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웅진
방송쪽 일을 하다보니 일선 제작현장에 있는 PD들을 만나볼 기회를 자주 갖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볼 때 가끔씩 무척이나 당혹스러워했던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하나같이 점잖고 매너 좋은 사람들인데 왜 프로그램을 저렇게 만들까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시청률’ 때문이다.
PD들이 느끼는 시청률에 대한 압박은 우리들의 상상을 쉽게 초월해버린다. 매일 아침 성적표처럼 찍혀 나오는 시청률. 전국의 전체 시청자 수를 생각한다면 시청률은 터무니없이 적은 시청자들의 시청 기호를 숫자로 뽑아낸 것뿐이라고 무시하고도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PD들은 시청률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에 피가 마르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시청률이 안나오면 위로 방송사 높은 분들께 욕먹고, 아래로 출연자들에게까지 무시당하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PD들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이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사지(死地)로 내몰리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PD들에게 가해지는 방송사측의 시청률 압박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닌 듯하다. 얼마 전 일본의 한 민영방송 프로듀서가 돈을 써서 시청률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는 충격적 뉴스가 있었다. 니혼TV의 프로듀서가 탐정사무소를 통해 일본비디오리서치의 시청률 조사 표본 가구를 알아내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들을 보는 대가로 5,000∼1만엔씩을 준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를 계기로 일본 방송계 안팎에서는 이 사건을 개인 비리로 덮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고 한다.
니혼TV는 회사 차원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사전에 문제를 알고도 쉬쉬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언론보도 내용이다. 이와 별개로 경영진의 도의적 책임이 거론되고 있다는데 편성국장 출신의 사장이 노골적으로 시청률 경쟁을 독려했고, 프로듀서 연봉에 시청률을 반영하도록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결국 니혼TV가 9년 연속 종일, 골든타임(오후 7∼10시), 프라임타임(오후 7∼11시), 논프라임타임 등 시청률 4관왕을 지켜온 화려한 역사 뒤에는 경영진부터 말단 사원까지 시청률 지상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실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청률 지상주의가 빚어낸 씁쓸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00%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긴 하지만 시청률에 대한 일선 PD들의 강박증이 어느 정도인지 익히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단순히 비난만 할 수 없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필히 무리수를 낳게 마련이다. 일본에서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조작’ 정도에 그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시청률 압박이 미치는 폐해가 그만큼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KBS 오락프로그램 녹화 도중 송편을 먹다 기도(氣道)가 막히는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성우 장정진씨의 불행한 사고는 그동안 시청률 올리기에만 급급해 출연자들의 안전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관행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시청률 상승을 위한 도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출연자는 1회성 소품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출연자들을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이벤트 현장으로 내몰면서도 짐짓 태연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제작진들의 극단적 이기주의에 기인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계기로 일선 제작진과 방송사 경영진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시청률 때문에 외면해온 진짜 시청자의 뜻을 거스른 대가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TV에겐 상업적 논리와 치열한 경쟁구도가 숙명이나 다름없다. 프로그램 생산자는 본능적으로 최다 수용자를 획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부터 체득한다. 이러한 제작관행은 모든 가치보다 시청률을 우선시하는 방송사 내부의 집단의식을 생산하게 되고 이는 결국 시청률 지상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시청률 전쟁의 이전투구 속에서 정작 방송의 주인이어야 할 시청자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고, 시청자 주권이라는 방송사의 구호는 허울에 그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로 평가되는 시청률 지상주의적 제작관행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고질(痼疾)로 자리 잡은 외모지상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끊임없는 재생산과도 깊게 연결되어져 있다. 또한 다수의 이익만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시청률 상승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수의 입장, 소수의 의견은 항상 무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 방송의 무관심이 바로 이러한 시청률 지상주의로부터 파생된 병리현상이라는 것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상업적 스포츠 행사로 이미 전락한 아테네 올림픽은 비싼 돈을 들여가며 방송 3사가 동시에 생중계하지만 시청자 확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장애인 올림픽은 항상 뒷전이었다. 사실 장애인 올림픽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
시청률은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양적 잣대일 뿐이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양과 질 양 측면에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방송 시스템이 공익성을 우선으로 하는 공영방송 체제의 성격을 더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 잣대로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일을 포기해선 안될 것이다.
박웅진(연구정보센터 연구2팀/연구원 wpark@kb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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