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유균
방송과 통신 융합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얼마 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벌어졌다. 방송위원회가 위성DMB 사업자인 티유미디어에 지상파 방송 재전송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그것이다. 논란의 한 당사자인 티유미디어는 지상파 방송 콘텐츠 없이는 사업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재전송 절대 불허를 외치는 언론노조와 지역방송사들은 지상파 프로그램 때문에 지역방송이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방·통 융합 시대의 초라한 자화상을 유감없이 보여준 이 사건은 콘텐츠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한마디로 새 콘텐츠 없는 뉴미디어 사업 확장은 ‘무늬만 방·통 융합’인 아류 매체사업을 양산할 뿐이고, 경제적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의 호주머니만 터는 결과를 낳는다. 또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현실에서는 DMB나 IPTV와 같은 방·통 융합 산업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퇴색된다.
중요한 것은 현실 진단에 이은 처방이다. 첫 번째 처방은 방송사업자들이 과거처럼 협소한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위원장 출신으로는 최초로 MBC 최고경영자가 된 최문순 사장은 최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MBC 콘텐츠의 해외 수출액을 전체 재정의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의욕적인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아시아 프리미엄을 살린 한류 콘텐츠 시장 개척은 꾸준한 현지화 전략과 해외 뉴미디어 시장 진출로 이어져야 한다.
중국 방송 시장이 한 예다. 연간 평균 3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중국 모바일 콘텐츠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04년 384억5000만위안(46억달러)이며 2006년에는 640억5000만위안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처방은 DMB, IPTV와 같은 방·통 융합 서비스 사업 도입시 ‘콘텐츠 외주제작 의무’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케이블TV 출범 초창기에 중복 과다투자로 겪어야 했던 실패 사례를 교훈 삼아 효율적인 아웃소싱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티유미디어가 자체 인력을 스카우트하고 설비투자에 쏟아 붓는 비용을 외주제작 펀드로 활용하여 ‘신규 뉴미디어 사업자에게는 비용절감을, 자본력이 미약한 독립제작자와 PP들에는 성장동력’을 제공하는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정책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방·통 융합은 디지털 컨버전스에 따른 하나의 대표적 현상이다. 신문, 방송, 영화, 출판, 게임, 애니메이션, IPTV 등 개별 매체를 망라하는 미디어 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방·통 융합의 정책기조는 개별 콘텐츠 간 연관성을 확장하는 기초 위에서 미디어 산업 전체의 시너지 효과(예를 들어 인쇄매체와 영상매체의 동반 성장)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압축적으로 표현하자면 ‘폐쇄적·고립적 매체 정책에서 개방적·연관적 미디어 정책으로’ 방향 전환을 해나가야 한다.
과거 콘텐츠 진흥에 소극적이었던 일본 정부는 한류열풍과 중국·대만의 콘텐츠 진흥정책에 자극받아 2004년 6월 콘텐츠 진흥법을 제정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콘텐츠 진흥사업을 점검·조율하고 있다. 주요 정책추진 사항은 콘텐츠 산업 근대화·합리화, 재원 다양화, 콘텐츠 제작 인센티브 부여, 인재 양성과 포상 강화, 신기술 연구개발 지원, 해외 콘텐츠 비즈니스 지원, 해적판 대책 강화 등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영웅 아킬레스 이야기에서 유래한 아킬레스건의 사전적 의미는 ‘강한 자가 가지고 있는 단 한 군데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미디어 콘텐츠의 절대적인 양 부족과 질적 다양성 결핍이 ‘IT 강국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지 않도록 하루빨리 정책 처방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 방·통 융합의 시대적 요청이라는 점을 되새겨 볼 때다.
유균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yugyun@kbi.re.kr) [전자신문 기고 / 2005.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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