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최용준
방송법 개정안이 기나긴 진통 끝에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 상정이라는 특단의 방식을 통해 통과되어 지난 3월 22일 공포됐다. 이번 개정 방송법은 법안 내용에 대한 관계부처간의 협의 과정에서부터 난항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방송 보도의 편파성을 주장하며 시청료 분리 징수안을 정치적 압력으로 이용하고자 한 야당의 시도, 이로 인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파행 운영을 비롯하여 마지막 단계인 국회 본회의 상정 및 통과까지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번 개정 방송법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나라 차세대 성장 동력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이동다채널방송서비스(지상파 및 위성 DMB) 도입에 대한 근거 조항 및 데이터방송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서비스와 데이터방송은 대표적인 방송ㆍ통신 융합서비스로서 그동안 방송 및 통신 산업계의 지대한 관심을 받아왔다. 이들 서비스는 도입 논의가 시작된 이래 관련 산업계뿐만 아니라 관련 부처간에도 첨예한 이해갈등을 불러 일으켜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ㆍ통신융합서비스에 대한 관련 부처간의 합의를 이끌어내었다는 점 그리고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방송ㆍ통신융합 현상으로 지속적으로 출현할 경계 영역적 서비스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방송법 개정안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개정 방송법의 주요 내용
지난 3월 22일 공포된 개정 방송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그동안 매체를 중심으로 구분하던 방송을 콘텐츠 유형을 중심으로 재분류하여 텔레비전방송, 라디오방송, 데이터방송 그리고 이동다채널방송으로 나눔으로써 디지털화에 따른 전송망 융합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고자 하였다.
데이터방송과 이동다채널방송(DMB)의 개념 규정과 함께 양 방송사업에 대한 소유 및 겸영규제 조항, 그리고 채널 구성 및 운용 관련 규정도 정비하였다. 우선 데이터방송을 통한 쇼핑채널의 운용은 기존의 종합편성ㆍ보도ㆍ홈쇼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방송위원회의 승인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위성DMB의 경우 위성방송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위성방송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된 채널수를 운용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공공채널 및 종교채널 구성의무와 KBS, EBS의 동시 재전송 의무를 면제 하였다.
그동안 케이블TV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던 대기업 및 외국기업의 종합유선방송사업에 대한 소유규제 완화도 단행 되었다. 대기업의 소유규제를 33%에서 100%로 전면 폐지했으며, 외국기업의 소유규제도 49%로 완화 하였다. 그동안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지상파방송의 보완매체로 전락한 종합유선방송에 대기업과 외국기업의 풍부한 자본 참여를 유도하여 케이블TV의 MSO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과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자본 확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다.
지상파방송의 국산 애니메이션 방영 쿼터제도 법제화 되었다. 이에 따라 지상파방송사들은 전체 방송프로그램 시간 중 일정 비율을 국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편성해야 한다. 이외에도 지역사업권료 및 방송발전기금의 효율적 징수를 위한 체납 금액에 대한 가산금제도, 방송사업자의 외국자본 출자 시 소유 초과분에 대한 시정명령권, 방송사업자의 심의미필 방송광고에 대한 방송제한 규정 및 제재 조항, 과태료 인상 및 방송위원회 자료 요구권의 법제화 조항 등 방송위원회 실무행정권을 강화하는 조항들을 담고 있다.
개정 방송법의 파급효과 및 전망
개정 방송법의 시행과 함께 가장 부각되고 있는 방송 산업계의 초점은 올 하반기에 도입이 예정된 DMB 서비스의 파급효과이다. 정부는 DMB서비스를 차세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지정하고, 세계 최초 도입을 서둘러 기술선점을 통한 시장석권 및 제2의 CDMA신화를 만들고자 하고 있다. 이미 여러 번의 세미나와 연구보고서를 통해 DMB서비스가 가져다줄 장밋빛 전망들이 발표됐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보고서를 통해 지상파DMB의 경우 2009년까지 약 3조 5천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1만 7천여 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그리고 위성DMB의 경우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약 8조 8천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2만 2천 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언론학회도 세미나를 통해 위성DMB 서비스가 향후 10년간 9조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8만 4000명의 고용창출을 이루어 낼 것으로 전망했다.
