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만제
국민의 방송,공영방송인 KBS가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다.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팀제를 강화하는 등 대대적으로 변화된 조직의 윤곽을 드러냈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공적인 감시체제 부재와 같은 제도적 문제점과 방만한 경영에 대한 지적이 있은데다 탄핵방송에서의 공정성 시비에 휘말린 채 언론개혁이라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KBS가 뼈아픈 자기반성의 1차 결과물을 내놓은 것으로 읽혀진다. KBS 밖에서 논의되는 제도개선과는 별도로 이 시도와 함께 점진적으로 계속될 자구노력이 성공적이기를 희망한다.
알다시피 창작물인 방송프로그램의 생산과정에는 수직적인 조직 관리자 한 사람의 경륜이나 조직의 관행보다 수평적으로 배치된 팀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훨씬 더 큰 힘을 갖는다. 수직적 조직은 운영비가 많이 소요되는 아날로그형 과거 조직일 뿐이다. 지금과 같이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서로의 결점을 보완하는 팀제 도입은 미래형 조직으로서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조직개편만으로는 개혁의 완성을 담보할 수 없다. 무엇보다 KBS 성원들의 위기의식이 절실하다. KBS는 사장의 소유도,노조의 소유도,그렇다고 내부 구성원 전체의 소유도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이해와 협력도 절실하다. 변화는 언제나 이를 원하는 측과 원하지 않는 측사이의 갈등요소를 내재하고 있지만 이 갈등이 서로의 결함을 보완하고 더 큰 사회적 갈등을 막는 보완장치로 기능해야 한다.
KBS 정체성에 대한 시비도 만만찮다. 신자유주의 경제질서하에서 광고를 통한 재원 보전이 불공정 거래라는 비난이 일고 공영방송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현실 아닌가. 그러나 공영방송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한 상업적 이윤추구나 여타의 외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한다는 사실도 포기할 수 없는 명제이다.
이같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프로그램으로 KBS가 조직 자체의 이익보다 전체사회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증명해야 한다.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건강한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잡는다면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영방송의 존재이유가 비효율적 조직운영이나 구성원들에 대한 특권적 대우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공영방송이 정치적 독립을 위해 규제기구나 국회,나아가 방송의 진정한 주인인 시청자의 공적 견제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 사회 전반이 합리화 될수록 방송이 포함된 제반영역이 더욱 투명해지고 각각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요구받게 된다.
이를 위해 KBS는 공영방송 본래 기능수행에 주력하는 한편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외부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시청자콜센터’를 두어 매일 시청자들이 제시한 의견을 모아 일보를 발간하고,처리사항을 묶어 사례집으로 발간하는 NHK의 노력이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KBS는 지금 NHK나 BBC처럼 공영방송의 상징으로 우뚝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조직 개편에 이어 KBS가 만든 프로그램은 다르다는 평가를 받으면 절반의 성공이다. 좋은 책을 읽거나 훌륭한 예술작품을 접한 뒤 얻어지는 감흥처럼 향기가 나는 프로그램. 이런 변화가 수반된다면 공영방송을 사랑하는 한사람의 시청자로서 수신료를 더 낼 의향이 있다.
이만제(연구센터 수석팀장·언론학박사)
[국민일보 기고 / 200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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