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KBI칼럼] 참여의 논리, 개혁의 딜레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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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방송 | 등록일 | 03.08.08 | ||||
출처 |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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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이기현
'참여정부'가 출범한지 6개월이 안된 시점에서 현정권의 실정이나 치적을 논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건 현정권이 표방하고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의 핵심, 즉 '개혁'에 대해 많은 국민의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갈등의 극복과 세대교체를 통한 정치개혁과 정당개혁, 소위 보수언론과의 '긴장관계'로 답보되고 있는 언론개혁, 그 외에도 노사갈등의 합리적 조율이나 재벌개혁의 과제들이 모두 이 개혁이라는 정치적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세부항목들이다. 이러한 개혁 프로그램이 단기간에 성취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난 6개월 간의 정세의 흐름을 돌이켜 보면 개혁은 이미 대내외의 현실적 요인들에 의해 말의 껍질로만 남은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긴다.
정치사회학의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모든 정권은 그 이념적 지향성을 불문하고 이미 획득된 정치 권력의 정당화를 위해 무수히 많은 담론을 만들어내고 유통시키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안정적인 국정운영이나 국민통합이라는 현실적인 정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권 창출의 당위성과 새로운 정치적 비전과 목표, 그 수단을 정당화하는 담론의 생산과 유포가 필수적이 된다. 바로 현대적 의미의 프로파겐더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담론의 확산과 유통에는 TV를 비롯한 언론매체가 일종의 필터와 통로로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적어도 최근의 상황을 본다면, 참여정부는 국민경선과 대선을 통해 합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권위라는 차원에서는 매우 허약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권위주의를 타파한 민주적 정권이기 때문이라 자연스러운 것이라 변명하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민주적인 정권이 어떤 권위주의적 정권보다도 더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했던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적어도 몇 가지의 현실적인 진단이 가능할 것이다. 우선, '말의 정치'라는 차원에서, 정부 부처나 정치지도자들이 공식/비공식적으로 행한 언행에 있어서 실언이나 식언, 번복은 정치적 신뢰성에 타격을 주며 때론 치명적일 수 있다. 국민들이 현실적으로 정부나 지도자를 신뢰하게 되는 것은 그의 말에 대한 신뢰인 것이다. 민주적 정치권력 역시 바로 이 말(상징)에 의한 정당성의 관리와 유지가 핵심 사항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현정권은 이 '말의 정치'에 있어서 커다란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령, 메이저 언론사들과의 첨예한 대립도 민주적인 '말의 정치'와는 매우 거리가 먼 '말싸움'의 양상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둘째, 참여의 논리는 신선하다기보다는 당위에 가까운 시대적인 요청 사항이다. 오랜 세월 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거나, 기껏해야 국민을 정치적 볼모나 자기정당화의 도구쯤으로 생각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이제라도 국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와 시민 운동이 활성화되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정부가 대선 당시부터 표방해 온 참여의 정치는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와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의 정신을 담고 있다. 행정부를 포함한 모든 정부 조직을 비롯하여 사회 전반의 의사결정방식에 있어서 기존의 관료적 권위주의를 탈피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그러나 이 '참여의 정신'을 구현하는 일 역시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정신은 고귀하지만, 이것을 제도화하고 하나의 정치문화로 정착시키는 데는 오랜 시행착오와 관용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서구 민주주의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참여란 그 자체가 형평성과 균형감각을 지니지 못할 때 또 다른 당파성과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명분과 이념 그리고 그 방법과 길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현정권이 임기 내내 명심해야 할 것은 - 물론 불합리한 대통령 선거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 유효투표의 과반수도 확보하지 못한 채, 더구나 제 1 야당 후보와는 박빙의 득표율차로 성립된 정권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386세대가 정치무대의 실세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 것에 대한 기대와 우려 역시 정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입장에서 되돌아보면, 386세대는 도덕적으로 풍요한 세대인지는 모르나, 합의와 조정의 문화에서는 매우 빈곤한 세대이다. 한때 군사독재와 파쇼정권의 타도를 외치면서 그 자신 역시 이념적 독단과 전체주의적 문화에 경도되었던 쓰라린 과거를 우리의 386세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위 386세대는 저항과 비판의 정치에 있어서는 전문가일지 모르지만, 의견의 다양성을 조율하고 합리적 결정을 도출하는 정치 시스템의 운영자로서는 초보자일 수밖에 없다. 이른바 민주화라는 기치 아래 정치 투쟁과 권력의 획득이 실질적 목표였던 세대에게 조율과 포용과 관용은 매우 생경한 과제일지도 모른다.
방송을 포함한 언론의 역할은 정치적 어젠더의 관리와 감시에 있다.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정치적 어젠더를 탐구하며 필요한 경우 이를 공론화하는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말'(정치적 담론)과 '말의 논리'(참여와 개혁)와 그리고 '말의 주체'(개혁주체와 386세대)는 앞으로 현정권의 임기동안 지속적으로 언론의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감시와 견제는, 신뢰할 수 있는 '말의 주체'에 의해 그들의 '말'과 '말의 논리'가 얼마나 정당한 방법으로 실현되는지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말이 실천으로 옮겨지는 과정이 제도화되고, 한 정권의 차원을 넘어서서 지속되는 정치 시스템으로 정착되는지의 여부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한국방송 KBS가 방송개혁이라는 취지로 신설한 프로그램 <시민 프로젝트 나와 주세요>는 이 개혁의 시대가 안고 있는 희망과 우려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과 제보를 받아 실생활에서 겪는 부조리와 문제점들의 해결을 위해 정부 부처나 사건의 책임자에게 방송출연을 요청하여 해명을 듣고 문제 해결을 모색한다는 것이 프로그램의 기본 컨셉이다. 매우 신선한 취지와 기획의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본의는 아니겠지만, 참여의 논리가 훼손되거나 왜곡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무소불위의 무기가 아니라 공론을 형성하고 조율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어야 하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정부 당국자나 사건의 책임자를 카메라 앞에 불러내 해명을 요청하는 일은 시민 참여의 논리를 벗어난 방송의 과욕과 남용에 가깝다. 방송의 역할은 중요한 현안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제도적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감시하는 것이지, 특정인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해명하느라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개인에 대한 책임 추궁이라면 다른 적절한 제도적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참여의 논리가 경박할 정도로 무성한 시대에 우리에게 더욱더 요구되는 것은 역시 절제와 균형감각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참여는 개혁을 위한 왕도가 아니며, 오히려 이 참여의 정신을 어떻게 성숙시키고 제도화할 것인가가 개혁의 중요한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기현(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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