DMB서비스관련 장비업계 및 단말기산업에도 단비를 내려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미 휴대폰용 위성DMB 단말기 개발이 이루어져 서비스 상용화와 함께 올해 만에도 약 5,000억 원의 내수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그동안 휴대폰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돼 있던 이동형 단말기(PDA)시장도 점차 활성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음영지역을 커버하기 위해 사용되는 중계기인 Gap Filler 시장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케이블TV의 대기업 소유규제 폐지 및 외국인 소유규제 완화는 그동안 침체되었던 종합유선방송산업의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케이블TV산업은 도입된 지 9년째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재원구조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방송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중계유선과의 가입자 유치 과당경쟁으로 현재 종합유선방송사들의 가입자당 평균수신료는 약 5,3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케이블TV 산업이 발달한 미국의 약 48,000원($40.26)에 비해 9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방송위원회는 양측의 소모적인 출혈경쟁을 줄이기 위해 중계유선방송사의 종합유선방송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800여개가 넘던 중계유선방송사는 2003년 현재 408개로 줄었으며 종합유선방송사는 119개로 늘어났다. 또한 종합유선방송사의 MSO화를 통한 광권역화도 추진해 현재 119개의 종합유선방송사 중 77개가 12개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산하에 편입돼 있다.
이번 케이블TV 소유규제 완화 정책은 이미 케이블TV산업에 진출해 규정된 지분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족쇄를 풀어주어 케이블TV산업의 MSO화를 더욱 촉진시키고 광권역화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대기업 산하 MSO들을 중심으로 케이블TV의 디지털화를 위한 지역 DMC사업이 탄력을 받아 진행되고 있어 케이블TV산업의 구조변화는 급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소수의 대규모 지역기반 케이블TV사업자와 전국네트워크의 위성방송사업자간 경쟁체제를 확립하여 그동안 문제되어 왔던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송신과 같은 다채널 유료방송시장에 있어서의 제반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상파방송사의 국산애니메이션 방영 쿼터제 도입으로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의 활성화가 예상된다. 지상파의 애니메이션 방영시간은 주 시청층인 어린이들이 애니메이션 대신 인터넷과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점차 줄어들고 있다. 현재 지상파의 애니메이션 편성량은 하루 평균 1시간에 못 미치는 주당 5.2시간에 불과하며, 이중 45%인 약 2시간 20분정도를 국산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위해 편성하고 있다.
이는 이전 방송법에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의 총량에 대한 규제 없이 전체 애니메이션 방송시간의 45%를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채우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 1월부터 일본 대중문화가 전면 개방되어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 왕국인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지속적으로 수입되면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정 방송법에서 전체 방송시간의 일정 비율을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편성하도록 규정한 것은 국산 애니메이션 업계를 지킬 수 있는 타당한 조치로 판단된다. 이미 시행령 개정에 대한 의견으로 문화관광부에서는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의 쿼터를 전체방송시간의 1%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만약 의무 편성비율을 1%로 할 경우 지난해 주당 평균 39분간 국산 애니메이션을 방영한 지상파TV 3사의 경우 방영시간을 70분으로 늘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개정 방송법의 과제와 문제점
개정 방송법은 차세대 성장동력인 이동멀티미디어방송 및 데이터방송의 도입 근거를 마련하고 뉴미디어산업 구조를 개선해 케이블TV의 디지털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이에 따른 몇 가지 과제 및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위성DMB의 경우 거대 통신사업자가 주파수 확보에서부터 제반 사업의 준비까지 마친 상태에서 사업자 승인을 요구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특혜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시행령 개정작업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불식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새로이 도입되는 뉴미디어서비스인 위성 및 지상파DMB가 지상파방송프로그램의 또 다른 창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채널구성 요건을 강화하여 디지털방송시대의 총아인 다양한 콘텐츠의 제작 및 유통을 유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케이블TV산업에 있어서 대규모 자본의 유입을 통한 MSO화 및 광권역화는 가입자를 바탕으로 하는 유료방송 산업의 필연적인 결과다. 이는 이미 방송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문제는 뉴미디어방송의 소수 과점화가 낳을 수 있는 폐단이다. 플랫폼사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콘텐츠제공사업자는 불평등 계약관행을 통해 낮은 수신료 배분으로 양질의 프로그램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케이블TV에 대한 시청자들의 외면을 불러와 가입자를 기반으로 하는 유료방송산업의 구조 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케이블TV를 지상파방송의 보완매체로 전락시켜왔다. 따라서 소수 과점화 될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제공사업자간의 불평등 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법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과 토대를 조성하고 콘텐츠제공사업자의 MPP화를 촉진하여 플랫폼 사업자와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정 방송법은 가속화 되고 있는 방송ㆍ통신융합 현상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매우 한시적이고 과도기적인 법에 지나지 않다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여전히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는 방송ㆍ통신 경계영역적 서비스에 대한 근본적인 규제 체계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방송ㆍ통신 통합법의 제정을 늦추며 융합의 심화 정도를 지켜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통합법에 대한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하더라도 절대 빠르지 않다.
출처 : KBI NEWS 2004. 4 이슈 분석 최용준(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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