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KBI칼럼] 정연주 사장님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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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방송 | 등록일 | 03.06.30 | ||||
출처 |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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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강만석
정연주 사장님!
뒤늦게나마 방송사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영방송 KBS호의 선장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요즘 하루하루 어깨가 무겁고 정신적으로도 힘드시지요. 길고 험한 항해를 막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몇몇 언론에 오르내리는 정사장님 관련 기사로 정신이 혼탁해지기 쉬울 테지만, 그동안 사장님이 역사를 통해 보여주신 성실하고 굳건한 성품을 에너지 삼아 지금의 현실을 잘 헤쳐 나가시길 바랍니다.
제가 한 시민으로서 정사장님에 대해 갖고 있는 개인적 존경과 신뢰는 수 십 년간 추상같은 지성인의 모습을 몸소 실천해 오신 리영희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작년 말에 사장님이 내신 <기자인 것이 부끄럽다>라는 책의 서평에서 리영희 선생님은 "길이 멀어야 말(馬)의 힘을 알 수 있듯이, 사람의 마음도 긴 시간을 두고봐야 안다"는 명심보감의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당신은 그 시간을 '최소한' 30년으로 잡고 있으며, 이러한 기준에서 "이 사회 지식인으로서의 올곧은 심지와 언론인적 소명의식의 투철함에서 그를 앞설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고 쓰셨습니다. 물론 여기서 '그'는 인간 정연주이고, 저도 이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공개적인 글이니 만큼 사장님에 대한 저의 사사로운 마음은 이 정도로 줄이고, 정사장님이 한국방송을 이끌어 가시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까 해서 몇 가지 사항을 제언하고자 합니다. 좋은 경험이랄까 아니면 인연이랄까 저는 정사장님이 취임하시기 전인 재작년과 작년에 걸쳐 KBS의 시청자평가원으로 1년 간 참여하였으며, 그 전에는 디지털 방송 전환기에 세계적인 공영방송사들이 나아가야 할 발전방향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생각한 것들이고, 이것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금방이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일부터 오랜 시간과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만 가능한 일까지 다양한 사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BBC의 의뢰를 받아 '디지털 시대, 공영방송의 존재방식과 역할'을 중심으로 세계 공영방송사들의 발전 패턴을 4개 대륙에 걸쳐 조사 분석한 맥킨지앤컴퍼니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많은 매체와 채널이 가능해진 디지털 리얼리티에서 공영방송이 또 하나의 방송사로서만 기능한다면 궁극적으로 그 존재 의미가 퇴색될 것이며, 혁명에 가까운 개혁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디지털 방송'과 '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머리부터 거창하고 무거운 사안을 언급하는 까닭은 공영방송 KBS 역시 이 역사적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정사장님이 몸소 실천하실 과제가 있다고 봅니다. 즉 한국방송의 최고경영자로서 21세기 디지털 방송 비전을 구체적으로 대외에 공표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과 신뢰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KBS는 1999년 말에 'KBS 뉴 밀레니엄 플랜'을 작성한 바 있으나, 구체성과 공개성이 결여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내부 결재용으로 끝나버린 사례가 있습니다.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인정받고 있는 BBC나 NHK의 경우 최고 경영자인 사장이 언론을 통해 직접 21세기 디지털 비전의 세부적인 지표와 목표를 객관적 통계수치와 투명한 정책(수신료 인상, 경영효율화 및 구조조정, 디지털 편성 정책, 온라인 서비스, 시청자 주권 실현 등)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가 글로 말하듯이 방송은 궁극적으로 프로그램으로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최근 단행한 프로그램 개편은 정사장님의 스타일을 볼 수 있는 한 단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방송에 필요한 것은 프로그램 개혁만큼이나 중요한 경영개혁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 제시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였는지, 시청자가 낸 수신료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추상적인 구호 수준에서가 아니라 명백한 수치로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KBS는 경영의 투명성과 공정거래 준수 여부를 보다 공개적으로 검증 받아야 할 것이며, 외부 감사는 물론 온라인 웹사이트를 통한 정보 공개가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사장님! BBC 웹사이트와 KBS 웹사이트를 한번 비교해서 살펴보십시오. 예를 들어 BBC 웹사이트에는 그렉 다이크 사장을 포함한 모든 임원들과 위원들의 급여, 보너스, 수당 등이 공개되어 있을 정도로 투명성·공개성이 높으며, 세계의 모든 시청자들이 인터넷에 들어가기만 하면 BBC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KBS의 홈페이지도 과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이 개선된 점이 있으나, 아직 시청자들에게 KBS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보다는 자사홍보를 위한 사이트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더 큽니다.
