지상파 방송이 소수 문화를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린이 프로그램 같이 사회적 중요성이 큰 영역을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일찍이 상업방송이 발전한 미국에서 디지털 시대 공익서비스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던가.
현재, 우리사회 방송에 대한 관심은 주로 방송 구조개편, 공정성 확보와 같은 거대담론에 집중된 양상이다. 방송발전기금의 지원도 어린이 프로그램 지원 같은 섬세한 접근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여당의 방송법 개정안에 ‘어린이 프로그램 및 시청시간대’를 규정하고 폭력, 선정적인 장면을 차단하는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1998년 설립된 대만의 공영방송 PTS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어린이, 청소년 프로그램 제작, 방송에 주력하고 있다. 대만은 지난해 한국 방송물 수출의 20%를 수입한 국가지만 이번 BCWW 2004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판매하기 위한 부스를 개설하여 주목을 받았다.
디지털 방송시대를 맞이하여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방송이 수행하는 사회적, 문화적 기능에 대해 차분히 따져볼 시점이다. 이 논의가 방송개혁이나 미래 방송의 틀을 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만제(연구센터 수석팀장·언론학박사)
[국민일보 기고 / 200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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