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예술에서 미디어까지 창조기술의 진화
|이 동 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예술과 기술의 만남-새로운 현상들
새로운 세기에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1960년대 이후 현대 미술에서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던 미디어 아트가 주도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공연예술 분야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현대무용이나 실험적인 음악극은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서 연기자의 몸과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인터넷이나 위성을 연결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연주되고 있는 공연을 하나의 작품으로 통합하는 네트워크 퍼포먼스도 증가하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전통예술 공연 양식에서 미디어아트와 첨단 기술과 연계된 작품들이 2008년부터 꾸준하게 무대에 소개되었다. 대표적으로 김형수 교수가 연출한 2007년 예약당에서 <거문고 명인 고 한갑득 20주기 추모공연>, <감고소리 하날게 바치올제>에서 연주된 거문고 산조합주와 김효진의 춤의 상호작용적 퍼포먼스, 2009년 12월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의 빛 축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태평무-미디어아트 퍼포먼스> 등이 대표적이다.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U-AT 랩 소속 악가무 랩에서 제작했던 한예종 전통예술원과 스탠포드 대학의 랩탑 오케스트라와의 실시간 네트워크 퍼포먼스 공연 <천지인>은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2010년에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과 3차원 홀로그램 기술 장치가 결합된 <디지로그 사물놀이-죽은 나무 꽃피우기> 공연도 대표적인 예술-기술 융합 공연 사례이다.
앞서 사례로 제시한 전통예술 분야의 공연만이라 서커스와 연극을 융합한 넌버벌 퍼포먼스나, 화려한 무대전환이 필요한 뮤지컬 공연에서도 첨단 무대기술 장치를 활용하여 보는 재미를 더하여 준다. 공연예술 분야에서의 이러한 융합 사례들은 근본적으로 예술의 창작 패러다임의 변화와 그것의 배경이 되는 디지털 문화의 혁신에 기인한다. 영화, 대중음악, 게임과 같은 문화콘텐츠 분야에서도 예술과 기술의 융합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영화 <아바타>에서 보여준 새로운 촬영기법과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 정도로 정교한 영상미학을 보여주었다.7) <와우WOW>, <블래이드 앤 소울>과 같은 ‘다중접속롤플레잉게임’(MMORPG)은 게임 그래픽 수준이 미디어아트의 경지를 구현할 정도로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그래픽 수준이 높은 최근의 온라인 게임은 미디어아트 텍스트로 간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서사성과 시각성을 재현한다. 대중음악 콘서트의 경우에도 홀로그램, 입체조명, 다중적인 무대전환 장치들을 사용해서 첨단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예술생산과 디지털 혁명
근대시대에 예술은 소리, 이미지, 텍스트라는 구체적인 재현의 형태로 분리되어 독립적인 장르로 발전했다면, 탈근대적인 예술은 근대적인 예술장르의 개념이 해체되어 서로 다른 예술 형식들이 융합하고, 테크놀로지와 접목하여 근대적 재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러한 탈근대적 예술의 패러다임을 설명해주는 토픽으로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예술의 종언”8)을,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는 “열린 예술작품의 시대”9)를 언급했다.
예술 장르 사이의 융합 현상은 19세기에 형성된 분과예술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각각의 영역이 다른 영역에 영향을 주고 결합되는 복합적 현상을 지시한다. 이는 저속한 것으로 간주되던 대중예술들이 순수예술 장르와 결합되거나, 서로 분리되었던 순수 예술 장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는 현상을 함축한다. ‘예술의 혼종화’는 기존의 장르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새로운 장르들을 탄생시켰다. 예를 들어 현대의 퍼포먼스는 사진, 영상, 음악, 연극, 무용, 건축의 요소들을 미술에 결합시켜 관람객의 경험을 이끌어내는 환경을 구성한다. 음악의 퍼포먼스는 극적인 서사체계를 가지고, 현대 무용은 서양과 동양을 넘나드는 미디어 아트를 퍼포먼스 안에 적극 도입하고, 문화 디자인은 공연 포스터를 제작하는 홍보의 수단이 아닌 공연 그 자체를 디자인하는 메타적인 의미로 확장된다. 예술의 융합 현상은 ‘하이브리드 예술’(hybrid arts), ‘트랜스 예술’ (trans arts), ‘퓨전아트’(fusion arts)라는 새로운 용어들을 탄생시켰다. 그러한 예로서 기존의 예술 장르들 간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나타나는 댄스 시어터, 음악극, 비주얼 퍼포먼스, 예술과 예술 외적 요인이 결합되는 홀로그램 아트, 바이오 아트, 나노 아트, 사이보그 아트, 제3세계 민족음악의 양식들이 현대적으로 결합하는 월드뮤직을 들 수 있다.10)
예술의 융합은 19세기 식의 완결된 1인 ‘마에스트로’를 생산하는 방식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예술창작에 공동으로 결합하는 집합적 창작을 자연스럽게 했다. 이러한 융합 창작과정이 가능한 것은 디지털화가 가속되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digitization)는 1980년대 작가들에게 개인용 컴퓨터가 접근 가능하게 되면서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가속화 되었다. 컴퓨터와 예술의 만남은 포스트모던 문화의 한 양상이다. 포스트모던 문화는 ‘저자의 죽음’, ‘텍스트로서의 작품’, ‘독자의 권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컴퓨터로 인한 자율적 글쓰기, 독자의 자발적 참여의 현상들은 디지털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열린 예술작품인 디지털 매체 예술은 수용자에게 많은 공감각을 요구하기 때문에 다양한 지각이 가능하며 이전의 예술체험과는 다르게 감성적 지각 체험이 가능하게 되었다.11)
7) 영화 <아바타>의 시각기술을 가능하게 했던 오토데스크의 DEC 소프트웨어는 영화 제작시 사전시각화 기술을 감독과 전체 제작진에게
제공해 주는 솔루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이 중에서‘오토데스크 모션빌더 (Autodesk MotionBuilder)’와 ‘오토데스크 마야
(Autodesk Maya)’는 <아바타>에서 스토리텔링과 관객들의 몰입 형 경험을 극대화하는 데 핵심소프트웨어로 쓰였다. 3D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토데스크 모션빌더’는 기존 라이브 액션 촬영 방식을 넘어서 배우의 행동을 미리 만들어 디지털 캐릭터로 보여주기 때문에
배우와 제작진들 간의 의사소통 및 완성도 높은 영상을 제작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기술이다.
8)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미술문화, 2004, 참고.
9) 움베르토 에코 저, 조준형 역, 『열린 예술작품』, 새물결, 2006, 참고.
10) 이동연, 「예술교육의 패러다임 전환과 새로운 실천방향”, 『현대사회와 예술/교육』,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참고.
11) 심혜련, 『사이버 스페이스 시대의 미학』, 살림, 2006, 127쪽.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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