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만제
소출력 라디오는 시·군·구 행정구역 정도를 방송권역으로 하면서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지역밀착형 라디오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이미 지역공동체 매체로 소출력 FM 라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50년대 잠시 대학 방송에서 운영되다가 폐지된 이후 그 필요성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방송위원회는 우선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시범적으로 방송을 시작하고 그 문제점을 보완하여 본격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991년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한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한 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는 것을 고려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출력 라디오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공동체 발전을 위한 라디오라는 점에서 초기단계부터 그 설립,운영과 내용 모두 주민 자치의 확장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지역내의 공공기관,학교,시민단체 등 원하는 사람은 모두 설립,운영 및 제작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방정부의 홍보매체와도 성격이 다르다. 이 라디오를 통해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보려는 의도가 개입되어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공적 재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쟁력 없는 방송이 되어서도 안된다.
이웃은 물론 지역공동체에 대해 약간의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삶과 가까운 주변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내용들을 담아내야 한다. 이웃들의 생각이나 경험이 풋풋하게 풍겨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린 서로 다른 삶을 공유할 수 있고 지역공동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장될 수 있다. 전국적 관심 밖에 밀려나 있는 삶의 이야기들이 소통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한 것이다.
행정구역 구분이 우리와 유사하고 60년 가까운 지방자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일본에는 160개가 넘는 소출력 라디오가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 자본금이 10억원 미만인 소규모 방송사이다. 민영도,공영도 아닌 제3섹터로서 비영리지만 운영비를 스스로 충당해야 한다. 반 이상은 흑자경영이다. 설립부터 운영까지 지방정부의 도움이 절대적이지만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문제는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동경도내 인구 13만 정도의 상업지구와 베드타운 도시인 무사시노에서 운영되는 소출력 라디오 ‘무사시노 FM’의 정규 직원은 5명이다. 대신에 자원봉사자가 170여명이다. 시민단체들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총무부장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업무를 처리한다. 지역정보 전달,지역문화 발전,살기좋은 거리만들기,지역상업 활성화,재해방송을 주 목표로 하고 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와의 인터뷰,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내용,쇼핑정보,지역현안에 대한 토론 등 기존 방송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지역 이야기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소출력 라디오는 지역민이 직접 운영과 제작에 참여하여 지역민의 삶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소규모 공동체 라디오이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는 채널이다. 사회 전 영역이 급박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의 하나로 소출력 라디오 도입을 준비해야 한다.
이만제(방송진흥원 연구센터 수석팀장·언론학박사)
[국민일보 기고 / 2004. 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