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만제
국내 케이블 텔레비전과 위성 방송에서 일본 드라마를 볼 수 있도록 한 개방조치가 이루어진지 1년이 가까워 온다. 1998년 영화, 비디오, 출판만화가 처음 부분적으로 개방된 이후 대중가요 부분 개방이 이루어졌고, 2000년 1차 방송개방에서 다큐멘터리, 보도, 스포츠 그리고 국내개봉 일본영화를 방송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후 단계적 일본문화 개방은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과 만나면서 잠정 중단되었다. 그후 2003년, 2차 방송 개방으로 케이블 텔레비전과 위성방송은 대중가요와 15세이상 등급의 모든 드라마를 편성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상파 방송에서 드라마, 대중가요의 완전 개방은 사실상 유보된 것과 다름없다. 당시 정부는 이 부분의 개방에 대해 그 영향력을 분석한 뒤 추가 개방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로부터 반년동안 국내 케이블 텔레비전과 위성방송을 통해 40여편의 일본 드라마가 소개되었다. 이들 드라마에는 몇년 전에 일본 지상파에서 평균 시청률 20% 이상을 기록한 인기 프로그램들도 여섯편이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국내 시청자들의 반응은 거의 시청률 1%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방송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최종회의 경우 올림픽 중계 시청률 10%대를 훨씬 넘는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2002년 일본에 수출된 드라마는 1300편이 넘으며 수출액만도 100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에서의 한국 드라마 열풍은 어떤 형태로든 일본 드라마에 대한 한국 지상파 방송개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당국과 제작현장에서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내년은 해방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문화영역에서라도 양국의 불행했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의 동반자로서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협력관계를 구축해 가는 변화의 이정표를 세울 시기이다. 문화적 자긍심을 갖고 개방을 기회로 활용할 자세로 지상파 텔레비전 드라마 개방에 접근해야 한다.
문화교류는 한쪽으로의 일방적인 흐름보다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긍정적인 면을 갖는다. 일본의 후지 텔레비전은 ‘겨울연가’ 인기현상을 분석하여 ‘동경만경’이라는 겨울연가 풍의 드라마를 제작, 방송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 개방을 통해 전작제 제작관행, 합리적 저작권 처리, 그리고 적절한 제작비 지출 등의 경쟁력을 배워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책임있는 사람들에 의해 좋은 드라마가 선택된다면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각으로 보여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경험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확장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텔레비전 드라마 돈벌이 수단으로만 기능해서는 안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과거의 찬란한 문화유산에 비추어 볼 때 36년간의 문화적 혼돈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번 휴일에는 오랜만에 아이들과 박물관에 다녀와야겠다.
이만제(연구센터 수석팀장·언론학박사)
[국민일보 기고 / 2004.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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