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레저의 문화, 행복의 사회학
|손 대 현 (한양대 관광학부 명예교수, 국제슬로시티연맹 부회장)|
먼저 우리가 잘 쓰고 있는 여가(餘暇)라는 말부터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레저(leisure)의 어휘에 대해 옥스포드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단순히 노는 시간,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이라 하고 있다. 이 레저를 일과 생산을 위한 남는 시간, 망중한의 여가(spare time)로 번역해 쓴 것은 일본 大正 13년(1924) 때 이다. 우리는 이 오역된 말을 그대로 수입하여 지금껏 틀리게 쓰고 있다. 분명 보람된 일을 위한 자유시간이면 이건 여가라기보다 진짜 우리 삶의 본가(本暇)이며 여유(餘裕)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구미인들에게 일하는 목적을 물으면 행복한 레저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1일 3분법에서, 즉 24시간 중 8시간은 노동시간, 8시간은 수면시간 등 생활에 필요한 시간이라면 나머지 8시간은 바로 레저시간이다. 이 시간이야말로 풍요로운 여유의 시간이요, 사람의 시간이다. 그 24시간 중 8시간은 잠, 그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 데 쓰면 그건 동물의 시간만 있고 사람의 시간은 증발한 것이다.
대체로 레저 생활은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상적 레저시간으로 TV, 영화, 연주, 음악 감상, 게임, 놀이, 스포츠, 독서, 잡담, 대화 등이 있을 수 있고, 주말 레저시간으로 등산, 여행, 낚시, 캠핑, 각종 클럽활동모임 등이 있으며 휴가시간으로 연 1회 또는 2회 이상 휴가, 1~2주 또는 4주 이상의 바캉스 등이 있다. 이 같은 유형의 레저생활은 이미 의식주와 같이 사람에게 감정과 정서의 밥처럼 필요불가결한 인간본능이요, 사회 본능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레저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며 장차 우리 삶 속에서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레저는 인류 구원의 꿈이며 사람에게 결코 물리지 않는 큰 욕망으로 발전할 것이므로 레저 라이프스타일 문화는 전 지구적인 보편 추세로써 레저의 세계철학으로 대두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레저 라이프스타일 문화는 전 지구적인 보편 추세의 확대와 레저의 반사회적, 반레저문화 현상에 대한 진정한 레저문화와 레저의식의 정립이 필요하다. 레저는 세계문화를 생산한 기본적 원료라는 관점에서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문명은 레저의 옥토로부터 수확된 재산’이라 했으며, 토인비도 ‘레저의 창조적 이용은 문명의 주 원천’이라 했다. 현대는 행복, 품질, 문화, 생명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발전 패러다임을 가지는데 바로 레저는 현대문화의 창조와 유지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레저라는 미덕의 함양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레저의 근원적인 목적은 인간이 되기 위한 하나의 중심적 요소로서 이해된다. 참레저의 상태인 진한(眞閑)의 경지에서 사람다움을 기르는 여유의 유머가 나오며, 타인과의 관계를 개발하고 유지하게 하며 점점 황폐화되는 정신적 풍토를 기름지게 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성숙시킨다. 고대 그리스는 고상한 생각과 고상한 행동이 함께 있는 상태를 영혼의 미덕, 즉 아레테(ârétè)라 했다. 그리스의 교육개념은 자유와 연결되고 그들의 자유개념은 레저와 맞물려 있다. 그리스어의 레저인 scholē는 영어의 school을 뜻하여 교육, 고요함, 평화 등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스어에 교육과 레저가 결합된 ‘아레테’가 그리스인의 생활양식, 문화의 기초가 되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레저시간은 오락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며 먹고, 마시고, 쉽게만 살려고 하는 레저관이 다분하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식으로 과소비와 낭비를 하거나, 휴가는 무조건 꼭 어디를 가야하고, 또 무조건 밖으로 나가되산, 바다, 명소와 같은 전통적인 장소에 몰리는 인파며 여기에다 대중교통의 이용보다 자가용을 끌고 가는 차파행렬 등의 부조리는 레저가 아니라 탈진이며, 휴식이 아니라 노동의 연장이다. 무릇 레저 활동이 사람을 무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활력을 주는 원동력, 자아발견과 자기실현을 위한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거지와 도심을 전전긍긍하는 ‘현대적 유목민’에 대한 프랑스식 모토는 “자동차-지하철-일-술집-잠자리”로 표현되고 있다. 사람지향형이어야 할 도시가 ‘차량지향형 도시’가 되면서, 사람과 자동차, 산업의 과밀은 ‘레저생태학’(Leisure Ecology)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으며, 도시 면적의 1/2-1/3이 도로나 주차장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여기서(here) 잃은 것을 거기서(there) 찾으려고 도시를 떠나는 탈도시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시인들은 일에서 얻지 못하는 정서적 욕구가 레저란 이름의 소비, 식욕과 성욕의 원색적인 충동으로 소진되든지, 과시적이고 표피적이고 반사회적 표현방식으로 분출되는 사례가 많다. 그들은 대체로 일에 포로가 되고 컴퓨터시대에 시간기근이라는 시간의 수인(囚人)이 되어 바쁘게 뛴 결과 삶의 양은 얻었지만 ‘삶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적 여유에서는 다소 해방되었지만 ‘정신적 여유’의 빈곤이란 새로운 정신적 보릿고개로 고통 받고 있으므로 진정한 레저문화와 레저의식을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으로부터 온 레저붐은 고도 산업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레저가 박탈되는 묘한 아이러니에 빠진 셈이다.
좋은 취미는 행복이다. 취미는 그 사람의 사상과 교양과 성품의 표현이기도 하다. 레저와 같은 일련의 활동을 통한 21세기는 개인의 행복이 강조되는 제2의 문예부흥의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왜냐하면 레저는 삶의 질서, 생활 균형에서 본질적 부분으로 삶의 질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전설적인 CEO 허브켈러허는 직원을 춤추게 하려면 그들을 행복하게 하라는 모토로 2001년 창사 이후 동종업계에서 유일하게 단 한 사람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업체 SAS 통계프로그램패키지는 12년 연속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으로 꼽힌 회사로 이 회사의 CEO 짐 굿나잇은 행복한 소가 더 많은 우유를 만든다며 “소프트웨어 회사의 자산은 사람이다. 내 자산의 95퍼센트가 매일 저녁 정문을 빠져나가 집으로 간다. 이 사람들이 매일 아침 다시 돌아오고 싶어하도록 업무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직원, 즉 창조적 자본을 최적으로 활용할 때 기업은 융성한다는 것이다. 경영자와 더불어 자기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회사에 헌신하는 직원, 하루의 3분의 2가량을 직장에 투자하는 그들의 행복을 먼저 챙겨주어야 하며 경영의 목적은 직원을 만족시키는 행복사회학의 실현에 두었다.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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