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권호영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이하 PP)는 전문채널을 만들어서 플랫폼사업자를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제공하는 사업자들로서, 유료방송의 목적인 다양하고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유료방송의 내용은 PP의 손에 달려있다. 그러나 지금 PP업계는 다양한 제도적인 문제로 인해서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고, 유료방송의 내용은 지상파에서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있다.
PP의 발전이 시청자들의 편익과 직결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PP에게 소홀했던 게 우리 방송정책의 현실인 것이다. 방송위원회는 2004년 3월말에 “PP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지만, 방송계의 역학구도를 감안하면 어려운 정책 결정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방송위원회가 개선하겠다고 제안한 내용은 모두 PP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정책이지만, 이 정책이 보다 더 강화되거나 보완되기를 바라면서, 필자의 바람을 간략히 정리한다.
첫째로, 지나치게 낮은 유료방송의 수신료 수준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종합유선방송사의 월평균 수신료는 6천 원 정도이고, 월 2천 원~4천 원의 수신료를 받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낮은 수신료인 경우에 수신료의 일부를 PP에게 배분해 주기 어렵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가입자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이 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에 견주어보면, 한국의 소득과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유료방송 수신료의 수준은 월 1만 5천 원 ~ 2만 원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수신료 수준이 낮은 이유는 케이블TV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중계유선방송사를 종합유선방송사로 흡수하지 않고, 면허에서 배제시킨 데서 출발된다. 종합유선방송사보다 수신료의 수준이 낮은 중계유선방송의 존재로 인해서 유료방송의 수신료는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유료방송 요금을 정상화하는 방안으로 최저 가격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최저 가격제는 전례도 없고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를 시행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방송위원회는 2003년 12월 말에 수신료 수준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유료방송 이용요금 승인기준 재검토에 관련한 정책공청회를 가진 바 있다.
그러나 이 공청회에서의 안이 이번 PP 활성화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리고 방송위원회는 일부 SO가 승인을 요청한 디지털 서비스 요금에 대한 약관도 6개월 이상 승인을 하지 않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라는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계기로 수신료를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로, 플랫폼 사업자들과 PP사업자간의 힘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플랫폼 사업자의 힘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다. 종합유선방송이나 위성방송에는 진입 규제가 있지만, PP는 진입규제가 없다. 따라서 PP는 지역별로 독점 또는 복점인 종합유선방송사나 독점인 위성방송사에게 채널 송출을 마케팅해야 하는 입장이다. 5대 MPP(3대 지상파방송사 계열과 온미디어 및 CJ 계열)와 의무전송 채널을 제외한 대부분의 PP들은 채널을 런칭하기 위해서 수신료를 받기는커녕 런칭료나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위원회는 이번 정책 방안에서 이러한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방안으로 SO의 가입자 수 공개, SO의 PP 수신료 배분 계획의 이행여부 심사, PP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방송위원회는 유료방송 시장의 공정 경쟁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유료방송 시장이 안고 있는 진입 제한의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 수평적 수직적 결합으로 인한 문제, 킬러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 조달 문제 등을 방송위원회가 면밀히 감시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즉시 시정하여야 한다.
셋째로, 지상파 방송사가 PP로 진출하여 유료방송 시장으로 독점력을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제작한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무기로 유료방송에 진출한 지상파 방송계열 PP들이 모두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상파 방송 3사 계열의 드라마채널들은 인기 있다는 영화채널을 젖히고 모두 시청률 5위 내에 들어있다. 지상파 방송 3사는 드라마 이외에도 스포츠, 게임, 영화 등 인기 장르에 진출하고 있다.
한국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독과점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방송학계의 오래된 염원이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방송산업의 구조 개편을 논의한 보고서나 논문에서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 해소는 언제나 중요한 주제였고, 방송정책을 다룬 글에서도 약방의 감초처럼 늘 등장하는 문구였다. 하지만 결국 방송의 다양성을 제고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시작한 케이블TV나 위성방송으로 까지 지상파 방송사의 독점력이 전이되고 말았다. 많은 학자들이 바라던 염원과는 달리 지상파 방송사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방송정책의 결정과정에 학자들이 상당한 역할을 하였고, 지상파 방송사 독과점 구조의 해소를 염원하던 학자들도 방송정책에 상당한 훈수를 하였을 터인데 말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유료방송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 계기를 마련한 것은 2000년에 제정된 통합방송법 이다. 이 법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종합유선방송을 겸영할 수 없도록 제한하였지만, 위성방송이나 채널사용사업으로의 진출은 허용하였다. 2000년 방송법은 1999년 2월에 제출된 방송개혁위원회 보고서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졌다. 방송개혁위원회는 두 달간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대통령직속 위원회였다.
이 위원회는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위원회와 보고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실행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었고, 실행위원회에는 교수, 관료, 방송사 간부, 노조,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였는데, 총 30명의 실행위원중 현직 지상파 방송사 직원 6명이 참여하여 지상파 방송사의 이해가 많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였다.
결국 방송법을 제정하면서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가 직접 법안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게 한 것이 지상파 방송사가 위성방송이나 채널사용사업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된 배경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렇게 지상파 방송사의 입김이 강하게 된 배경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 지상파 방송사가 일정 정도 기여한 점이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방송위원회는 이번 정책방안에서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상파 방송콘텐츠 수급 불공정거래 개선’, ‘지상파 방송사의 PP시장 추가진입 제한’, ‘지상파 계열 PP에 대한 플랫폼 송출 제한’ 등의 안을 내놓았다. 유료방송 시장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킬러 콘텐츠의 기능을 하는 현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것이 현실인 이상 킬러 콘텐츠의 수급이 내부자 거래의 형태로 지상파 계열 PP에게 우선적으로 배급되는 것을 막는 것을 당연하다.
지상파 방송사의 PP시장 추가진입 제한은 물론이고 기존 진입한 분야 중에서 오락성이 강한 채널을 매각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특히 수신료를 받는 KBS가 드라마와 스포츠 등 오락성이 강한 채널을 보유하고 있고, 공영방송인 MBC는 드라마와 스포츠 외에도 영화채널에 까지 진출하였다. 두 공영방송이 공익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이윤 추구에 매진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영국에서는 BBC가 뉴스채널에 진입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사례도 있었고, 독일에서는 공영방송이 유아전문 채널에 진입하는 경우를 두고 열띤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외국의 공영방송사가 드라마, 스포츠, 영화채널을 제공하는 사례가 알려진 바도 없다. 장기적으로 지상파 방송사가 아닌 사업자들이 상업적으로 제공하기 어려운 채널에 한해서 지상파 방송사의 PP진입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방송위원회가 제안한 정책 중에서 지상파 계열 PP에 대한 플랫폼의 송출을 제한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방송위원회가 지상파 방송사 계열의 PP에 대한 제한을 추진하려면 방송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다음번 방송법 개정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PP 진입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추가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방송법 개정과 관련하여 여러 이슈를 한꺼번에 개선하려고 하기 보다는 2004년 3월 2일의 개정에서와 같이 한 두개의 이슈만을 상정해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권호영(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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