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만제
디지털시대라는 요즘, 방송과 통신이 진화과정에서 ‘융합’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방송위원회, 정통부 등 정책기구들과 국회에서 방송통신통합위원회를 만드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변화에 대한 대응이 주로 규제제도에 치우친 채 통합위원회가 양 영역의 현안들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 인양 다뤄지고 있다. 뿐만아니라 융합의 본래 의미가 과장된 가운데, 융합이 가져다 줄 편익보다는 이 기회를 어떻게 사업기회로 활용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는 듯한 아쉬움이 있다.
사실 융합은 서로 다른 여럿이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것인데,방송·통신 융합도 둘이 합쳐져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것인가. 아니다. 디지털로 전환되는 방송은 영화스크린과 같은 화면비율(16:9)의 큰 화면과 고화질을 특징으로 한다. 더 방송다운 방송이 될 전망이다. 휴대 이동전화가 중심이 되는 통신은 목소리 뿐 아니라 데이터와 영상을 전달하는 전화로 진화하여 통신적 요소가 커지게 된다.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두 영역을 각각 지탱해온 사회적 체계가 정보통신 기술발전에 의해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영역을 굳건히 하면서 기술 발전에 따라 현재의 기준으로는 분류가 애매한 서비스들이 일부 생겨난다는 것이 융합의 의미이다.
대표적인 융합형 서비스는 방송을 이용한 데이터 서비스, 양방향 서비스, 통신망을 이용해 방송 성격의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브로드밴드 서비스, IP방송, 준이나 핌같은 이름도 생소한 것들과 앞으로 나타날 서비스 들이다. 이들 서비스는 아직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며 한결같이 돈을 내야만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이들 서비스가 방송으로 분류된다면 공익성을 위해 사업자에게 보다 엄격한 규제가 요구된다. 이런 사업자 관점에서의 관심이 규제기구 간 영역 다툼 또는 통합위원회 설립논의와 맞닿아 있다.
융합형 서비스는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은 상태지만, 이미 각 가정이 지불하는 통신과 방송관련 비용은 부부와 자녀들의 휴대전화 이용요금, 유선전화 요금, 인터넷 이용료를 통털어 만만치 않다. 휴대전화를 이용하면서 그 비용에 비해 유용성을 절감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데다 인터넷에서도 비용만큼 생활에서 편리함과 만족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유료방송 이용료와 시청료를 내는 방송도 비슷한 상황이다. 통신에 비해서는 적은 금액이지만 역시 내용면에서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볼만한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유료 융합형서비스에 기대를 갖기 어렵다.
사정이 이런만큼 방송통신 융합에 대한 논의,또는 통합 규제기구 논의는 두 영역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시급한 대안은 아니다. 현안은 현안대로 방송과 통신 각 영역에서 검토하면서 융합은 또 융합대로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융합형 서비스의 경우 사업자 측면에서 ‘누가 어떻게 서비스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용자 측면에서 ‘무엇을 서비스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이만제(연구센터 수석팀장·언론학박사)
[국민일보 기고 / 2004. 8.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