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KBI칼럼] 방송이 만든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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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방송 | 등록일 | 03.04.18 | ||||
출처 |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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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윤호진
노무현 대통령이 KBS 창사 30주년 리셉션에서 “방송이 없었으면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도 해봤다”라고 말한 것을 놓고 구구한 억측과 오해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신문들이 그 다음날 이 발언을 기사제목으로 뽑고 사설에서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대통령의 이 발언은 전후 맥락과는 무관하게 각자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날 노 대통령이 축사를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공영방송의 독립성 확보 문제였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앞으로 방송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방송 스스로도 독립성을 지키고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선, 중앙, 동아 등 유력 신문들은 실제로 이러한 발언내용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했으면서도 정작 기사제목으로는 약속이나 한 듯이 문제의 발언을 대서특필했다.
대통령 발언에 전후 맥락 무시한 자의적 해석 난무
특히 조선일보는 ‘방송 없었으면 대통령 됐겠는가’라는 사설을 통해 이는 대선기간 중 도움을 받은 방송에 대한 감사표시이며, 바꾸어 말하면 선거과정에서 방송이 특정후보를 지원했다는 것이고 TV가 정권을 창출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것이야말로 권언유착의 산 증거이며 시청자를 우롱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KBS 노조는 ‘조선일보여, 더 이상 언론이기를 포기하라’라는 반박성명서를 내고, 조선일보 사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전후하여 방송과 신문의 논조를 비교분석한 바 있는 필자에게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논란은 한마디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지난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편파적으로 지지한 매체는 방송이었나, 신문이었나? 일선기자 400명에게 물어본 결과, 10명 중 8명 이상이 일부 언론사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보도를 했다고 대답했고, 구체적으로 조선일보와 이른바 ‘조중동’이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하게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이들 신문이 노무현 후보에 대해 불리하게 보도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기자들이 동의했다. 대선을 전후하여 발표된 각종 모니터보고서에도 조선-중앙-동아일보와 상업방송인 SBS의 편파적 보도태도를 지적하는 내용이 태반이었다.
정작 방송의 경우, 지난 대선기간 동안의 뉴스보도에서 드러난 결정적인 문제점은 기계적, 양적 공정성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발표 저널리즘에 매몰되어, 정치인을 비롯한 주요 정보원들에게 역이용당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따라서 학계 전문가들은 주요 쟁점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질적 공정성과 심층성 차원으로 방송의 선거보도가 전환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력 신문들의 자가당착적 책임전가
자, 우리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지난 대선에서 만에 하나 방송이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한 보도를 했다면, 그래서 정말로 방송의 편파적 보도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다면,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많은 기자들이 지켜보는 공개석상에서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겠는가? 필자의 머리로는 대통령의 이 발언을 민주당 경선과정부터 대선 막바지까지 유력 신문들에게 당한 고초를 회고하면서 그나마 방송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발언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니까 천만다행이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이 발언을 권언유착의 생생한 증거라고 강변하는 일부 신문들과 이에 편승한 정치인들에게서 자가당착적 책임전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들의 뜨거웠던 유착이 행여 세간의 비판에 직면할까봐, 상대방의 발언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고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지난 선거에서의 편파적 보도에 대해 정중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사과는 고사하고, 자신들의 편파성에 비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도 않을 방송보도를 놓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근거로 권언유착 운운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윤호진(영상산업연구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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