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만제
우리가 흔하게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방송국에서 직접 만든게 아니라 방송국 밖의 독립제작사들이 만든 프로그램들이 제법 많다. 이를 외주제작이라고 한다. 일본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 수출된 드라마 ‘겨울연가’와 ‘파리의 연인’등이 대표적인 외주제작물이다. 외주제작 제도는 여러 창작주체에 의해 제작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이 볼수 있고 제작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문화적·산업적 효과가 큰 제도이다. 이미 1991년부터 지상파 방송 전체 프로그램의 3%를 외주제작하도록 의무화한 이래 올해는 외주제작 의무 비율이 35%까지 확대되어 시행되고 있다.
국내 방송프로그램의 외국 수출 길이 열리고 2002년부터는 수출금액이 수입금액을 앞지르는 쾌거를 일구어 낸 데는 외주제도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외주제도를 뜯어보면 제작비 현실화와 저작권 귀속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지난해 지상파 방송의 외주제작 편성비율은 35%까지 확대되었는데도 외주에 투입된 제작비 비율이 11.7%선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외주 제작비가 터무니 없이 적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근에는 광고시장의 수익 부진을 빌미로 이 적은 제작비를 최고 40% 더 삭감하겠다는 KBS의 통고가 있었고 이에 대해 독립제작사들은 ‘독과점 구조속에서 나온 힘센자의 횡포’라는 반박 성명을 발표하였다.
적은 제작비 문제는 제작비 지급 지연, 불공정한 계약 관행 등 많은 문제와 함께 거대 방송사의 우월적 지위남용 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오죽하면 제조업이나 건설업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하도급의 공정거래를 보장하기 위한 법인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방송프로그램업을 포함시키는 법개정이 추진되고 있겠는가.
외주 제작한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더라도 모든 저작권 이익이 방송사로 귀속되기 때문에 독립제작사는 재주부리는 곰 노릇만 하고 고사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독립제작사협회에 따르면 KBS가 방영한 ‘풀하우스’의 경우 KBS측에는 20억원 이상의 순수익이 났지만 정작 이프로그램을 제작한 프로덕션은 적자를 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제작사들도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고 방송국에는 지상파 방영권만을 주는 ‘사전제작제’ 외주제작을 늘이고 있다. 그러나 수십억원의 자체 제작비를 들인 ‘슬픈연가’와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경우도 지상파 이외의 2차 유통에서 저작권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방송사측이 드라마 기획에 참여하고 성공여부에 따른 위험 부담을 가질 뿐 더러 드라마의 성공이 채널 이미지에서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에 저작권을 모두 제작사에 귀속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BBC는 자사가 제작비를 모두 지불한 경우에도 BBC 채널 외의 유통에서 발생되는 수익의 30%를 독립제작사에 제공하고 있다. 다 알고 있는 바대로 저작권은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지 좋은 길목에 좌판을 벌린 독과점 상가의 프리미엄을 보장하는 권리는 아니다.
방송프로그램 제작이 수직적 생산라인에서 수평적 네트워크 유연전문화 제작으로 변화하는 큰 흐름을 따라 외주제작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일본 지상파 방송의 외주제작비율은 70%를 넘고 있고 영국에는 외주전용 방송국 ‘채널 4’가 운영되고 있지 않는가.
이만제(연구센터 수석팀장·언론학박사)
[국민일보 기고 / 2004.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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