재화의 생산이 소비에서 완성되듯이 프로그램 제작은 시청자들에게 도달함으로써 완성된다고 봅니다. 시청자 주권이 강조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시청자 주권과 관련하여 KBS가 당장 실천해야 할 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시청자평가프로그램이고, 둘째는 시청자위원의 선임에 관한 것입니다. 시청자평가프로그램에 관련해서는 최근 상업방송인 SBS가 오히려 더 먼저 자기변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즉 프로그램 제작을 외부 프로덕션에 맡기고 시청자단체들의 참여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쪽으로 변화를 주었습니다. 통합방송법이 제정된 지난 3년여 동안 줄기차게 지적된 문제들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KBS 역시 정사장님의 취임 이후 'TV는 내 친구'가 'TV비평 시청자 데스크'라는 제목으로 바뀌었고, 진행 포맷도 크게 손질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여기에 한가지 주문 사항을 덧붙인다면 '옴부즈맨 프로그램의 PD는 한직'이라는 편견을 벗게 해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사내외에서 가장 능력을 인정받고 타인의 존경 대상이 되고 있는 PD여야만이 옴부즈맨 프로그램의 PD가 될 수 있고, 실제로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선례를 정사장님 재임 기간 중에 꼭 실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종합편성을 하는 방송사는 자체적으로 시청자평가프로그램을 제작편성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KBS는 서울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아 틀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방송법 위반이자 지역 시청자들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결과를 낳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제작에 필요한 예산, 인력 문제 등등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아무튼 현실에 맞게 문제를 풀어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시청자위원 선임과 관련해서는 좀 거북한 구석이 있지만, 그냥 직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청자위원 제도를 완충지대로 활용하려 하지 마십시요. 방송법에 명기되어 있는 시청자위원의 권한은 막강합니다. 그러나 시청자위원을 해당 방송사 사장이 선임하다보니 서로서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시청자위원 제도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습니다. 시청자위원의 선임은 나이순이 아니라, 연령과 직업과 지역을 고루 대표할 수 있는 구성이 되어야 하며, KBS 출신의 위원이 차지하는 비중도 엄격히 제한되어야 합니다. 사장님께 다시 한번 청컨대 시청자위원 제도를 그 뜻에 맞게 제대로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은 수신료 인상에 관한 것입니다. 수신료 인상 문제는 더 이상 "수신료 인상에 앞서 KBS의 경영혁신이나 공익성 강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선차적인 해결방식을 택할 수 없는 긴급한 사안입니다. 예를 들어 2000년 2월 타결된 BBC의 수신료 인상 협정의 배경에는 디지털 텔레비전이 본격화되는 향후 2년 간의 중요한 시기에 추가적인 재원지원을 하지 않을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수신료 인상을 위해서는 KBS 외부 인사들이 주축이 된 '수신료타당성조사위원회'를 즉각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사장님이 취임사에서 직시하고 계신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만큼 공영방송 KBS와 이를 이끌어 가시는 정사장님의 어깨가 무거우시리라 생각합니다. KBS의 내부 개혁이 전체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라 희망하면서 굳은 심지로 큰 물길을 여는 역할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요!
강만석(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센터 수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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