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문화와 과학기술의 창조적 조우
|이 기 현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연구실장)|
문화와 과학기술의 관계사는 다름 아닌 인류 문명사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를 모두 다루려면 아마도 백과사전의 분량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백과사전의 어원이기도 한, 18세기 중반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15년간에 걸쳐 총 17권으로 발간한 <백과사전>의 부제도 <과학과 예술과 직업의 사전>1)이었다. 이처럼 문화와 과학기술이라는 주제는 육중한 인류사의 무게를 지닌다. 이 글에서는 근현대의 복잡다기한 문명적 현상을 문화와 과학기술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면서 몇 가지 단서들을 모아보는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창조적 미래를 구상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9세기 낭만주의와 피아노포르테(Pianoforte)
서양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친숙한 베토벤의 음악은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거치면서 성숙된 고전주의가 베토벤이라는 천재 작곡가를 만나 음악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이다. 당시 낭만주의의 탄생은 문자 그대로 예술양식의 혁신에 해당하지만, 이러한 혁신이 베토벤이라는 한 작곡가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18세기 말 고전주의 말기부터, 정형화된 음의 구성에서 탈피하여 보다 복합적인 표현기법을 구사하는 음악적 트렌드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5옥타브 이상의 음역을 지닌 피아노(정확히는 피아노포르테)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히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사교모임이나 아마추어 콘서트의 붐도 일어나, 피아노는 이미 중산계급들에게도 친숙한 악기가 되었다. 피아노의 기술혁신은 귀족계급의 전유물을 중간계급의 기호품으로 변화시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피아노에 대한 수요의 증가를 가져왔다.
예컨대, 낭만주의의 태동에서 피아노라는 악기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나날이 새롭게 개선되고 있던 피아노의 기술적 혁신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프랑스의 악기제작자였던 세바스티앙 에라르(Sébastien Érard, 1752–1831)는 당시 유럽 도처에서 널리 제작되고 있던 기존 피아노에 다양한 기술혁신을 도입한 명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무엇보다도 모차르트가 치던 피아노에는 없었던 페달(pedal)의 개발은 음악적 표현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즉, 베토벤은 이전 시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악보 구성과 연주 기법을 통해 과거의 형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음악적 감수성으로 채색된 미래의 트렌드를 이미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교향곡 9편과 32편의 피아노 소나타 대부분은 이렇게 탄생되었고, 특히 교향곡 제3번(<Eroica>)과 소나타 <열정>(op. 57, <Appassionata>)은 이러한 낭만주의적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가 가장 아끼는 곡이었던 소나타 <열정>의 경우, 형식이나 감정의 강도, 음역과 소리의 크기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서는 모든 것이 극단적이었다. 특히 음역과 소리의 크기는 베토벤이 1803년에 얻게 된 5와 1/2 옥타브의 에라르 제작 피아노 덕에 가능했었다.
이처럼 에라르 피아노는 19세기 서양음악에서 적어도 피아노에서, 낭만주의가 형성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이미 10대에 스타로 등극하여 유럽 투어를 돌던 피아노 신동 리스트(F. Liszt)도 에라르의 그랜드 피아노를 후원 받았다. 그 후에도 에라르 피아노는 쇼팽, 멘델스존, 라벨 등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가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렇게 낭만주의 음악은 문학이나 회화와 더불어 19세기를 대표하는 문예사조로 자리 잡게 된다. 낭만주의 발전의 이면에 담긴 역설은 낭만주의가 산업혁명, 계몽주의, 고전주의에 대한 회의와 반성에서 시작하여 감성적이고 신비적인 세계관에 경도된 문예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의 산물인 기술혁신의 직간접적인 수혜자였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문화와 기술은 그 역사적 주체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필연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문화와 기술은 공생(symbiosis)의 관계가 유지될 때 서로 빛을 발하게 된다. 이 공생관계 속에서 탄생한 낭만주의의 조류는 100여년 후 벨에포크(Belle époque, 19세기 말~20세기 초) 시대에 다시 변형된 형태(neo-romanticism)로 재등장한다. 여기서 또 다시 100여년이 흐른 현재에도 새로운 시대적 조류의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다. 20세기 후반기를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감성과 상상력과 창의력을 강조하는 현재의 창조사회론까지 최근의 이 시대적 흐름을 우리 후세들은 어떻게 명명할지 궁금해진다.
1) 원제는 ENCYCLOPÉDIE : dictionnaire raisonné ou des sciences, arts et métiers
※ 자세한 내용은 첨부(PDF)화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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